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의 성장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안에서도 제조 기반에 대한 신뢰는 새로운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미국, 유럽 등 주요 수출 대상국에서 제조 품질과 공정 관리를 검증하는 기준으로 '우수 제조 및 품질 관리 기준(cGMP)' 인증이 요구되면서,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들에게는 또 다른 과제가 생겼다.
일부 브랜드는 자체 공장 또는 협력사의 제조 능력을 기반으로 수출 판로를 넓히고 있지만, 정작 글로벌 유통망에서 요구하는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계약이 무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술력이나 제품력보다 ‘제조 시스템의 신뢰’가 우선적인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cGMP 인증을 둘러싼 전략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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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MP, 제조와 품질을 아우르는 기준
cGMP(Current Good Manufacturing Practices)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설정한 품질 관리 기준으로, 제조 공정의 설계부터 설비·환경 관리, 시험 절차, 문서 기록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조 프로세스에 대한 통합적 기준 체계를 의미한다. 단순한 생산 위생이나 품질 점검 수준을 넘어서, 과학적이고 구조화된 품질 보증 시스템을 기업이 얼마나 내재화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구조다.
특히 cGMP는 일률적인 매뉴얼 방식이 아닌, 각 제조업체가 제품군·기술·규모에 따라 자체적으로 설계한 시스템이 과학적이고 안전한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제조 환경은 물론, 투입 원료의 품질, 생산 조건, 시험 방법, 이상 발생 시의 처리 절차까지 정량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문서화된 절차와 지속적인 개선 시스템도 핵심 요소다.
cGMP의 ‘c(Current)’는 최신성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인증 시점의 상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최신 기술과 공정 개선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유연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는 의미다.
글로벌 시장에서 커지는 품질 기준의 무게
K-뷰티의 성장은 더 이상 저가 OEM 기반 제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민감성 케어, 항노화, 손상 복구 등 기능 중심의 제품군이 주력으로 부상하면서, 단지 원료의 효능뿐 아니라 제조 과정의 안정성과 일관성도 소비자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특히 미국·유럽 시장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주요 유통 채널에선 cGMP 인증 여부를 입점 및 계약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기관투자자나 글로벌 파트너십 협상에서도 cGMP 인증이 브랜드의 내재된 신뢰 자산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서류상 인증’이 아니라, 실제 운영 프로세스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묻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국내 ODM 기업 관계자는 “브랜드 입장에선 ‘원료가 좋다’는 설명만으로는 이제 설득력이 부족하다”며 “해외 바이어는 제조 환경을 직접 확인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인증기관의 검증 결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21일 말했다.
소비자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민감성 피부나 특정 질환을 가진 소비자는 제조 이력이나 공정 안정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브랜드가 제조 신뢰를 확보하고 있는지를 선택 기준으로 삼는다. 브랜드 입장에선 제조 품질에 대한 내러티브가 마케팅이 아닌 '기업 역량의 증거'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기업의 제도 대응과 역량 한계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 기업 상당수는 식약처의 CGMP(우수 화장품 제조 및 품질 관리 기준) 인증을 확보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품질 관리 체계 운영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중소 제조업체나 스타트업 브랜드의 경우, 표준작업지침서(SOP)를 포함한 문서화 체계가 미비하거나, 품질 관리 전담 인력이 부족해 국제 기준의 심사 항목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CGMP는 국내 제조 환경에 맞춰 마련된 ‘권장 기준’으로, 현장 위주의 관리 체계에 방점을 두고 발전해왔다. 최근엔 화장품 제조 및 품질관리 국제지침인 ISO 22716과의 정합성을 고려한 개정 작업이 진행되면서, 위생·환기·교차오염 방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지침이 보완되고 있다. 특히 2024년 12월 개정된 해설서에선 운영 예시를 통해 제도 이행의 현실성을 높이는 방향이 강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선 미국 FDA의 cGMP 기준이 한층 더 까다롭다고 평가한다. 단지 시설 관리 수준을 넘어, 제조 전 과정이 데이터로 기록되고, 변경 이력·시험 결과·직원 교육 등 운영 판단의 모든 근거가 명확히 문서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 SOP는 단순한 절차서가 아닌, 조직 전체의 품질 의사결정이 표준화돼 있음을 입증하는 구조로 요구되며, 이 문서 기반 관리가 실사 시 핵심 항목으로 간주된다.
한 뷰티 브랜드 대표는 “공장 협력사와 함께 cGMP 인증을 준비해본 적이 있었는데, 위생 상태나 생산 품질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왜 그렇게 관리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는 점에서 벽을 느꼈다”며 “사실상 인증을 받으려면 전체 제조 운영 체계를 새로 짜야 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국제 인증을 요구하는 시장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적 설계 역량이 브랜드 신뢰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기업 입장에선 인증 자체보다도 그 수준의 기준을 일상적으로 운영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제조 신뢰 확보를 위한 현실적 대안들
K-뷰티 제조업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유럽 시장 진출을 목표로 ISO 22716 인증을 획득하거나, 식약처 CGMP 기준을 바탕으로 내부 문서화 체계를 고도화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NSF, SGS, TUV SUD 등 제3자 인증기관의 지원을 통해 국제 규격에 맞춘 제조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FDA 등록·실사 대응 전문 컨설팅사를 활용해 미국 시장 요건에 맞춘 문서 체계를 정비하는 업체들도 있다. 브랜드 단위에선 제조 파트너를 변경하거나, 수출 제품군에 한해 인증 보유 공장에서 별도 생산하는 전략도 활용된다.
특히 NSF는 비교적 실무 부담이 큰 중소 제조사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인증 및 컨설팅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 심사 중심이 아닌, 현장 실사를 통한 제조 환경 진단과 개선 제안, 이후의 교육 및 사후 컨설팅까지 연계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NSF가 적용하는 기준은 화장품 제조 환경과 품질 시스템을 평가하는 국제 인증 규격인 NSF/ANSI 455-3이다. 이 표준은 ISO 22716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글로벌 유통망과 규제 기관이 요구하는 핵심 항목을 충족하는 데 실질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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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F 관계자는 “NSF의 cGMP 인증은 심사를 통과시키기 위한 형식적인 점검이 아니라, 실질적인 제조 시스템의 상태를 함께 분석하고 개선을 유도하는 프로세스”라며, “특히 인증 이후에도 품질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교육과 내부 역량 구축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중견 제조업체는 NSF 인증 과정에서 기존의 ‘감각 중심 검사 체계’를 개선해, 수치 기반 품질 기준표를 새롭게 도입했다. 이로 인해 생산 품질의 일관성이 확보됐을 뿐 아니라, 글로벌 유통망과의 거래에서도 검증된 제조 신뢰도가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결국, 제조 품질 시스템은 더 이상 단순한 생산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인증은 선택일 수 있지만, 그에 준하는 제조 신뢰의 구조를 갖추는 일은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기술과 제품력에 더해,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투명한 설명력이야말로 현재 시장이 요구하는 새로운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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