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가득' 의약분업…약제비합리화·의약정합의 등
복지부 방관적 태도 지적도…의협 "의약분업 제대로된 성과지표 있나"
이승덕 기자 duck4775@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0-07-17 06:00   수정 2020.07.17 07:02

의약분업에 대한 의사·약사와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지적 포인트는 달랐지만, 해결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인식만큼은 하나였다.

지난 16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한국보건행정학회·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최로 열린 '의약분업 20주년 성과와 과제 심포지엄'에서는 이같은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주대 의대 이상의 교수는 발제를 통해 "의약분업 시행 이후 의사-약사 직능별 전문역할 강화와, 의·약 서비스 질 향상, 환자의 알권리 확보 등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하면서 "향후에는 의약품 사용량·약제비 절감과 의약분업 합의안 미이행의 보완, 예외대상·지역 축소,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 과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의사협회를 제외한 모든 패널이 전반적으로 발제의 의약분업 성과를 인정한 가운데, 각각 향후 개선과제를 언급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실비아 연구위원은 "의약분업으로 임의조제가 근절되고 처방전 공개 등 의약품 과다사용 동기가 감소했지만, 그것만으로 의약품 사용 문제가 저절로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습관화된 의약품 과다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동기는 의료공급자·수요자 측면에서 모두 미흡하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의약분업은 처방약 사용을 늘려 약품비를 증가시키고, 의사, 약사 동시 방문으로 의료비 지출 증가를 동반하는 제도로, 2001년부터 시행한 약제급여적정성평가가 항생제·주사제 등 과다사용 약 처방을 감소시켰다"면서도 "모니터링·피드백에 의존한 제도 추가적 효과는 0에 가깝고, 2014년부터 시행되는 처방·조제 약품비 절감 장려금 제도도 효율화 성과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의료기관 간 무한경쟁의 의료공급구조, 행위별 수가제에 기초한 지불체계 하에서 인센티브 제공, 모니터링/피드백과 같은 미시적 프로그램은 정책 효과에서 한계가 있다"며 "의약품의 적정 사용을 위한 구조적 전환이 요구되며, 이는 의료공급구조와 지불제도 개혁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제시했다.

성균관대 약학대학 이재현 교수(의약분업 당시 복지부 사무관)는 "비록 시행과정에서 6차례 의료계 집단 파업과 여·야 영수회담 등 정치적 갈등과 5차례에 걸친 48.9% 보험수가 인상 등  보험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의약분업 성공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의약분업 20년이 되도록 제대로 된 평가나 개선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예외규정 축소 등 완전분업 추구 노력이 부족하고, 의료전달체계 및 소비자 인식 개선 등 미흡한 부분이 많다"며 "특히 '의약협력위원회', '처방약 목록' 등 의·약·정 합의가 불이행된 점이 문제"라고 짚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약·정 합의이행과 예외규정 축소가 이뤄져야 한다"며 "환자 중심 의료체계를 설비하고 준비하기 위해 전문약사 제도 등을 통해 의사-약사 소통을 활성화하고, 소비자 정보제공 및 투약기간 안정성 보장을 위해 '낱알 소분' 조제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약사회 좌석훈 부회장도 "의약분업의 첫번째 효과는 알권리 향상으로, 환자들은 복용하는 약과 질병 정보가 제공돼 소아에서의 페노바비탈 사용의 극적 감소 등 효과가 있었다"면서도 "(의약분업은) 아직도 멀고 먼 길"이라고 밝혔다. 

좌 부회장은 "향후 발전적 의약분업 시행을 위해서라도 처방약 목록 제도가 시행되는 구체적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지역별 특성에 따른 일정 유형의 표준목록 작성 후 기한을 정해 제출하고, 수정해서 제출하지 않으면 표준 목록을 그대로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다른 대안으로는 시범지역 선정 후 효용성 검토도 고려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좌 부회장은 "가장 원망스러운 것은 정부(복지부)로, 환자용 처방전 발행비율 감소와 처방약 목록 미제출로 인한 단골약국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면서 "의약분업 본래 목적을 일부라도 해소하기 위해 대체조제 활성화 홍보와 INN(국제일반명)제도를 시행해야 하고, 환경에 맞는 세심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박종혁 총무이사는 "의료계는 '성과'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조심스럽다고 생각한다"며 "평가지표가 제대로 됐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얼마나 국민건강에 기여하는지 정확한 평가가 내려지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박 총무이사는 "왜 20년이 지났는데도 의사들은 적응을 하지 못한 채 불만을 갖고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진단이 정확히 돼야 한다"면서 "의약분업 성과라고 언급된 의약품 오남용 등이 의약분업의 직접적 결과인지 알 수 없고, 적정성 평가 등 여러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고 짚었다.

박종혁 총무이사는 "다시 의약분업 이전으로 돌아가야하는 것은 아니고, 협업이 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고 전제하며 "무조건 의약분업이 옳다는 전제가 아닌, 자체로 평가를 하고 개선책을 찾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남은경 정책국장은 "10여 년 전에도 정부 주체로 의약분업을 돌아보고 보완을 위한 토론회가 있었는데, 그때와 지금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가하면서 "(10년 전 당시) 여·야·시·정 협의체가 복지부에 보완책을 제안했지만 제안으로 끝났을 뿐 후속조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약분업에 대한 논의가 그동안 너무 의사·약사 등을 중심으로만 이뤄진 게 안니가"라며 "이들이 의·약 영역의 전문가는 맞겠으나, 정책의 방향성을 정하는 문제에서는 국민(환자, 시민 등)도 함께 참여할 수있는 논의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남 국장은 "의약분업을 바라보는 보건의료 각계의 시각차이는 여전한 것 같은데, 주최자에 따라 보는 시각이 정해지는 것도 사실"이라며 "의사협회도 의사협회 주최로 의약분업을 바라보는 자리를 마련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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