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 단일 타깃 넘어 다중 전략으로" 신약개발 새 국면
한양대 의대 오기욱 교수, 국내외 역학·임상 데이터 기반 최신 동향 발표
정밀 분류·멀티 타깃·전달공학 3축 제안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9-30 06:00   수정 2025.09.30 06:01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오기욱 교수가 '제6회 희귀유전질환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약업신문=권혁진 기자

희귀 신경퇴행성질환 ALS(루게릭병, 근위축성측삭경화증) 치료 전략이 단일 타깃에서 정밀 분류, 멀티 타깃, 전달공학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제안이 힘을 얻고 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오기욱 교수는 최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6회 희귀유전질환 심포지엄’에서 최신 역학 자료와 임상 데이터를 근거로 ALS는 환자별로 진행 양상과 반응이 크게 다른 이질성과 뇌혈관장벽(BBB) 관련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임상 성공을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뉴런은 분열하지 않는(postmitotic) 세포로, 염증과 산화스트레스가 누적되면 DNA 손상과 비정상 세포주기 진입으로 이어지고, 결국 신경퇴행으로 진행된다”면서 “발암과 신경퇴행은 마치 거울처럼 대비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암은 세포가 죽지 않고 무한히 증식하는 반면, 신경퇴행은 세포가 쉽게 죽어버린다.

ALS 병태생리는 RNA 대사 이상, 자가포식(autophagy),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단일 기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치료제 개발의 난제로 꼽힌다.

국내 건강보험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ALS 유병률은 인구 10만명당 3.43명, 발병률은 1.20명이다. 평균 진단 연령은 61.4세, 남녀 성비는 1.6대1이다.

평균 생존기간은 약 50개월로, 진단 후 3년 내 사망률은 52.1%, 5년 내 사망률은 63.7%다. 릴루졸 사용률은 53.6%, 기관절개술 시행률은 20.3%였다.

오 교수는 “ALS는 진단 시점에는 이미 운동신경세포가 30~40% 소실된 상태인 경우가 많아 치료 골든타임이 좁다”라고 아쉬워했다.

한양대 루게릭클리닉에서 추적한 환자 1400여명의 기능 점수(ALSFRS-R)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진행 궤적은 concave, convex, linear, linear-fast, linear-slow, sigmoid 등 6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평균적으로는 매년 20~30%의 기능이 떨어지지만, 환자별 진행 속도는 큰 차이를 보였다.

오 교수는 “이질성이 크기 때문에 임상에서는 하위군 정의와 바이오마커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50년간 FDA 승인받은 ALS 치료제 3개뿐

최근 50년간 ALS 치료 후보물질은 24개, 무작위 대조시험(RCT)은 50건 이상 진행됐다. 참여 환자만 1만4000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FDA가 승인한 치료제는 단 3개뿐이다. 승인된 치료제는 ‘릴루졸’ ‘에다라본’ ‘토퍼센’이다.

오 교수는 “중추신경계 약물 대부분이 소분자 경구제이지만, 질병변형효과(DMT)는 제한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오 교수는 ALS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이유로 △환자 모집 난이도 △임상 양상·병리 복잡성 △바이오마커 부재 △좁은 치료 윈도 △동물모델 한계 △BBB 통과 문제를 들었다.

오 교수는 “대분자 치료제는 사실상 BBB를 통과하지 못하며, 현재는 척수강내(intrathecal) 투여가 표준 경로”라고 말했다. 또 “현재 AAV 기반 유전자 치료제도 정맥 투여 시 뇌 도달률은 2~3%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오기욱 교수.©약업신문=권혁진 기자

오 교수는 국내 ALS 치료제 개발 현황도 전했다. 대표 사례는 코아스템켐온이 개발한 자가 골수유래 중간엽줄기세포 치료제 ‘뉴로나타-알주(Neuronata-R)’이다. 이 치료제는 척수강내 투여 방식으로 개발됐다.

한양대 연구팀이 참여한 뉴로나타-알의 초기 임상에서 투여 후 6개월간 질병 진행 속도가 ALSFRS-R 기준 52% 완화됐다. 염증성 사이토카인 변화도 관찰됐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뉴로나타-알은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 부터 조건부 허가를 획득했다. 이후 일부 환자들에게 실제 치료에 사용됐다. 실제 사용 환자에게서는 장기 생존 이점도 보고됐다.

후속으로 진행된 대규모 임상 3상은 2024년 종료됐다. 해당 임상에서는 뉴로나타-알의 안전성이 재확인됐으나, 1차 평가지표 CAFS(Joint Rank Score)를 충족하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높은 중도 탈락률이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오 교수는 “전체 모집단에서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했으나, 저속 진행 하위군(subgroup)에서는 임상적 유의성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며 “특히 NfL·MCP-1 등 바이오마커 분석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관찰돼 향후 치료 전략 수립에 의미 있는 근거를 남겼다”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ALS 유전자치료제 개발 동향도 소개됐다. SOD1 변이 ALS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 치료제 ‘토퍼센(Tofersen)’이 대표적이다. 

토퍼센은 2021년 임상 3상에서 1차 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경필라멘트 경량사슬(NfL) 감소 등 바이오마커 근거가 긍정적으로 평가돼, 2023년 4월 FDA로부터 가속승인을 획득했다.

오 교수는 “희귀유전질환에서 치료제 승인은 바이오마커 기반 근거를 중시하는 규제 경향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하버드 의대가 주도하는 ‘HEALEY ALS Platform Trial’은 공통 대조군과 마스터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여러 ALS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검증하고 있다. 현재 약 7개 후보물질이 진행 중이다.

오 교수는 “희귀유전질환 환자 모집의 병목을 줄이는 모범사례”라며 “국내도 산학연병관이 함께 플랫폼 임상 생태계를 구축해야 혁신 ALS 치료제 개발에 빠르게 다가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오기욱 교수가 코아스템켐온 ‘뉴로나타-알주(Neuronata-R)’ 임상시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약업신문=권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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