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소 이전에 생동시험 없다…식약처 20년 만 규제 대수술
제조방법 변경 수준 따라 비교용출만으로 허가 변경 인정
동일 설비·동일 GMP 환경 유지 시 약제학적 평가로 대체 가능
식약처, 의약품 생산 구조 현실 반영한 기준 개편…공급망 안정·생산 유연성·R&D 효율화 기대감 확산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11-27 06:00   수정 2025.11.27 06:01
식약처가 의약품 제조소 이전 시 생동시험 의무를 경미한 변경에 한해 면제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전면 개편했다. 사진은 식약처 전경 © 약업신문 = 최윤수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약품 제조소 이전과 제조방법 변경 과정에서 과도하게 부과돼 왔던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시험) 의무를 대폭 조정하는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국내 제약업계가 수십 년간 가장 큰 규제 애로사항으로 꼽아온 불합리한 구조가 본격적으로 해소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국내 규정은 제조소 변경이 발생하면 변경 수준을 불문하고 생동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구조였으며, 심지어 동일한 설비·동일한 GMP 체계를 운영하더라도 제조 장소가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생동시험을 반복하는 관행이 이어져 왔다. 이러한 규정은 국제 규제와 비교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을 받아왔으며, 업계는 이번 조치가 공급망 안정 및 글로벌 생산전략 수립에 실질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결정적 조치라는 입장이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약품심사부는 25일 식약처 출입 전문지 기자단과 진행한 ‘제약현장 연계 포커스 인터뷰’에서 제조소 변경과 제조방법 변경에 대한 동등성 평가 기준 개선 방향을 상세히 설명했다. 

인터뷰를 통해 공개된 개선안은 기존 규제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고, 앞으로는 변경의 위험도에 따라 평가기준을 다르게 적용하는 ‘위험기반(Risk-based)’ 심사체계로 전환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생동시험이 규정의 기본값이던 기존 체계, 본질적 문제 제기

현재까지의 국내 규정은 제조소를 이전할 경우 제조방법의 미세한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유로 생동시험 자료 제출을 강제해 왔다. 이는 제조 공정이 자동화되고 설비 모델과 품질관리 방식이 표준화된 최신 생산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제조소가 바뀌면 공정이 바뀐다’는 전통적 인식을 기준으로 삼아온 결과였다. 

같은 회사, 같은 GMP 수준, 동일 제조기기를 사용하더라도 “제조소 변경”이라는 사실만으로 임상시험 수준의 생동자료를 요구하는 방식은, 제조소가 여러 국가에 분산된 글로벌 공급체계를 지향하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제도였다.

이러한 규정은 국내 제약사의 전략적 제조소 확보와 생산시설 확장 계획에 직접적인 제약요인으로 작용했으며, 특히 다품종 소량 생산이 많아진 최근 산업환경에서는 제조소 추가 확보 및 공급 안정 전략이 필수임에도 불구하고 생동시험 부담 때문에 이전을 단념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생동시험 반복에만 수억 원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제조소 이전이 곧 비용 증가와 일정 지연을 의미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품목의 생산일정 지연, 나아가 단절로 이어가는 문제까지 발생하며 규제와 공급 리스크가 연결된 구조적 문제가 표면화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약효동등성과 도원임 과장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 식약처 출입 전문지 기자단

생동시험 ‘삭제’가 아니라 평가 기준의 과학적 정렬

식약처가 이번에 내놓은 기준 개편의 핵심은 제조소 변경과 제조방법 변경을 동일 구조로 취급하던 기존 체계를 해체하고, 변경의 수준과 제품 특성에 따라 심사자료를 차등 적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점이다. 즉, 제조소와 제조방법의 변경이 항상 임상적 효능·안전성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설비·공정·처방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변경의 성격을 ‘경미한 변경’과 ‘중대한 변경’으로 나눈 후, 그 위험에 상응하는 평가자료를 제출하도록 바꾼 것이다.

여기서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제조소 변경이 단독으로 생동시험 요구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식약처는 “경미한 제조방법 변경이 수반되는 제조소 이전”의 경우 생동시험 대신 비교용출시험자료 제출만으로 허가 변경을 인정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기존에 모든 변경 상황에 생동시험이 자동 부과되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화로, 허가 변경 절차에서 ‘비교용출’이라는 약제학적 평가만으로도 품질 일관성을 설명할 수 있음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도원임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약효동등성과 과장은 “업체는 같아도 제조소 변경 시 제조방법 조정이 일부 불가피했음에도 생동자료를 원칙적으로 요구해 왔다”며 이번 개정이 추진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GMP 기준이 유지되고 기기 변경이 거의 없는데도 생동시험으로 이어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현장의 의견이 누적돼왔다”고 강조했다.

제조방법 변경 자료요건도 전면 재편…안정성 자료 제출 기간 절반 이하로 단축

이번 개정은 제조방법 변경 시 요구되던 안정성자료 제출 요건도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했다. 기존에는 제조방법을 변경할 경우 장기보존 및 가속시험자료를 최소 6개월 이상 제출해야 했으나, 실제로는 이 요건 때문에 생산 일정이 크게 지연되고, 일부 품목은 개정 후 제조 승인까지 공백이 발생해 시장 공급이 차질을 빚는 문제가 빈발했다. 

식약처는 WHO 및 유럽약전(Ph. Eur.) 등 국제 기준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안정성자료 제출 요구를 ‘3개월 장기보존 및 가속자료’ 수준으로 축소해, 제약사의 공급 지연 리스크를 완화하기로 했다.

이는 단순히 자료량을 줄인 것이 아니라, 글로벌 수준에서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자료 확보 기간으로 조정한 것이다. 따라서 안전성 수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제조방법 개선을 기민하게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확보된 셈이다. 특히 제제별 품질 유지 기전이 잘 확립된 구조에서는 장기 데이터가 없더라도 비교용출, 동등성 논리 등을 통해 변화의 영향을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론이 이미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자료 제출 기간 단축은 생산 일정의 불필요한 정체를 해소하는 효과를 낳는다.

업계 반응 “한국 규제가 드디어 현실을 따라잡았다”

이번 개정으로 인한 업계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기존 규정에서는 제조소 이전의 필요성이 인정돼도 생동시험 부담 때문에 이전을 보류하거나 취소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특히 해외 생산라인과 국내 공급망을 동시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 시장에서만 중복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구조를 문제 삼았다. 이번 개정은 이러한 불합리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기능하면서, 한국 시장이 글로벌 생산 전략의 제약요인에서 전략요소로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고은 비아트리스 전무는 “위치 변경만 있었음에도 생동시험을 수행해야 했던 기존 규정은 산업 현실과 맞지 않았다”며, 새로운 기준이 공정성 검증 요구 수준을 합리화한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김준평 동아ST 팀장은 “내년 고시 개정이 완료되면 일반제형에 대해 불필요한 생동시험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순 규제완화 아닌 심사체계 재편의 신호탄

식약처는 이번 조치를 규제 완화가 아닌 “규제과학 기반의 정렬”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규제의 목적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장하는 것이지만, 변화하는 제조환경과 국제적 기준을 반영하지 못한 규제는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번 개정은 규제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불필요한 반복을 제거하고, 변경관리(Change Control)를 체계화해 제약사들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개발·생산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제조소 다변화를 통한 공급망 안전 강화는 필수의약품과 공공의약품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식약처는 향후 고시 개정 절차를 통해 이번 개선 내용을 공식화할 계획이다. 업계는 개정 시행 시점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내부 변경관리 프로세스와 생산전략 재정비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규제와 산업환경 간 불균형이 조금씩 해소되는 이번 개정은 국내 제약규제 패러다임이 국제 수준에 근접해가는 과정의 첫 단계로 평가된다.

이번 제조소 변경·제조방법 변경 기준 개선은 단순한 절차 조정이 아니라, 생산 전략의 선택폭을 넓히고 국내 제약기업의 공급망 안정성과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생동시험이 아닌 비교용출 중심의 약제학적 접근을 허용한 이번 개정은, 규제를 정책적 도구가 아닌 과학적 판단의 결과물로 재정의했다는 점에서 향후 규제방향의 전환점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기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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