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장관을 비롯한 복지부 관계자들이 지난 4일 환자단체와 간담회를 열고 의료공백에 따른 환자들의 애로사항과 건의사항을 듣고 있다. ⓒ보건복지부
의사 집단행동 장기화로 인한 진료 단축을 빨리 종식시켜달라는 환자의 호소가 국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료계간 갈등으로 피해를 본 환자가 늘어나면서 불안이 거세지는 모습이다.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는 지난 4일 ‘정부와 의료계 대치에 따른 의료공백의 신속한 해결 및 환자중심 의료환경 구축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이 의사 집단행동에 따른 대응으로 시행 중인 비상진료체계를 보완하기 위해 환자단체를 만나 애로사항과 건의사항을 청취한 날 게재됐다.
청원인은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추진, 그에 따른 전공의 및 교수의 집단행동으로 발생한 장기간의 의료공백 사태로 인해 중증‧희귀난치성질환 환자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며 청원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전공의 및 교수 집단사직으로 인한 초유의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는 중증‧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에게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고 실제 피해도 입고 있다”며 “의료계와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해 전혀 양보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걷잡을 수 없는 다수의 환자 피해가 발생할 것이고, 그때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환자들이 더 심각한 피해를 보기 전에 이 사태가 하루빨리 종결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회의 의료진 조속한 복귀를 위한 중재 △환자중심 의료환경 구축 등 두 가지를 국회에 제안했다. 환자입장에선 의대정원 증원 규모보다 어떤 의사가 양성되는지가 더 중요하며, 한시가 급한 환자들에겐 정부와 의료계간 싸움이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것. 또한 전공의 중심이 아닌 전문의 중심의 환자 치료시스템을 갖춰 전공의가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진료지원인력’을 법제화해 의료 질과 환자안전을 담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동의청원 사이트 갈무리.
이처럼 최근 환자단체는 전공의와 의대 교수의 진료 단축을 멈춰달라는 호소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최근 호소문을 통해 주요 진료기관인 빅5병원에 의사들을 설득해달라고 전했다. 연합회는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합병증과 2차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며 “희귀질환 환자들은 진료 경험이 많은 빅5 병원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희귀질환 진료 교수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 주고, 전공의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환자단체연합회 이은영 이사는 지난 4일 복지부 조규홍 장관과의 만남에서 “정부와 환자를 앞세운 대립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는 환자가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의사는 당연히 환자 곁에서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조 장관은 “환자와 그 가족의 불안이 커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사태를 수습하고 우려하는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비상진료체계 운영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의료진이 환자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의료계와의 대화와 설득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조 장관과의 간담회 직후 환자단체연합회는 논평을 통해 이날 간담회가 현재의 의료공백을 종식시키는 실질적 단초가 되길 희망한다며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발생한 환자의 불편‧피해 사례를 공개했다.
연합회가 공개한 환자 피해 사례는 암 28건, 희귀질환 4건, 중증난치질환 2건, 기타 2건, 심장질환 1건, 뇌혈관질환 1건 등 총 38건으로, 대부분 예정돼 있던 수술과 치료가 연기‧취소됐다는 내용이다. 피해 내용을 전한 한 환자는 “백혈병 진단으로 치료 중이다. 조혈모세포 이식 후 재발을 확인했고, 이식상태 등을 점검하기 위해 3월6일 골수검사를 예약했으나 전공의 파업으로 취소됐다는 연락을 일방적으로 받았다. 생명을 담보로 파업하고 있어 너무 두렵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의료공백 장기화로 환자들의 피해와 불편 사례가 이어지면서 정부를 향한 사태 진화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의료계 설득에 난항을 겪으면서 그 피해가 애꿎은 환자에게 향한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조 장관은 8일 열린 ‘중앙사고수습본부’ 제28차 회의에서 환자의 적정 치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중증‧응급환자가 골든타임 내 적정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집단행동 장기화로 27개 중증질환 중 산부인과, 안과 등 일부 질환에 대해 진료제한 메시지를 표출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소폭 증가하고 있어, 응급환자 이송과 전원에 차질이 없도록 응급진료 역량을 더욱 면밀하게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