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약과 건강기능식품을 카트에 담아 구매하는 이른바 ‘창고형 약국’이 등장하면서, 약국가가 술렁이고 있다. 소비자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약물 오남용 가능성과 약사 전문성 약화, 가격경쟁의 확산 등 구조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경기도 성남 외곽에 문을 연 창고형 약국은 약 130평 규모로, 일반약·건강기능식품·의약외품·동물약 등 2,500여 품목을 취급한다. 소비자는 마트처럼 진열된 약을 직접 장바구니에 담고 계산대로 가져가는 구조로, 제품에는 모두 가격표가 부착돼 있다. 전문약은 취급하지 않는다.
특히 이지엔6, 타이레놀서방정, 임팩타민프리미엄 등 일부 품목은 시중 약국 대비 절반 수준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가격정보는 SNS·블로그·영상 플랫폼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 방문 후기도 활발히 게시되고 있어, 빠른 확산이 예상된다. 이 약국을 찾은 대다수의 시민들은 “약 종류가 많고 분류가 잘 돼 있어 고르기 편하다”, “시중 약국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접근성도 좋다”고 평가했다.
약사사회는 이에 대해 △가격 중심 소비 유도 △복약지도 약화 △전문성 희석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약사가 매장 내 상주하지만, 소비자 요청이 있을 경우 복약 상담과 복용법 안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상담 구조 자체가 전문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약사회 관계자는 “창고형 약국은 박리다매 구조인 만큼 약사의 복약지도가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소비자에게 가격 차이만 부각되면 기존 약국의 상담·복약서비스 가치는 평가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한 지역 약사는 “일반약 가격이 외부에 노출되면 약국의 정당한 서비스 가치가 폄훼될 수 있다”며 “저가 경쟁이 일상화되면 제약사와 대형약국 간 구매격차가 확대돼 동네 약국은 더 열세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해당 약국을 운영하는 대표 약사는 과거 서울 종로 일대의 대형 약국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업계는 더 강도 높은 저가 경쟁이 펼쳐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창고형 약국은 ‘성남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 체인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도 외곽 및 충청권에 추가 개설이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며 “기존 마트형 약국들이 수도권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한 사례처럼, 창고형 모델도 전국화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미 수도권 일부 대학병원 문전약국까지 일반약 저가판매에 가세하고 있으며, ‘맘카페 약국’ 등 키워드를 활용한 홍보까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약사는 “약국에서의 판매가격은 단순 상품가가 아니라, 약사의 상담과 복약지도, 책임까지 포함된 복합 서비스”라며 “약국이 가격 비교의 장으로 전락할 경우 시장은 장기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셀프계산대, 덕용 포장 일반약 판매, 약 택배 명시 등은 약국의 본질을 훼손하고 의약품 유통에 대한 인식을 왜곡할 수 있다”며 “서울시약사회·경기도약사회와 함께 현장을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당장 폐점을 단언하긴 어렵지만, 결코 방관하지 않고 실질적인 해법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소비자단체는 창고형 약국 모델이 ‘정보 접근성과 가격 투명성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약사사회는 유통 질서와 복약지도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