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허가·강한 안전’ 식약처 2025 업무보고, 산업에 던진 신호
신약·의료기기 세계 최단 허가 목표, 심사체계 전면 개편
AI 허가·심사지원 시스템 도입과 사전상담 기능 강화
바이오·디지털 의료제품 중심 규제 패러다임 전환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12-17 06:00   수정 2025.12.17 06:01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포함한 의료제품 전반에 대해 허가·심사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규제 혁신을 본격화한다. 신약과 의료기기 허가 기간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단축하고, 바이오·디지털헬스 산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핵심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업무보고를 통해 2025년을 기점으로 의약품·의료기기 전반의 허가·심사·공급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날 업무보고는 오유경 식약처장이 직접 발표를 맡았으며, 신약·바이오의약품 심사 기간 단축, 인공지능(AI) 기반 허가·심사 지원 시스템 도입, 의료기기 변경허가 제도 개편, 디지털·AI 의료기기 규제 정비, 필수의약품 및 희귀의약품 공급 안정화 등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식약처는 이번 업무보고에서 의료제품 규제의 방향을 ‘속도·과학·현장 중심’으로 제시하며, 글로벌 규제 수준에 부합하는 허가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제약·바이오 및 의료기기 산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정책이 다수 포함되면서, 2025년 이후 국내 의료제품 개발·허가 환경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신약·바이오의약품 허가 기간 ‘240일’ 목표 제시
식약처는 신약, 바이오의약품, 바이오시밀러 등 주요 의료제품의 허가 소요 기간을 최대 240일 이내로 단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주요 규제 선진국과 비교해도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허가 지연에 따른 산업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설명됐다.

이를 위해 식약처는 허가·심사 전 과정에 심층 예비검토, 병렬심사, 전담 심사팀 운영, 단계별 대면 상담 확대 등의 제도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개발 단계부터 품질(CMC), 비임상, 임상 자료를 사전에 점검하고, 보완사항을 조기에 조율함으로써 본 심사 단계에서의 반복 보완을 최소화한다는 구상이다.

식약처는 특히 허가 신청 이전 단계에서의 사전 상담 기능을 강화해, 기업이 개발 초기부터 규제 요건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심사 과정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허가 일정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AI 기반 허가·심사 지원 시스템 본격 도입
이번 업무보고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AI 기반 허가·심사 지원 시스템 도입이다. 식약처는 심사자가 제출된 방대한 자료를 효율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료 요약, 번역, 검토서 초안 작성 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시스템은 심사자의 판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시간 소요가 큰 작업을 지원하는 보조 도구로 활용된다. 식약처는 이를 통해 심사자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심사 속도와 일관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제약·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는 제출 자료의 구조화, 논리적 일관성, 근거 명확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글로벌 임상자료와 영문 문서를 중심으로 허가를 신청하는 기업의 경우, 자료 구성과 표현 방식이 심사 효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이오시밀러 허가자료 요건 합리화 추진
식약처는 바이오시밀러 허가와 관련해 임상자료 제출 요건을 합리화하겠다고 밝혔다. 업무보고에는 바이오시밀러 허가 시 요구되는 3상 임상시험 결과 제출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는 국제 가이드라인과 과학적 근거를 반영해, 불필요한 임상시험 부담을 줄이고 개발 기간과 비용을 합리화하기 위한 조치로 설명됐다. 식약처는 비교성 평가, 품질 자료, 면역원성 평가 등 핵심 자료를 중심으로 허가 판단의 과학성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변화는 바이오시밀러 개발 기업의 임상 개발 전략과 허가 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국내 바이오시밀러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도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필수의약품·희귀의약품 공급 안정화 강화
업무보고에는 필수의약품과 희귀·난치질환 치료제 공급 안정화 방안도 주요 과제로 포함됐다. 식약처는 희귀·난치질환 치료제의 경우 정부가 직접 도입·공급하는 방식을 확대해, 환자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필수의약품의 경우 공공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수급 불안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 사전 예측과 대응이 가능한 의약품 수급 위험 예측 모델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공급 중단이나 부족 사태를 사전에 감지하고, 대체 공급이나 긴급 조치를 신속히 시행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의 공급망 관리도 강화해,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따른 국내 수급 불안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오유경 처장(가운데)이 업무보고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온라인 생중계 캡처본.

온라인 불법 의약품 유통·광고 차단 강화
식약처는 온라인 환경에서의 불법 의약품 유통과 허위·과장 광고에 대한 규제도 강화한다. 특히 AI 기술을 활용한 가짜 의사·약사 추천 광고를 명확히 금지하고, 이를 법률에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또한 AI 기반 감시 시스템인 ‘AI 캅스’를 활용해 의약품과 의료용 마약류의 온라인 불법 유통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신속 차단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소비자 보호와 함께 합법 유통 질서 확립을 위한 조치로 설명됐다.

의료용 마약류 관리 체계 고도화
의료용 마약류 관리와 관련해서는 환자 투약 이력 확인 대상 성분 확대, 의료인 셀프 처방 제한 강화, AI 기반 오남용 감시 체계 고도화 등이 포함됐다. 식약처는 이를 통해 의료용 마약류의 적정 사용을 유도하고, 오남용을 예방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해당 정책은 의료현장의 처방 환경과 유통 관리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관련 의약품을 취급하는 제약사와 유통사에도 제도적 대응이 요구될 수 있다.

의료기기 변경허가 ‘네거티브 방식’ 도입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네거티브형 변경허가 제도 도입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이는 의료기기 허가사항 변경 시, 환자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경만 사전 허가 대상으로 하고, 그 외 변경은 업체 책임 하에 관리하도록 하는 제도다.

식약처는 이를 통해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의료기기 분야에서 불필요한 규제 부담을 줄이고, 시장 출시와 개선 속도를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변경 관리에 대한 기업의 책임은 강화되는 만큼, 품질관리(QMS)와 사후 관리 체계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됐다.

실사용데이터(RWD) 활용 확대
업무보고에는 의료기기 허가 시 실사용데이터(RWD)의 임상자료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병원 현장에서 축적되는 실제 사용 데이터를 허가 근거로 보다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디지털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 의료 AI 분야에서 임상 근거 창출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요소로 평가된다.

AI·디지털 의료기기 규제 체계 정비
식약처는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활용한 의료기기의 등장에 대응해, AI 의료기기 허가·심사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성능 검증, 안전성 관리, 사이버 보안 등과 관련한 기준을 구체화해 2025년 중 제도화할 계획이다.

또한 사이버 보안과 안전관리 역량이 우수한 기업에 대해서는 허가 이전 단계에서 일정 기간 실사용을 허용하는 특례 제도도 추진할 예정이다.

디지털융합의약품 통합심사 체계 마련
의약품과 디지털 의료기기가 결합된 디지털융합의약품에 대해서는 안전성·유효성을 통합적으로 심사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도 제시됐다. 이는 약물 치료와 디지털 치료기기, 앱 기반 관리 시스템 등이 결합된 제품에 대한 규제 경로를 명확히 하기 위한 조치다.

식약처는 이를 통해 새로운 치료 기술의 도입을 지원하면서도, 환자 안전 확보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번 식약처 업무보고는 허가·심사 속도 개선, AI 기술 활용, 규제 합리화, 공급 안정화라는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의료제품 규제 환경의 변화를 예고했다. 제약·바이오 및 의료기기 산업 전반에 걸쳐 개발, 허가, 생산, 유통 단계에서의 제도적 변화가 순차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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