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약회사 '철밥통 신화' 와르르?
한때 공무원·교수와 함께 '3대 평생직장'
이덕규 기자 abcd@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03-10-27 18:16   수정 2003.10.27 23:28
안정적인 평생직장의 대표격이었던 은행원이나 공무원들이 IMF 이후 줄줄이 퇴직행렬에 가세하면서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내에서는 이른바 '철밥통' 신화가 여지없이 깨어졌다.

애초부터 평생직장이란 말을 듣기 어려웠던 외국의 경우에도 한 동안 '철밥통'에 가까운 분야로 타 직종 종사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업종들은 없지 않았다.

오랫동안 제약산업은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케이스의 한 업종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로 상황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말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계 3위의 메이저 제약기업 머크&컴퍼니社는 지난 22일 정규직 3,200명을 포함한 4,400여명의 재직자들을 감원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게다가 이 회사의 레이먼드 길마틴 회장은 "추가적인 감원이 뒤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개된 감원규모 4,400명만 하더라도 현재 전체 재직인력의 5%에 달하는 수준임을 감안할 때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언급인 셈.

머크에 앞서 쉐링푸라우社는 지난 8월 1,000명 수준의 감원계획을 공개했다.

아직은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있는 세계 최대의 제약기업 화이자社도 파마시아社와 통합을 단행한 데에 따른 인력흡수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감원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생명공학기업인 박스터 인터내셔널社(Baxter)와 혈액제제 메이커 서루스 코퍼레이션社(Cerus)도 공동으로 진행해 왔던 임상시험의 중단을 발표한 후 대대적인 감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990년대에 첨단기술 관련업종이나 교통, 금융 등의 분야에서는 감원이란 항상 '현재진행형'에 속하는 문제였던 반면 제약산업은 거칠 것 없이 발전을 거듭하는 성장산업이었다.

그러나 한때 공무원, 종신교수와 함께 대표적인 평생직장으로 손꼽혔던 메이저 제약회사 재직자들 사이에서 어느새 '철밥통 신화'는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얘기에나 해당될법한 옛말이 되고 말았다.

특히 제네릭 제형들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거나, 특허만료된 블록버스터 품목을 대체할 후속신약을 내놓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분식회계 의혹 등으로 인해 제조·마케팅 전반에 걸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거나, 또는 시장에서 회수조치된 제품들과 관련해 봇물을 이루는 소송으로 기둥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제약기업들에게 '평생직장'이란 먼나라 얘기에 불과할 뿐이다.

더욱이 오늘날 미국에서는 정부와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거센 약가인하 압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와 관련, 톰슨 퍼스트 콜 증권社는 "제약업종의 평균이익률이 지난 1998년에는 17%, 1999년 16%, 2000년 18%, 2001년 16%로 해가 갈수록 감소한 데 이어 올해에는 8%대로 한자리 단위까지 떨어질 전망"이라고 예측했다.

또 IMS 헬스社는 "올들어 지난 9월 말까지 최근 1년 동안 처방조제 건수가 전년대비 2% 증가하는데 그쳐 2002년 동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5%에 비해 적잖이 뒷걸음질쳤다"고 밝히고 있다.

일리노이州 시카고에 소재한 고용중개업체 챌린저, 그레이 & 크리스마스社의 존 챌린저 회장은 "이웃한 캐나다에서 저렴한 의약품들을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는 목소리까지 고조되면서 갈수록 제약산업에 위협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대적인 감원의 위험성이 상존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

실제로 굴지의 제약회사들 상당수가 본거지를 두고 있는 뉴저지州의 경우 제약산업의 하향세로 고용과 세수(稅收) 측면에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알버트 크롤 州 노동장관은 "제약기업들이 감원을 발표하면 예외없이 핫 이슈로 떠오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2년 동안에만 8개 제약기업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재취업·이직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260만 달러의 예산을 썼다"고 덧붙였다.

존 챌린저 회장은 "이제 제약업종이 안전한 평생직장이라는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이란 순환주기가 있는 만큼 항상 성장만 하는 업종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챌린저 회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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