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②] "후보물질보다 플랫폼"…다시 쓰는 신약개발 공식
특허절벽 대응 넘어 연구개발 구조 전환…오픈이노베이션이 R&D 중심축으로
임상 후기보다 확장성 중시…바이오텍 기업가치 평가 기준도 변화
머크는 '포스트 키트루다', 릴리는 '포스트 GLP-1' 준비…플랫폼 확보 경쟁 본격화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7-15 06:00   수정 2026.07.15 06:01

글로벌 빅파마들의 바이오텍 인수 전략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허가가 임박한 후기 임상 단계 후보물질을 확보하는 거래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파이프라인으로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특허 만료에 따른 매출 공백에 대응하는 동시에 장기적인 연구개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최근 글로벌 제약업계에서는 하나의 신약보다 여러 후보물질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이 연구개발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동일한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적응증으로 개발을 확대할 수 있을 경우 후속 파이프라인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바이오텍의 기업가치도 현재 매출이나 단일 후보물질보다 플랫폼의 확장성과 기술 차별성, 지식재산권 경쟁력을 중심으로 평가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빅파마들의 연구개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부 연구조직을 중심으로 후보물질을 발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대학과 연구기관, 바이오벤처가 개발한 혁신기술을 공동연구와 기술도입, 전략적 투자, 기업 인수 등을 통해 확보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체계가 연구개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최근 바이오·제약 분야의 주요 거래를 살펴보면 허가 직전 제품을 확보하기 위한 인수보다 플랫폼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거래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항체약물접합체(ADC), 비만·대사질환, 면역질환, 세포·유전자치료제, 방사성의약품 등 장기 성장성이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바이오텍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과제를 안고 있는 기업 가운데 하나는 미국 Merck & Co.다.

머크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중심으로 글로벌 항암제 시장을 선도해 왔다. 키트루다는 다양한 암종에서 적응증을 확대하며 회사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았지만, 향후 특허 만료 이후에는 바이오시밀러 경쟁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머크는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회사는 최근 실적 발표와 중장기 전략을 통해 키트루다 이후의 성장 기반 마련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차세대 면역항암제와 항체약물접합체, 표적항암제, 심혈관질환 및 면역질환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고 있으며, 외부 기술도입과 라이선스 계약도 병행하고 있다. 머크는 장기적으로 새로운 제품군을 통해 특허 만료 이후의 성장 기반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최근 머크의 사업개발(BD) 전략에서도 이러한 방향이 확인된다. 과거에는 자체 연구개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면 최근에는 혁신 플랫폼을 보유한 바이오텍과의 공동연구, 기술도입, 전략적 제휴를 확대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연구개발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다양한 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연구개발 전략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릴리는 비만 치료제 시장 확대를 이끌고 있는 GLP-1 계열 치료제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회사의 연구개발은 현재 판매 중인 제품에 머물지 않고 차세대 비만·대사질환 치료제로 확대되고 있다. 회사는 경구용 GLP-1 수용체 작용제 올포글리프론(orforglipron)과 GIP·GLP-1·글루카곤 수용체를 동시에 표적하는 삼중작용제 레타트루타이드(retatrutide)를 중심으로 후속 파이프라인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릴리는 비만 치료제를 단순 체중감량 치료제가 아니라 심혈관질환과 대사질환 등으로 적응증을 확대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심혈관 보호 효과와 지방간질환, 만성신장질환 등 다양한 질환 영역으로 연구개발 범위를 넓히고 있으며,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도 지속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는 단일 GLP-1 기전에서 벗어나 복합기전 기반 차세대 치료제 개발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들은 새로운 기전과 약물전달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텍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머크와 릴리의 사례는 글로벌 빅파마들이 현재 판매 중인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다음 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개발 전략을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허 만료 이후의 매출 공백에 대응하는 동시에 향후 10년 이상의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연구개발 전략 변화는 항암제 분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항체약물접합체(ADC)와 방사성의약품은 차세대 항암 치료기술로 자리 잡으며 주요 제약사들의 투자와 기술 확보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Novartis)는 최근 이러한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다.

노바티스는 기존 항암사업을 방사성의약품과 표적항암제 중심으로 확대해 왔으며, 최근에는 항체약물접합체(ADC)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추가하고 있다. 회사는 최대 15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통해 영국 바이오텍 마이릭스 바이오(Myricx Bio)를 인수하기로 발표했으며, 이번 거래를 통해 차세대 ADC 플랫폼과 후속 항암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게 됐다.

마이릭스 바이오는 새로운 페이로드(payload) 기술을 기반으로 한 ADC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 ADC가 사용하는 세포독성 기전과 차별화된 접근법을 적용하고 있으며, 하나의 플랫폼을 활용해 다양한 적응증으로 후보물질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번 거래는 허가가 임박한 단일 후보물질보다 플랫폼 기술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최근 글로벌 바이오텍 인수의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동일한 플랫폼을 활용해 후속 파이프라인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기업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의 투자 기준도 변화하고 있다.

노바티스는 방사성의약품 분야에서도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전립선암과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를 중심으로 관련 제품을 상용화했으며, 후속 후보물질 개발과 생산시설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방사성의약품은 선택적으로 종양세포를 표적할 수 있다는 특성으로 인해 글로벌 항암제 시장의 주요 연구개발 분야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영국 제약사 GSK는 호흡기질환과 면역질환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GSK는 최근 연구개발 전략에서 호흡기질환, 면역·염증질환, 종양학, HIV를 핵심 치료영역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중증 천식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호산구성 질환 등 호흡기 분야와 면역질환 영역에서 신규 후보물질 확보와 적응증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면역질환 분야에서는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 개발과 함께 외부 기술도입도 병행하고 있다. GSK는 최근 바이오텍 인수와 기술 확보를 통해 면역질환 및 호흡기 파이프라인을 보강하고 있으며, 기존 백신과 감염질환 중심 사업에 더해 장기 성장동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호흡기질환은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에 따라 지속적인 치료 수요가 예상되는 분야로 꼽히고 있다. 이에 따라 GSK는 기존 제품의 적응증 확대와 차세대 치료제 개발을 병행하면서 장기적인 연구개발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바이오제약사 버텍스 파마슈티컬스(Vertex Pharmaceuticals)는 희귀질환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버텍스는 낭포성섬유증 치료제를 기반으로 성장한 이후 유전자편집 치료제와 급성 통증 치료제, 신장질환, 희귀질환 등으로 연구개발 범위를 넓혀 왔다. 최근에는 약 100억 달러 규모의 크리네틱스 파마슈티컬스 인수를 발표하며 내분비질환 분야를 새로운 핵심 사업으로 추가했다.

크리네틱스는 말단비대증과 선천성 부신과형성증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으며, 버텍스는 이번 인수를 통해 희귀질환 중심 사업구조를 유지하면서 내분비질환 분야까지 연구개발 역량을 확대하게 됐다.

최근 글로벌 바이오텍 인수 사례를 종합하면 투자 대상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된 특징도 나타난다.

첫째, 단일 후보물질보다 플랫폼 기술의 확장성을 중시하는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둘째, 허가 직전 제품보다 임상 초기 단계라도 차별화된 기술을 확보하는 전략이 확대되고 있다.

셋째, 항암제와 비만 치료제뿐 아니라 희귀질환, 면역질환, 호흡기질환, 방사성의약품 등으로 투자 분야가 다변화되고 있다.

넷째, 내부 연구개발과 외부 혁신을 결합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이 글로벌 연구개발 체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연구개발 전략뿐 아니라 바이오텍의 사업개발(BD)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술의 독창성과 플랫폼 경쟁력, 글로벌 임상개발 가능성이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활용되면서 초기 단계 바이오텍에도 글로벌 협력 기회가 확대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투자 전략 변화는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에도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 플랫폼 기술과 초기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한 기술이전과 공동개발 사례가 증가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 연구개발 전략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글로벌 빅파마들의 연구개발 전략 변화가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기술수출과 사업개발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바이오기업에서 주목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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