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보험 ‘셀프심사’에 진료권·선택권 흔들…“자동차보험, 피해자 위한 제도 맞나”
자배법 개정안에 의료계·시민사회 강력 반발…치료 연장도 보험사 승인 받아야
국토교통부 “충분한 의견수렴 거쳐 추진…8주 초과 치료도 가능” 반박
부품도 비용도 소비자에게 전가…“보험의 본질은 비용 절감 아닌 피해자 보호”
전하연 기자 haye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8-07 06:00   수정 2025.08.07 06:01

자동차보험의 본질이 ‘피해자 보호’에서 ‘보험사 비용 절감’으로 뒤바뀌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입법예고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하 자배법 개정안)과, 금융감독원이 추진 중인 자동차보험 약관 개정까지 도마에 오르면서, 의료계는 물론 소비자단체까지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자배법 개정안의 핵심은 상해 12~14등급의 경상환자 치료를 ‘8주’로 제한하고, 이후 치료 연장을 원할 경우 피해자가 직접 관련 서류를 보험사에 제출해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피해자의 치료 필요 여부를 의료인이 아닌 보험사가 판단하도록 한 구조로, 대한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보험사 셀프심사를 정당화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6일에는 경제민주화시민연대·금융소비자연맹·금융정의연대·민생경제연구소 등 4개 단체가 공동성명을 내고 자배법 개정안의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보험금 부정수급을 막겠다는 명분 아래, 환자 건강권을 침해하고 보험사 이익만을 대변하는 졸속 입법”이라고 비판하며 “진료 지속 여부는 의료인의 대면 진단을 통해 결정돼야 하며, 보험사가 치료 승인권을 쥐는 구조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피해자가 보험사에 직접 치료 경과를 증명해야 하고, 이의신청을 하더라도 보험사만 자료를 위원회에 제출할 수 있는 구조는 심각한 비대칭 문제를 낳는다. 취약계층일수록 행정적 부담이 커지고, 결국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이번 개정안은 기습적으로 추진된 것이 아니며, 지난해부터 관계 부처 합동으로 제도개선을 준비해온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 자동차운영보험과 백선영 팀장은 최근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개정안은 자동차 상해 12~14등급 경상환자의 장기치료 분쟁을 줄이고,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며 "8주 이후에도 치료가 필요한 경우, 진단서와 경과기록 등 추가 자료를 제출하면 치료는 계속 가능하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향후 공청회와 대국민 설명회를 통해 추가 의견 수렴을 이어갈 방침이다. 또 8주 기준의 합리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경상환자 중 대부분이 4~8주 이내 치료를 마친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치료 제한보다는 보험금 기준의 합리화에 방점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이어 발표되는 자동차보험 제도 개편이 ‘보험사 중심’으로 기울어지는 상황에서, 의료계와 소비자단체는 한목소리로 묻고 있다. “보험의 목적이 과연 피해자 보호인가, 비용 절감인가.”

보험사 중심의 제도 개편에 환자 치료권과 소비자 선택권 침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픽사베이

한편, 자동차보험 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자배법 개정안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는 16일부터 시행 예정인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개정안은 보험금 산정 기준을 기존의 자동차 제조사 순정부품(OEM)에서 ‘인증부품’ 기준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소비자연맹은 이 역시 “소비자의 실질적인 선택권을 제한하고, 수리 후 안전성·품질 저하 위험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구조”라며 반발했다.

인증부품은 아직 시장환경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정부는 소비자 고지와 동의 없이 제도를 일방적으로 시행하고, OEM 부품 사용 시 차액을 소비자가 자비로 부담하도록 설계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당한 수리를 원할 경우 추가 비용을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데, 이는 경제적 여건에 따라 안전한 수리 여부가 달라지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이 개정안에 반대하는 국민청원 참여자는 2만8000명을 넘었고, 수리 후 중고차 감가상각 우려, 서비스센터 보증 제외 등 현실적인 피해 가능성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단체는 “보험금 절감 명분으로 소비자 권리를 축소하는 제도는 재검토돼야 하며, 인증부품 활성화가 필요한 방향이라면 단계적 도입과 소비자 동의 절차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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