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파브리병 극복할 기업 찾습니다” KAIST 연구진, ‘파수딜’ 치료제로 제시
iPSC 기반 혈관 모델로 파브리병 기전 규명…전임상서 혈관·심장·신장 개선 효과 입증
‘제6회 희귀유전질환 심포지엄’ 개최…산학연병관 및 환자단체 함께 협력 방안 모색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9-23 06:52   수정 2025.09.23 07:02
KAIST 의과학대학원 한용만 교수가 ‘제6회 희귀유전질환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약업신문=권혁진 기자

희귀유전질환 파브리병 치료 전략에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됐다. 국내 연구진이 일본에서 사용 중인 약물을 재창출해 손상된 혈관·심장·신장 증상 개선 가능성을 전임상에서 확인한 것이다.

KAIST(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한용만 교수는 2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6회 희귀유전질환 심포지엄’에서 파수딜(Fasudil)의 파브리병 다양한 증상에 대한 치료 효과(Therapeutic effects of Fasudil on various symptoms of Fabry disease)를 주제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파브리병은 α-갈락토시다제 A(α-Gal A) 결핍으로 인해 세포 내 글로보트리아오실세라마이드(Gb3)가 축적되며, 이로 인해 뇌졸중, 심근비대, 신부전, 혈관성 피부병변 등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하는 희귀유전질환이다. 발병률은 인구 4만~11만명당 1명으로 추정되며, 특히 남성의 경우 2만2000~4만명당 1명꼴로 더 높은 발생률을 보인다.

현재 표준 치료는 효소대체요법이지만, 환자 1인당 연간 치료비는 한국에서 1억원 이상, 북미에서는 약 30만 달러(약 3억~4억원)에 달한다. 

한 교수 연구팀은 환자 유래 역분화줄기세포(iPSC)를 혈관 내피세포로 분화시켜 파브리병 혈관 모델을 구축했다. 이 모델을 통해 Gb3 축적에 따른 ROS 증가, Thrombospondin-1(TSP-1) 과발현, TGF-β 신호 과활성화가 주요 병리 기전임을 규명했다. 또 기존 효소대체요법(ERT)만으로는 혈관 신생(tube formation) 회복이 어렵다는 점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어 한국화학은행 보유 2000여개 임상 화합물을 스크리닝해 Rho-kinase(ROCK) 억제제 ‘파수딜’을 최종 치료 후보물질로 도출했다. 파수딜은 현재 일본에서 뇌혈관연축 치료제로 허가돼 사용 중이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아직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한 교수는 “Gb3 축적이 단순히 대사물질의 문제를 넘어 혈관 내피 기능 저하와 연관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면서 "특히 ROS 증가와 TSP-1 과발현, TGF-β 신호 과활성화가 파브리병의 혈관 병리를 악화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드러났다”라고 전했다.

글로벌 파브리병 치료 시장은 2023~2024년 약 22~27억 달러로 추정되며, 2030년에는 40~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투여 시 항체(ADA) 형성으로 인한 면역반응과 제한적인 증상 개선 등 근본적 한계가 지적돼 왔다. 현재 개발 중인 유전자치료 후보물질들도 임상 2~3상 단계로, 아직 승인된 제품은 없다.

KAIST 의과학대학원 한용만 교수.©약업신문=권혁진 기자

파수딜, 전임상서 혈관·심장·신장 증상 개선

연구팀은 파브리병 환자 유래 혈관 내피세포와 파브리병 모델 마우스에 파수딜을 투여했다. 그 결과 △ROS 감소 △TSP-1 억제 △혈관 기능 회복이 확인됐다. 

특히 파브리병 마우스 모델에 6개월간 경구 투여(10mg 또는 30mg/kg/day)했을 때, 좌심실비대(LVH) 개선, 발한 저하 완화, 통증 민감도 감소, 신장 섬유화 억제를 통한 신부전 지연 등 효과가 관찰됐다. 한 교수는 “Gb3 축적 자체는 줄이지 못하지만, 말단 혈관 기능을 회복시켜 환자의 삶의 질 개선과 생존 연장 잠재력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효소대체요법과 파수딜을 병용한 전임상 실험에서는 상보적 효과도 나타났다. 특히 고령 발병 마우스 모델에서 효소 단독 투여는 심장 기능 개선이 미미했으나, 파수딜을 병용했을 때 좌심실비대 억제 효과가 뚜렷했다. 이는 기존 치료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병용 전략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효소대체요법은 Gb3 축적 억제에는 효과적이지만 혈관 내피세포 기능 회복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파수딜은 Gb3 제거 효과는 없으나 혈관 기능 정상화와 다기관 증상 개선에 강점을 보였다.

한 교수는 “효소대체요법은 세포 내 Gb3 축적을 줄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손상된 혈관 기능을 정상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라며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파수딜은 혈관 기능을 되살림으로써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생존 기간을 연장할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대학 연구진이 수행할 수 있는 범위는 전임상 단계까지며, 실제 임상시험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기업과의 협력과 파트너십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산학 공동 연구와 후속 개발이 이뤄져야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해당 연구 결과는 생명공학·응용미생물학 분야 상위 학술지 Molecular Therapy(IF 12.91, 분야 4위)에 2023년 2월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Fasudil alleviates the vascular endothelial dysfunction and several phenotypes of Fabry disease’다.

파브리병 현 효소치료제와 파수딜의 비교 요약표.©KAIST 의과학대학원 한용만 교수,약업신문=권혁진 기자
 ‘제6회 희귀유전질환 심포지엄’ 현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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