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산업은 최근 정부의 일방적인 제네릭 약가 인하 정책 여파로 현장 전반에 위축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수익 구조가 흔들리면서 연구개발(R&D)과 투자 여력까지 동반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산업이 직면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고 해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정부는 R&D 예산을 확대하며 생명공학 기술과 제약바이오 신약개발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기술 기반 기업과 연구 조직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신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와의 합리적인 약가 협의와 함께, 변화된 정책 환경을 냉정하게 해석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접근이다. 확대되는 연구개발 재원과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정교하게 연결한다면, 이번 위기는 또 다른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약업신문은 보건의료·제약바이오 산업이 선택지와 전략을 점검할 수 있도록 ‘2026 정부 R&D 사업 부처합동 설명회’를 집중 분석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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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6년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에서 ‘규제과학(Regulatory Science)’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하며, 식·의약 안전관리 체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략을 공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규제과학정책추진단 권광일 연구관은 20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강당에서 열린 ‘2026 정부 R&D 사업 부처합동 설명회’에서 “규제과학은 규제와 과학이 융합된 영역으로, 규제를 위해 필요한 과학과 규제 자체를 연구하는 과학을 모두 포괄한다”고 설명하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 규제 정책 설계가 규제과학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규제과학은 개념적으로 다소 모호하게 인식돼 왔으나, 최근 들어 식·의약 안전 환경이 급변하면서 규제과학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식약처는 규제과학을 통해 단순한 사후 규제가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규제 정책을 구현하고, 국민 안전과 산업 혁신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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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R&D…공공성·파급력 ‘차별화’
권 연구관은 식약처 연구개발 사업의 구조적 특징을 타 부처 R&D와 비교해 설명했다. 식약처 R&D는 식품, 의약품, 의료기기, 화장품 등 국민 일상과 직결된 분야를 대상으로 하며, 연구 결과가 안전 기준·규격 설정, 허가·심사 체계, 안전관리 정책에 직접 반영된다는 점에서 공공성이 매우 강하다.
식약처 R&D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식약처가 직접 수행하거나 외부 인프라를 활용해 추진하는 고유 사업이며, 다른 하나는 민간 연구개발기관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출연 연구 사업이다. 고유 사업은 규제기관으로서의 고유 업무 수행을 위한 연구로, 단기간 내 정책과 제도에 직접 활용되는 성격을 갖는다. 출연 연구 사업은 중장기적으로 안전기술을 축적하고, 민간 활용과 제품화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식약처 R&D는 허가 단계에 국한되지 않고, 개발–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을 포괄한다. 안전성·유효성 평가 기술, 기준·규격 설정, 시험·분석 기술, 전문 인력 양성까지 연구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정책적 파급력이 크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식약처 규제과학 R&D의 범위는 식품과 의약품에 한정되지 않는다. 농·축·수산물, 식품첨가물, 기구·용기·포장, 건강기능식품, 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 한약과 제제, 의료기기와 의약외품, 화장품, 위생용품, 주류, 마약, 담배까지 규제 대상 전반이 연구 범위에 포함된다.
연구 내용 역시 안전성·유효성·성능 평가를 위한 기술 개발을 중심으로 ▲기준·규격 연구 ▲유해물질 인체 노출 및 위해 평가 ▲의약품·의료기기 안전성·유효성 평가 기술 ▲시험·분석 기술 ▲규제 전문 인력 양성 등으로 구분된다.
권 연구관은 “이러한 연구 결과는 단순한 학술 성과에 그치지 않고, 실제 안전관리 기준과 정책으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식약처 R&D의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규제과학 R&D 성과, 정책과 제도로 연결
식약처 규제과학 R&D를 통해 도출된 성과는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의약품 불순물 관리 가이드라인 마련, 식중독 세균·바이러스 동시 검출 키트 개발, 신속한 식중독 원인 조사 체계 구축 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오가노이드 모델을 활용한 독성 평가 기술, 국제 기준(OECD) 표준화 참여 등은 국내 규제 기준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스마트 헬스케어 의료기기 평가 기술 개발을 통해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선제적 기준을 제시하고, 규제 전문 인력 양성 분야에서도 성과가 축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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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규제과학 R&D 예산 1,719억 원
식약처는 2026년 규제과학 R&D 예산으로 1,719억 원을 편성했다. 이는 2025년 대비 100억 원 증가한 규모다. 권 연구관은 예산 확대가 단순한 규모 증가가 아니라, 규제과학의 정책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식약처 R&D의 법적 근거 역시 강화됐다. 기존에는 자체 연구와 용역 연구 중심으로 추진되던 연구개발 사업이 2015년 ‘식품의약품 등의 안전기술 진흥법’ 제정을 계기로 출연 연구 사업까지 포함하는 구조로 확대됐다. 이후 2023년 8월 해당 법률이 전부 개정돼, ‘식품의약품 안전 및 제품화에 관한 규제과학 혁신법’이 공포됐으며, 2024년 12월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다.
규제과학 혁신법은 규제과학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연구개발과 제품화 지원, 전문 인력 양성을 하나의 법 체계로 묶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개정 법률에는 ▲규제과학 기본계획 수립 ▲식품의약품 규제과학위원회 구성·운영 ▲연구개발 사업 추진 및 출연금 지급 ▲규제 정합성 검토 ▲제품화 지원 ▲전문 인력 양성 및 전문기관 지정 ▲민간 협력 촉진 등의 내용이 새롭게 포함됐다.
식약처는 이 법을 근거로 2025년 말 ‘제1차 규제과학 기본계획(5개년)’을 수립했다. 기본계획에는 국내외 환경 분석과 함께 규제과학의 방향과 목표, 핵심 전략이 담겼다.
5개년 기본계획의 핵심 전략
식약처가 제시한 규제과학 기본계획의 핵심 전략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규제과학을 통한 식·의약 안전망 고도화다. 과학적 근거를 강화해 국민 생활과 직결된 안전관리 체계를 정교화하겠다는 의미다.
둘째, 첨단 혁신 분야 제품화 규제 지원 강화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 측면에서 지원하겠다는 방향이다.
셋째, 규제과학 글로벌 선도와 국가 위상 확립이다. 국제 기준 설정 과정에 적극 참여해 국내 규제 역량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넷째, 중장기 규제과학 발전 기반 마련이다. 인프라와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해 지속 가능한 규제과학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식약처는 규제과학 기반의 식·의약 안전관리 체계로 전환하고, 혁신 제품의 신속한 시장 진입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급변하는 환경, 규제과학 투자 확대 배경
권 연구관은 최근 식·의약 환경 변화를 규제과학 투자 확대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 확산과 건강·안전에 대한 관심 증가, 디지털·바이오 기술 혁신에 따른 신개념 의료제품과 신소재 식품 등장,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 심화 등은 기존 안전관리 체계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후 대응 중심의 안전관리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 기반의 능동적 안전관리 체계가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규제과학 R&D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식약처는 2026년 규제과학 R&D의 중점 투자 방향으로 ▲첨단 기술 기반 안전관리 고도화 ▲생활 속 안전망 강화 ▲산업 혁신 성장 지원 ▲규제과학 혁신 생태계 조성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전체 연구비의 약 62%에 해당하는 1068억 원을 유해물질 관리 강화, 마약류 중독 재발 방지 등 국민 생활 안전을 위한 임무형 R&D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또한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규제 기준 선제 제공 분야에 249억 원, 규제과학 글로벌 협력과 선도 분야에 235억 원, 디지털·AI 기반 안전 규제 시스템 전환 분야에 127억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발표에서 주목된 제도적 장치 중 하나는 국가 R&D 규제 정합성 검토 제도다. 이는 혁신 제품 개발을 목표로 하는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대해, 제품화에 필요한 규제 요건과 대응 전략을 사전에 검토·제공하는 제도다.
연구자나 사업단이 소관 중앙행정기관을 통해 식약처에 검토를 요청하면, 식약처 관련 부서와 산·학·관 전문가 자문단이 검토를 거쳐 결과를 회신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해당 제도는 2024년부터 본격 시행돼 현재까지 다수 과제에 적용됐으며, 연구자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규제과학 중심 R&D’로의 전환
권광일 연구관의 발표는 식약처 R&D가 단순한 연구비 지원 사업을 넘어, 규제 정책과 산업 혁신을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줬다. 규제과학을 기반으로 한 연구개발을 통해 안전관리의 과학적 수준을 높이고, 동시에 혁신 제품의 예측 가능성과 시장 진입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 명확히 제시됐다.
2026년 식약처 규제과학 R&D는 ‘안전 확보’와 ‘혁신 지원’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서, 향후 식·의약 규제 환경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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