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경쟁력”…식약처, 신약 허가심사 세계 최고 수준 ‘240일’ 선언
심사인력 369명→564명 확대…동시 병렬 심사 도입
AI 기반 심사시스템 구축 통해 허가 패러다임 전환
6월 1일부터 허가심사 혁신방안 시행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5-27 06:00   수정 2026.05.27 06:01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신약과 바이오의약품 허가심사 체계를 전면 개편하며 ‘240일 허가심사 체계’ 도입을 공식화했다. 단순 심사기간 단축을 넘어 심사 인력 확대, 동시 병렬 심사 체계 전환, AI 기반 심사 시스템 구축까지 포함된 대규모 규제혁신 패키지라는 점에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식약처가 ‘안전성은 더욱 꼼꼼하게, 심사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신속하게’라는 방향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국내 허가심사 체계가 글로벌 경쟁 체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식약처는 26일 오유경 처장 주재 브리핑을 통해 ‘신약 등 의료제품 허가심사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오는 6월 1일부터 새로운 허가심사 체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혁신 방안은 지난해 대통령 주재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 후속조치로 마련된 정책이다.

오유경 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바이오·AI 등 첨단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새로운 치료제의 신속한 사용에 대한 국민과 환자들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며 “국민들이 혁신 신약과 바이오시밀러, 신기술 의료기기를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심사 기간을 세계 최고 수준인 240일로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단순한 기간 단축이 아니다. 식약처는 자료 준비 단계부터 허가 신청, 실제 심사 과정까지 전 주기를 다시 설계하는 방식으로 허가심사 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존의 순차적 심사 방식에서 벗어나 동시 병렬 심사 체계로 전환하고, 심사 인력을 대폭 확대해 속도와 예측 가능성을 동시에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신약 허가 과정이 지나치게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신약 개발 속도와 허가 속도가 사실상 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상황이지만 국내에서는 제한된 심사 인력과 순차 심사 구조로 인해 기업과 환자 모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다.

식약처 역시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인정했다. 오 처장은 “제한된 심사 인력으로 방대한 자료를 순차적으로 검토하다 보니 신약이 간절한 환자들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지난 4월 심사 인력을 기존 369명에서 564명으로 확대했다. 단순 인원 증가를 넘어 심사 체계 자체를 병렬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점이 이번 혁신의 핵심으로 꼽힌다.

기존에는 품질, 안전성, 유효성 등 각 영역 심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면 앞으로는 여러 분야 심사를 동시에 병렬적으로 진행해 허가기간을 대폭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식약처는 허가자료 준비 단계부터 규제 지원도 강화하기로 했다. 기업이 허가자료를 준비하는 초기 단계부터 핵심 검토 사항을 안내하고 규제 길잡이 역할을 수행해 자료 준비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허가 신청 전 대면회의도 새롭게 도입된다. 기업이 신청 전에 궁금한 점을 직접 식약처와 논의할 수 있도록 하고, 신청 이후에도 동일한 전담 심사팀이 전 과정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도 운영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전담 심사팀 운영이 허가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신약 허가 과정에서 심사 방향이 수시로 달라지거나 담당자가 변경되면서 발생했던 혼선 역시 일부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식약처는 이번 혁신 방안이 단순한 행정절차 개선이 아니라 규제기관 역할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오 처장은 “치료제 개발부터 허가까지 전 과정에서 현장과 소통을 강화하고 심사 속도를 높이는 중대한 변곡점”이라며 “식약처가 규제 서비스 기관으로 대전환하겠다”고 말했다.

 오유경 식약처장이 브리핑에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국회방송 캡처본

이번 브리핑에서는 환자단체와 산업계가 동시에 참여해 정책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중증질환 환자와 가족에게 허가심사 기간은 단순한 행정절차 기간이 아니다”라며 “암이나 희귀질환 환자에게 몇 달, 몇 년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시간이고 완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특히 자신의 가족 경험을 직접 언급하며 신속 허가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25년 전 아내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시 식약처가 두 달 만에 글리벡 허가를 해준 덕분에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생명을 살리는 혁신은 새로운 신약을 개발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며 “이미 개발된 신약을 신속하게 심사해 환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제약바이오업계 역시 이번 정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대한민국은 이미 43개의 신약을 개발했고 파이프라인은 3200개를 넘어 세계 3위 수준”이라며 “이 시점에서 허가 속도는 단순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 그 자체”라고 평가했다.

노 회장은 이번 정책이 단순 행정 개선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시스템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심사 인력 증원과 허가기간 단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제약바이오산업계도 허가심사 혁신 결과가 담보된다면 허가수수료 인상과 인력 증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 의견을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실제로 허가 속도와 예측 가능성이 글로벌 기술수출과 다국적 임상 유치 경쟁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 동일한 신약이라도 어느 국가에서 먼저 허가를 받고 임상을 진행할 수 있는지가 투자와 기술이전, 시장 진입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번 혁신 방안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AI 기반 심사 시스템 구축이다.

식약처는 앞서 총 223억 원 규모 예산을 투입해 2028년까지 AI 심사보조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도 AI 심사 도입 일정과 방향성이 보다 구체적으로 공개됐다.

오유경 처장은 “현재 프로젝트는 정상 추진 중이며 올해 하반기부터는 원료 품질 분야에서 AI 심사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완제의약품 품질 분야, 2028년에는 안전성·유효성·임상 분야까지 확대하는 타임라인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AI가 단순 문서 검색 수준을 넘어 실제 허가심사 과정 전반을 보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향후 AI 기반 심사 체계가 정착될 경우 허가 속도뿐 아니라 심사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역시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속도 경쟁이 안전성 검토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안전성 확보를 위한 인력도 대폭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오 처장은 “증원된 인력의 상당 부분을 안전성 심사에 투입할 예정”이라며 “속도도 중요하지만 안전성 또한 매우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더욱 꼼꼼하게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글로벌 규제기관 역시 최근에는 속도와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 FDA는 RTOR(Real-Time Oncology Review), Project Orbis 등을 통해 항암제 심사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유럽 EMA 역시 혁신 치료제 조기 접근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추세다.

한국 역시 이번 정책을 계기로 단순 추격형 규제를 넘어 글로벌 경쟁형 규제 체계로 이동하려는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브리핑에서는 임상시험 승인 절차 개선 가능성도 언급됐다. 업계에서는 허가심사뿐 아니라 임상시험 승인 역시 여전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특히 혁신기술 기반 치료제의 경우 식약처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식약처는 이번 허가심사 혁신을 통해 한국이 글로벌 최고 수준 속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처장은 미국 FDA 평균 허가기간이 약 300일, 유럽 EMA와 일본은 약 365일 수준이라고 설명하며 한국의 240일 체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단순 속도 경쟁보다 실제 현장에서 체감 가능한 예측 가능성과 심사 품질 유지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심사기간 단축이 일시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제도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심사 인력 전문성 확보와 AI 시스템 안정화, 업계와의 지속적인 소통 체계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준수 식약처 의약품안전국장은 “심사 인력 확충과 240일 허가심사 체계 전환은 희귀질환자를 포함한 국내 환자들이 신약과 혁신신약, 바이오의약품 등을 보다 빠르게 공급받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허가심사 체계가 신속하고 예측 가능해지면 다국적 임상시험이 국내에서 더 활발히 진행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신약은 물론 바이오시밀러와 신개발 의료기기는 속도가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안전성은 꼼꼼히 검토하면서 동시 병렬 심사와 수시 검토를 통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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