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유통현장 가보니 ‘바코드·묶음번호 표준화’ 절실
일련번호로 10개 이상 제품 낱개 확인에 ‘진땀’…‘신속 배송’은 옛말 될 듯
김정일 기자 jikim@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18-04-16 06:10   수정 2018.04.16 06:55

 

2017년 7월 1일 의약품유통업계에 일련번호 제도가 도입된 이후 올해 말로 행정처분 유예가 끝나 내년 1월 1일부터는 제도 미비로 오배송 등이 발생할 경우 처벌이 가능해진다.

일련번호 실시간 보고 제도가 시행된 지 9개월여가 지났지만 의약품유통업계와 제약업계, 정부 3자 간 입장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유통업계는 묶음번호 표준화·법제화, 바코드 표준화, 2D바코드·RFID 병행·일원화, 비용 지원 등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12일 한 의약품유통업체를 찾았다. 의약품 출하 과정을 체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좁은 창고에는 의약품 보관대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 사이로 의약품을 담은 카트와 사람들이 한데 엉켜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비켜갔다. 때로는 정체되기도 했다.

“보통 월초에 의약품 재고의 60~70%가 들어오는데 금액으로는 70억원이에요. 일련번호가 시행되면서 70억원치 의약품 바코드를 하나씩 다 찍어서 입고와 출고를 동시에 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일련번호 체험에 동행한 유통협회 관계자의 얘기다.

기존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의약품 출고 과정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배송 지시서를 찾아 의약품 배송 카트에 준비한 박스 앞에 넣었다. 카트 1대에는 총 9개의 배송 박스를 놓고 의약품을 분류한다.

배송 카트에는 타블렛 PC가 설치돼 있다. 여기에 배송지시서를 읽혀야만 작업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화면에 배송처별 의약품의 진열 위치를 알 수 있는 영어와 숫자가 뜬다.

의약품 보관대 속으로 들어가서 원하는 약을 찾으려고 했지만 처음 하는 일이라 속도는 상당히 더뎠다. 위치를 찾고 의약품을 가져와 바코드에 대자 화면에는 배송 의약품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던 직원이 “이 약품은 10개를 전부 다 찍어야 한다. 똑같은 제품이어도 10번을 각각 읽혀야 하고 100개면 100개를 전부 읽혀야 한다”고 알려준다.

한 제품의 바코드가 읽히지 않았다. 제품 홍보를 위한 어플리케이션 인식 QR코드였다.

2D와 1차원 바코드가 동시 표기된 경우도 많았다. 우선적으로 2D 바코드를 찍어야 한다. 1차원 바코드는 흔히 일반 제품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숫자와 선으로 이뤄져 있다.

여러 번 반복하자 바코드 위치를 찾는 것도 문제였다. 바코드 위치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어떤 제품은 뒷면에 있고 다른 의약품은 옆면에 있고, 위나 아래에 있는 경우도 있었다. 같은 회사 제품도 바코드의 위치가 달랐다. 또한 한 제품에 3~4개의 바코드가 붙은 제품들도 적지 않았다.

의약품 20개를 배송하라면 20번, 100번이라면 의약품 100개를 하나씩 다 찍어야 배송을 할 수 있다. 제품별 바코드 위치가 다르니 단순 반복임에도 쉽지 않았다. 속도를 올리기 위해 5개를 한손에 들고 바코드에 찍자 의도치 않게 바코드가 찍히거나 인식이 잘 안 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업체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인식률이 더 안 좋았다”며 “현재 나온 건타입 바코드기 중 가장 좋은 제품을 새로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은 1대당 80만원선이었다.

이 업체 직원은 보통 하루에 카트로 30번 정도 돈다고 했다. 카트에 실을 수 있는 배송박스가 9개이니 1인당 배송처 270개 정도의 출하 준비를 담당하는 셈이다.

직원은 “바코드 위치도 다르고, 잘 찍히지도 않고 헷갈린다”며 “묶음번호로 들어오는 것도 있긴 하지만, 있어도 유효기간 등 필요한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

유통협회 관계자는 “만약 특정 날에 의약품 15억원 정도 입고가 되면 전산 입력조차도 바쁘다. 의약품을 하나씩 다 바코드를 찍고 다시 배송을 하려면 며칠이 걸린다”고 말했다. 출하가 연기되는 시간 동안 20억원의 재고가 더 필요하다면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유통업체와 요양기간을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의약품은 정확하고 원활한 원활한 공급이 중요하다. 현재의 상황으로는 앞으로 신속하고 원활한 공급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체험 유통업체만 해도 업무량은 최소 30% 이상 늘었다고 한다. 바코드 스캔 1번에 1초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10개 이상 출하해야 할 의약품이 배송 물량의 55%를 차지한다. 10개 이상 출하 제품의 경우 묶음번호 표준화가 이뤄진다면 그나마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다.

협회는 유통업계가 2D바코드·RFID 일원화와 부착 위치 표준화 및 법제화를 요구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라고 설명했다. 묶음번호도 국제표준에서 권고하는 2가지 타입이 사용되면서 리더기에 따라 인식률에서 차이가 난다고 한다.

협회 관계자는 “2D·RFID 바코드 일원화는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서 필요하고, 비용 대비 효율성을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RFID를 도입한 제약사에서 2D 바코드 병행이나 일원화에 대해 투자비용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현재 RFID를 도입한 제약사는 9개 정도로 알고 있다”며 “이들 제약사의 관련 비용 부담이 큰지, 유통업계가 RFID 리더기와 이를 위한 별도의 공간 등 RFID를 리딩하는 비용이 큰지를 따져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유통협회는 제약·유통·요양기관의 단계적 일련번호 제도 시행이 병목현상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제도는 유통업계까지 와 있지만 유통업체들의 예상되는 업무 과부하로 배송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 상황에서는 일련번호 제도가 원활한 의약품 배송에 병목현상으로 작용해 요양기관과 환자 불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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