최근 세계 각국에서 주목받으며 성장하고 있는 K-뷰티는 이제 ‘반짝 유행’ 단계는 지났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특히 위기를 기회로 바꿔낸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신뢰를 쌓아나갔다고 강조한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지난 19일 열린 ‘아마존 뷰티 인 서울’ 행사에선 에이피알(APR)과 VT 코스메틱이 브랜드 성장 과정의 경험을 공유했다. 두 기업이 걸어온 길엔 다른 점도 있지만, 시장 개척의 중심에는 언제나 소비자가 있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이번 행사는 아마존 글로벌 셀링 코리아 주최로 국내외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인디 브랜드 성장 비결과 글로벌 플랫폼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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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비가역성 높은 제품 목표로
20대 초반부터 ‘창업가의 길을 꿈꿨다’는 에이피알 김병훈 대표는 창업을 ‘소명’으로 생각했지만, 처음에 뛰어들었던 플랫폼 사업은 경험도 자본도 없이 시작해 어려움도 겪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뷰티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턴 글로벌 무대를 바라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브랜드 ‘에이프릴스킨’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했다. “한국에서 성공한 제품으로 중국에 진출한다”는 전략이었다. 괜찮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운영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화장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결국 ‘피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이 인식이 바로 메디큐브의 출발점이 됐다.
김 대표가 강조한 키워드는 ‘비가역성’이다. 한 번 쓰면 다시는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제품 경험을 뜻한다. 그는 “비가역성이 높은 제품이 혁신 제품”이라며, 최소한 소비자가 구매한 이유를 충족하는 ‘고객 성공’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디큐브가 화장품을 넘어 미용기기, 의료기기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가 사랑받는 이유로 김 대표는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뛰어난 제품력이다. 선배 기업들이 축적해둔 우수한 제조 인프라 덕분에 매년 새로운 혁신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둘째는 K-컬처의 확산이다. “호랑이에 날개 단 격으로 문화 콘텐츠가 더해지면서 K-뷰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표현했다. 셋째는 치열한 내수 경쟁이다. 국내 올리브영을 비롯해 다양한 채널에서 살아남은 브랜드는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한 셈이라고 강조했다.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김 대표는 기술 개발의 정체 가능성,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자기 파괴, 그리고 가품 확산 등을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가품과 관련해 “실제 중국 공항에서 압수된 제품 박스를 열어보면 메디큐브뿐 아니라 여러 K-뷰티 브랜드 가품이 함께 나온다”며 “가품을 구매한 고객의 좋지 못한 경험이 브랜드 신뢰 하락과 K-뷰티 전체의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APR은 아마존 진출을 글로벌 성장의 전환점으로 삼았다. 김 대표는 아마존을 “현대판 실크로드”라고 표현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더 많은 소비자를 만나는 접점이 필요한데, 아마존은 미국은 물론 유럽·남미·중동까지 연결하는 경로라는 것이다. 탄탄하게 구축해온 자사몰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진출 전략으로 아마존을 택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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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큐브는 최근 아마존 프라임데이에서 매출 목표 대비 220% 성과를 거두고 신규 고객을 전년 대비 8배 확대했다. 대표 제품 제로패드는 판매량 1위를 기록했고, 10개 제품이 톱100에 진입했다. 김 대표는 “단순한 매출의 증가를 넘어 미국 메인스트림에 진입하고 있다는 확신이 더 값졌다”고 했다. 그는 “K-뷰티의 진정한 확산을 위해선 반드시 ‘캐즘(Chasm, 시장 수용 단절 구간)’을 뛰어넘는 브랜드가 나와야 한다”며 “APR이 그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메디큐브의 최종 목표가 ‘인류의 노화 극복’이라고 말했다. 메디큐브가 ‘피부 고민 솔루션’ 브랜드로 출발했다면, 앞으로는 노화를 가장 근본적인 고민으로 보고 이를 해결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그는 “30년 장기 비전으로 인류의 노화를 극복한다는 미션을 세웠다”며 “5~10년 내에는 글로벌 안티에이징 넘버원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를 위해 화장품에 이어 미용기기, 의료기기, 나아가 바이오 분야까지도 아우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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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T, 일본 거리에서 시작된 전환점
“현지 소비자와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
VT 코스메틱 최철호 부사장은 일본 진출 당시, 쉽지 않은 현지 상황에 전 직원이 매달려 고군분투했던 경험담을 털어놨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일본 소비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직접 인형탈을 쓰고 거리로 나섰던 모습을 공개해 참가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2010년대 중반까지 전체 매출의 68%를 중국에서 올릴 정도로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VT는 사드 사태와 팬데믹, 애국 소비 바람이 몰아치자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위기에 빠졌다. “사드 이전부터도 중국 내 과도한 경쟁과 공급가 인하 압박으로 수익성이 무너지고 있었다”며, 2017년경부터 리스크를 감지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고 말했다.
VT가 택한 새로운 무대는 일본이었다. “거리도 가까운 데다 세계 3위 시장이니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현지 유통사의 문은 열리지 않았고, 브랜드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유통기한이 임박할 때까지 매출이 발생하지 않아 약 25억원의 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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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T 임직원들은 철수의 기로에 서서 최후의 수단으로 거리로 나갔다. 최 부사장을 비롯, 모든 직원들이 전단지를 나누고 샘플을 건넸다. 그마저도 받아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캐릭터를 만들고, 인형탈도 쓰고 현지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사진을 찍으며 샘플을 받아가는 소비자들이 나타났다. 그는 “6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점심시간마다 거리로 나가 전단지를 돌렸다”며, 체험전과 팝업스토어, 현지 모델 기용을 병행해 인지도를 쌓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는 VT에겐 오히려 기회가 됐다. 마스크 속 피부 트러블이 늘어나면서 시카 마스크의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 30매가 한 통에 들어있는 ‘시카 데일리 수딩 마스크팩’은 유통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생산능력(CAPA)은 월 5만개 수준이었는데 수요는 50만개에 달했다. VT는 제조사를 인수하는 강수를 둬 3개월 만에 설비 증설 및 금형 제조를 마쳤고 연간 1억8000만장의 시트마스크를 시장에 공급했다.
VT 역시 제품의 히트 뒤엔 ‘카피 브랜드’ 문제가 생겼다. 근본적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소비자의 피부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해법으로 찾은 것이 바로 ‘마이크로니들’ 기술이다. 소비자들이 고가의 레이저 시술이 아프더라도 피부가 개선되면 만족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도쿄대와 공동 연구를 통해 ‘리들샷’ 제품을 개발했고, 임상은 직원들이 직접 참여했다. 최 부사장은 자신의 체험 사례도 공개하며 “직접 효과를 확인하며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일본 내 입지를 넓힌 VT는 온라인 채널 공략도 병행했다. 큐텐, 라쿠텐 등 현지 중심의 플랫폼에 이어 아마존으로 범위를 확장하며 매출이 200% 성장했다. 그는 “아마존은 충성 고객층과 리뷰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어 장기 성과에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최 부사장은 “VT의 여정은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었다”면서 “무한한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시대 속에서 결국 소비자의 피부 고민 해결이라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각 기업이 고민 속에 자신만의 방법론을 찾아 K-뷰티 전체가 함께 성장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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