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기도 과천시에서 2012년 7월부터 지난해 년말까지 365일 약국을 운영했다. 나는 85학번으로 약대 졸업후 약국을 열었고 그후 2004년도에 자녀교육 때문에 캐나다로 이민하였다가 생동성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소에서 시험책임자로 일하게 되어서 2008년 귀국하였다.
그리고 뜻하는 바가 있어서 2012년7월 365일 약국을 열었다.
“ 오직 자리 하나로 약 90%의 약국 수입이 결정된다.”
이것은 한 젊은 약사가 한 말이다. 이 표현에서 약국의 현실을 극단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약사 혼자 약국을 운영하는 약국이 전국 이만여개의 약국 중 대략 70~80%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약국에 가면 늘 보던 약사가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익숙한 약사가 아닌 낯선 약사는 믿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약국은 약사법에 의해 약사가 의약품을 취급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의약품을 구매하며 약사가 아닌 약국 내의 일반 직원과 그들의 건강에 관하여,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의문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익숙하기도 하다. 사람들은 약국에서 약사인가 아닌가 보다 낯익은 얼굴인가 아닌가에 더 민감하곤 한다.
나는 365일 약국을 운영하며 나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적절한 근무시간과 역시 적절한 근무 강도를 파악하고 나머지는 최대한 직원들에게 배정했다.
손님들이 내게 익숙해져서 나만 찾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직원들의 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다. 특히 약40여평의 드럭스토어였기에 일반직원과 근무약사의 업무 분담과 긴밀한 협조는 약국 경영에 꼭 필요했다.
'THE SOUL OF PHARMACY'
약학의 영혼! 그것이 제77차 서울FIP총회의 타이틀이었다.
나는 FIP창립 이후 77년만에 서울에서 열린다는 그 세계약사연맹 총회를 ‘내가 언제 구경하랴?’ 라는 가벼운 마음에서 참가했다.
FIP는 1년에 한 차례씩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열리고 있었고 공식일정은 9월10일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전날인 9월9일부터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테크니션 심포지움이 9일부터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크니션 심포지움에는 당연히 테크니션들만 참가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갔던 나는 테크니션 보다 오히려 많은 약사들을 만나고 매우 놀랐다. 물론 테크니션들도 있었다. 발표자들 역시 테크니션도 있었고 약사도 있었다.
이 테크니션 심포지움에는 미국, 캐나다와 같이 테크니션제도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 나라에서도 온 약사들도 있었고 호주나 싱가포르처럼 법으로 테크니션 제도가 없는 나라에서 온 약사들도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Lita는 싱가포르에서 온 약사였다. 그녀는 보건성에 근무하는 Chief약사로 부교수였다. 내가 Lita에게 “아니, 왜 약사들이 여기 있어?” 라고 처음 질문했을 때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Working is very close, so we have to educate them and to manage them."
테크니션 심포지움은 9일과 10일 양일에 걸쳐 열렸고 나는 이틀 모두 그 방을 들락거리며 테크니션 심포지움의 의장인 Catherine(캐나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나는 그녀와 내가 왜 테크니션 심포지움에 관심을 가지고 참가했는지, 그리고 한국에서 365일 규모있는 약국을 운영하며 약국 시스템화를 하기 위해 일반직원의 활용과 그를 위한 전문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나의 의견을 내어놓고 그녀와 의견을 나누었다.
Catherine은 매우 친절했고 그 자리에서 마침 지나가던 그녀의 동료 Susan을 불러세우며 나를 소개하고 인사시키며 Susan이 많은 일을 한다고 했다. 그녀들은 그 즉석에서 다음날 있을 테크니션들만의 미팅에 나를 초대해 주었다.
사실 내 영어 청취력은 그들의 유창한 영어를 알아듣기에는 벅찼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뽑아서 질문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미팅에 참가해서 뭔가 얻을 게 없을 것 같기도 했지만 FIP 테크니션파트의 의장직을 오랫동안 맡고 있다는 Catherine과 아이디어뱅크역을 하고 있는 듯한 Susan을 비롯한 세계의 테크니션들의 미팅을 지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그들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당일 약국으로 돌아와 근무시간을 조율하고 다음날 다시 그들의 토론회에 참석했다.
거기에는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텐 등 주로 북유럽의 테크니션들이 캐나다의 Catherine, Susan 과 함께 이번 심포지엄에서 나왔던 내용들을 주제로 정리하고 그들의 일에 대한 논의를 했다. 나는 조용히 듣기만 하다 돌아왔다.
9월10일과 11일에는 KOREAN SESSION에 참가했다.
11일날 있었던 SESSION에서는 생동성 시험의 시험책임자였던 경력으로 인해 매우 주의깊게 경청하였다.
실험실과 제약회사와 약국의 모든 업무 과정을 감독하는 식약청과 보건복지부가 의약품의 최종 소비처인 약국에서 일하는 약사의 업무와 고충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2017년 12월까지 운영했던 과천의 맑은샘약국은 2012년7월에 코오롱웰케어의(지금은 티슈진으로 개명된) 모델약국이었다. 과천 코오롱본사 건물 바로 옆의 별관 건물에 있던 맑은샘약국은 약7만명의 과천시민들이 365일 언제나 이용할 수 있도록 기획되어졌다. 처방전 유입이 어려운 약국의 생존 은 우수한 효능을 가진 약국화장품과 다양한 제품들을 판매함으로써 얻게 되는 수익에 큰 영향을 받았다.
약국에는 한 동안 코오롱월케어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 상근을 했다. 약국의 직원을 뽑을 때나 근무할 때나 직원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는 나는 오랜 관찰 끝에 약국 경영의 효율성 측면과 약사 업무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 코오롱웰케어 직원이 가지고 있는 제품 판매력과 약국 직원의 전산 업무 및 여러 정리, 보조 업무를 융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경영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약국의 하드웨어에는 약국 외관과 간판, 내부의 진열장, 조제실,자동포장기,, 컴퓨터 등이 있고 소프트웨어에는 전산시스템, 바코드, POS 그리고 인력이있다. 그 인력 구성은 약사와 일반직원으로 나누어진다.
약사의 교육은 개별 약국에서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약사면허증을 취득한 약사는 전문직업인이기에 그에 합당한 교육을 일반적인 약국의 약국장이 제공하기에는 여러 면에서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원들은 다르다. 그럼에도 직원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교육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보통의 약국은 규모가 작고 영세한 편이어서 일반인들에게 직장으로서의 약국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낮은 탓에 일정 수준 이상의 직원을 뽑는 것이 쉽지 않다.
나는 코오롱W-STORE의 본부와 근거리에서 일하며 많은 파견 직원들이 번갈아 약국에 와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고 약국 직원도 관찰할 수 있었다. 격있는 말투와 고객 응대술을 장착하고 있는 그룹의 직원들의 판매력은 달랐다. 나는 그것에 주목했다.
이제 약국의 약국장은 직원들에게 4대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시켜 주어야 하고 퇴직금도 챙겨주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약국의 약사 외 노동 인력은 양성화되고 그 질 또한 향상되어야 한다.
나는 지역약국의 약국장으로서 약국을 유지하기 위한 나의 길을 찾던 중 가지게 된 나의 생각이 약대 6년제 이후의 미래 약사 사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길이란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생각을 현실화하기 위한 길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을 논의해보기 위해 당시의 코오롱W-STORE 대표는 물론 지역약사회, 대한약사회, 대학교수 등 많은 루트를 통하여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그러나 어느 누구도 대답은커녕 심도있게 들어주지도 않았다.
지역약국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의약품을 다루는 약사 고유의 업무와 관련한 수입으로 생존을 할 수 있는 약국의 위치는 매우 한정적이고 부분적이기조차 한 상황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약국의 접근 편의성이 지나치게 떨어지다 보니 의약품을 편의점에서 구입하겠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지난 해 이미 6월 초에 약국 건물 매각을 통보 받은 상태에서 9월 FIP를 참석할 즈음 심란스러웠다. 약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보겠다고 노력해보았지만 건물 매각으로 인해 수익을 올리기는커녕 막대한 손실을 보고 퇴장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내가 그토록 동료 약사들을 대상으로 줄기차게 주장해오던 약국에서의 전문인력에 대한 필요성에 세계의 많은 나라 약사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서로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더욱 심란하였다.
한 때 약대생들의 약국현장 실무실습을 담당했던 임상교수로서 미래 세대의 후배약사들을 위하여 오늘 그들의 미래를 설계하고 논의할 대상인 현장의 약사들과 실무진, 교수들은 아무도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FIP마지막 날 이었던 9월14일, 리더십 코스에서 만난 나이지리아 약사 Nkechi와의 만남은 내게 작은 충격이었다. 소통에 대한 기술을 이야기하던 세미나룸에서 나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Nkechi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나이지리아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Nkechi는 어디서 근무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3군데의 약국을 관리하는 스텝약사라고 대답했다.
나는 Nikechi와의 대화에서 나이지리아가 법인약국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녀는 2주에 한 번씩 세 군데 약국의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한 달에 한 번씩 약사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3군데의 재고관리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찾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내가 운영하던 맑은샘약국은 병원에 종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약품을 갖추고 365일 일종의 종합병원 같은 역할을 담당하던 약국이었다. 약국 이용 내방객들의 만족도는 좋았으나 경영하는 약사인 나는 인력관리와 재고 문제로 적지않은 손실을 보아야 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나라도 나이지리아와 같은 시스템으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대다수 약사들이 반대하고 또 싫어하는 법인약국의 길이었다.
그러나 내가 경험했던 W-STORE처럼 약사가 주관하는 법인약국이라면 가능성도 보였다.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것은 항상 쉽지 않다.세상은 변하고 있다. 약국은 이미 그 변화의 흐름을 놓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지던 약국 시스템화를 위해 꼭 풀어야 되는 약국 직원 관리의 한 핵심인 일반직원의 양성과 그 필요성에 대해 다시 무언가 해볼 용기를 얻었다.
리더십 코스의 마지막 타임에 나는 손을 들고 의견 발표를 했다.
“I was KOREAN, and now I am CANADAIN. I am a Korea pharmacist.
I learned many thing through this FIP. Thank you. I am running my drug store 365 days, everyday, and I felt some BLOCK in KOREA. Now I think I have to do something more for our future."
세미나가 끝나고 그 방에서 안내 봉사를 하던 경상대 약대 정준영 학생과 두 여약사가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완전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해외교포 약사들이었다.
FIP 조직위원장이셨던 전인구 교수님은 내가 역시 조직위원장이셨던 백경신박사님을 뵈러 코엑스의 조직위원장실을 찾아가서 사진을 같이 찍자고 요청 드렸을 때 한 보드판이 걸린 볼품없는 벽면 앞에서 포즈를 잡으셨다. 좀 더 그럴싸한 데서 찍는게 어떻겠느냐는 나의 청에 전 교수님은 그 보드판에 빽빽이 적혀있는 글씨를 가리키며 이것은 FIP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의 명단이라며 이 학생들이 미래이기 때문에 여기서 찍자고 하셨다.
그 사진은 지금 내 핸드폰에 고이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마음 속에도 단단히 저장이 되었다.
우리는 약사의 생존을 위해서 보다 약사가 왜 존재하는가?
사람들이 의약품을 왜 편의점에 넘기라고 아우성치게 되었는가?
시스템의 변화가 먼저인가? 약사 인식의 변화가 먼저인가?
같이 생각해 보아야 될 것 같다.
<김현주 약사>
우석대학교 약학과 졸업
동대학원 약학석사 및 약학박사 학위 취득
전) 주)사과나무 임상연구소 연구소장
전) 코오롱 W-STORE 운영위원
전) 숙대 약무실무실습 임상교수
전)과천 온누리맑은샘약국 약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