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된 의약품의 사용기한은 언제까지 일까.
병원 약국이나 지역 약국에사 처방 조제되는 의약품의 사용기한 기준은 의약품 포장 겉면에 표시된 '유통기한'이다.
그러나, 약국가에서는 개봉한 의약품, 즉 낱알 조제되는 의약품의 경우 유통기한이 아닌 '사용기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병원약사회 질향상위원회는 16일 '2019 병원약제부서 관리자 연수교육'에서 '개봉 후 의약품 사용기한 수립(안)' 에 대해 발표했다.
나양숙 질향상 이사(서울아산병원 약제팀 주사조제UM)는 "개봉한 의약품은 원래의 의약품 보관조건과 동일하지 않은 환경에서 보관되어 개봉하기전의 사용기한이 유지되지 않을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 가이드라인 제작이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봉 후 의약품의 사용기한은 보관 온도 및 습도(실온보다 높은 온도 또는 일반적인 조건에 비해 습도가 높은 조건에서 보관한 경우)의 영향을 받게 되고, 차광 보관해야 하는 약을 빛이 드는 장소에 보관했을 경우나, 냉장보관 약을 실온에 보관하는 등 다양한 환경요인이 의약품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나양숙 이사는 "약국에서도 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유효기간을 관리하고 있지만 개봉해서 끝까지 사용하는 것에 고민이 된다. 그동안은 그 문제에 대해 눈을 감았을 수도 있다"며 "그동안은 육안으로 봤을 때 변색이 되면 버리곤 했다. 개봉 후 약에 대한 관리가 없었다. 의약품(포장)에 적힌 유효기간으로 사용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대부분은 유효기간에 대한 정보가 있지만, 외용제나 시럽은 제약사에 물어봐서 확인을 해야하는 경우도 많아 이러한 작업을 병원 약제부에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주사제의 경우, 앰플은 남은 약을 바로 버리고, 바이알은 24시간 내 쓰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경구약은 의약품 유효기한을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고, 개봉 후 의약품 사용은 병원 약제부나 약국마다 알아서 관리하는 수준이다.
특히, 처방일수 제한이 없기 때문에 3, 6개월 이상 처방이 나오는 경우도 많아, 가정에서의 개봉 의약품 '안전성' 문제는 약사들의 오랜 고민거리라고 지적했다.
개봉 의약품의 사용기한이 경과한 경우, 화학적 불안정으로 약효의 변화(활성 성분이 낮아지거나)나 PH변화, 박테리아 및 기타 미생물적 오염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산제(가루약)의 경우, 소아나 노인 환자들이 복용하게 되는데, 증상을 유지하는 경우, 6개월 이상 장기처방이 되기도 해 안전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나양숙 이사는 "2~3가지의 알약을 으깨고 갈아 가루로 만들어 섞게 되면, 그 약들이 보관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게 될지 알수가 없다"며 "요양병원 규정사례집에서 산제 조제 기준이 30일로 돼 있다. 그러나 현실성이 없는 수치"라고 지적했다.
또 "개봉 의약품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안전해서가 아니라 그런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제껏 문제가 없었으니 경험적으로 알아서 사용하라는 말을 하지만, 약사입장에서는 이를 외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제약사가 생산 단계에서 가루약 제형이나 다양한 용량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지만, 사장 규모가 작아 비용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알약을 갈거나 자르는 등의 조제를 할수 밖에 없다.
이에 병원약사회는 최근 15개 병원의 개봉후 의약품 사용기한에 대한 조사를 실시, 경험적 근거 자료와 USP 가이드 등을 참고해 사용기한 기준 가이드를 만들고 있다.
김수현 질향상위원회 부위원장은 "제품설명에 적힌 유효기간은 용기에 고스란히 담겨있을 때 적용된다. 투여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 물리화학적, 생물학적 변질이 있을 수 있다"며 "병원약사회는 일선 약사들이 지킬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자 한다. 자칫 잘못 만들면 폐기하는 약이 급격하게 많아질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여러 검토를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나양숙 이사는 "아직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산제와 시럽제가 가장 문제로 가이드라인은 약사들에게 안전 지침을 준다는 의미로 의사, 약사, 환자, 보호자 등이 문제를 인식하길 바란다"며 "개봉 후 의약품 사용기한에 대한 결론은 정부도 아직 못 내고 있다. 이 문제가 공론화 되면 제약사나 정부기관에 어느 정도 선에서 가이드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병원약사회에서 제작하는 가이드라인은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며 "결국 환자안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약사회도 이 같은 목소리를 같이 내고 있다. 김대업 회장은 300일치 이상 산제(가루약) 처방으로 조제되는 의약품의 위험성을 지적, '상시적 위험'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통 포장에서 개봉돼 여러 개의 약이 1회 복용단위로 포장되는 국내 조제 환경에서 산제(가루약)를 2개 이상 섞어 한곳으로 포장하고, 이를 가정으로가져가 보관하면서 먹는 것이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약사회의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