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누리×뷰티스트림즈] 글로벌 무역 재편 속, 현지화로 방향 튼 K-뷰티
관세 강화·면세 폐지에 수출 구조 변화… 아시아 신흥시장 ‘새 기회’ 부상
김민혜 기자 minyang@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11-05 06:00   수정 2025.11.05 06:01

세계 최대 뷰티 시장인 미국이 무역 규정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면서 글로벌 뷰티 산업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 분석 기관 뷰티스트림즈(BEAUTYSTREAMS)는 최근 공개한 화이트 페이퍼에서 “글로벌 시장이 빠르게 분열되는 가운데 브랜드들은 유통 전략, 영감의 원천, 원료 소싱, 제품 개발 등 모든 영역에서 현지화(localization)를 중심으로 전략을 재구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관세 및 규제 강화 등 글로벌 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뷰티스트림즈는 많은  브랜드가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현지화’를 전략으로 취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뷰티스트림즈

관세 강화, 글로벌 유통지도 재편

미국발 무역 규제 강화 여파는 글로벌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올해 10월 기준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최소 30%, 대만산 20%, 한국산 15%, 영국산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급변하는 통상 정책은 주요 수출국의 전략 재조정을 촉발했으며, 특히 ‘소액 면세 규정(de minimis rule)’ 폐지로 중소 브랜드의 미국 진출은 더욱 어렵게 됐다. 800 달러 미만 상품의 무관세 수입이 금지되면서,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를 통해 미국에 진입하던 다수의 인디 브랜드가 배송을 중단했다.

2024년 기준 미국으로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제품을 가장 많이 수출한 국가는 한국,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중국 순이다. 그러나 새로운 관세 체계 아래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며, 다수 브랜드들이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지역 거점 중심의 시장 다변화로 방향을 틀고 있다. 뷰티스트림즈는 “동남아시아, 중동, 유럽,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인도 등지로의 확장이 브랜드 생존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각국의 문화적 맥락과 소비자 가치관을 정밀하게 반영하는 현지화가 장기 성장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토리와 로컬 원료로 현지성 강화

글로벌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보고서는 올해 조사에서 응답자의 47%가 “자국 기업 제품을 선호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국가별로는 인도(68%), 브라질(63%), 캐나다(61%), 중국(58%), 미국(52%)에서 소비자의 로컬 기업 선호도가 특히 높게 나타났다. 영국에선 조사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지속가능한 삶을 실천하기 위해 로컬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한다”고 답했다. 현지 생산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역 내 순환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 기준을 충족한 제품에 대한 추가 비용 지불 의사가 글로벌 평균 9.7%에 달해, 로컬 생산은 애국심이 아닌 지속가능성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 가치가 바뀌면서 브랜드는 ‘지역적 연결성’을 통한 진정성 및 신뢰 구축이라는 과제를 안게 됐다. 단순한 제품 국산화가 아니라, 지역 고유의 스토리텔링과 원료, 제조 과정 전반에서 출처와 배경을 명확히 드러내는 전략이 브랜드 신뢰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뷰티스트림즈는 ‘지역 스토리텔링의 고도화’를 차세대 브랜딩 전략으로 지목했다. 일본 소비자의 76%는 ‘자신의 문화적 유산’을 정체성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중국 소비자의 72%는 자국 문화를 반영하는 럭셔리 브랜드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특히 중국 소비자의 절반 이상(52%)은 ‘로컬 브랜드가 서양 브랜드보다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한다’고 답했다. 중국 브랜드 화시즈(花西子)의 성공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수를 연상시키는 조각 디테일과 신화적 상징을 활용한 ‘동방 동물 조각 메이크업 팔레트(Eastern Beasts Sculpting Makeup Palette)’는 동서양 소비자 모두에게 강한 문화적 공감을 얻었다. 화시즈는 파리 사마리텐 백화점 입점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매장을 50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로컬 헤리티지의 핵심은 스토리뿐 아니라 원료에서도 드러난다. 영국의 화장품 교육기관 포뮬라 보타니카(Formula Botanica)는 올해 주목해야 할 원료로 시어버터, 바오밥오일, 인삼추출물 등을 꼽으며, 각각 서아프리카·호주·동아시아 전통과 결합된 지역적 의미를 강조했다. 보고서는 “로컬 원료는 브랜드 정체성의 기초이자 지속가능성과 진정성을 상징하는 언어”라고 정의했다.

현지 기반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글로벌 기업에서도 두드러진다. 로레알의 니콜라스 이에로니무스(Nicolas Hieronimus) CEO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응해 미국 내 생산 능력 확장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글로벌 기업들에게 로컬 생산은 단순히 물류 안정성 확보를 넘어, 현지 정체성 및 지속가능성 서사를 내재화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욱 엄격한 품질 관리가 가능한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소비자 측면에서도 로컬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맥킨지의 ‘The State of Fashion: Beauty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Z세대의 63%가 “자국이 세계 최고의 뷰티 생산국”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레니얼 55%, X세대 55%, 베이비부머 47%와 비교해 세대별 자국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뚜렷하게 상승한 것이 확인된다. 보고서는 젊은 세대일수록 전통 약초 성분, 청정 제형, 투명한 브랜드 철학을 가진 로컬 브랜드를 선호하며, 인디 브랜드들이 이러한 흐름을 기회로 삼고 있다. 뷰티스트림즈는 호주 본다이 비치에서 설립된 브랜드 ‘에레 페레즈(Ere Perez)’를 사례로 제시했다. 창립자는 멕시코 태생이지만 아사이베리, 블루사이프러스 등 호주의 식물 원료를 사용해 글로벌 감각으로 재해석한 제품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아시아 신흥시장, 차세대 K-뷰티의 무대

한편 유럽의 뷰티 하우스들은 ‘초고급 장인정신(ultra-luxury craftsmanship)’을 중심으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브랜드파이낸스 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은 유럽 브랜드를 자국 브랜드보다 ‘더 신뢰할 만한 브랜드’로 평가했다.  평판과 신뢰도 부문에서 만점을 받은 루이비통은 ‘라 보떼 루이비통(La Beauté Louis Vuitton)’ 라인을 출범시키며 뷰티 영역으로 브랜드 가치 영역을 확장했다. 디올의 ‘레 레콜트 마쥬르(Les Récoltes Majeures)’ 라인 역시 예술적 감각과 향수의 결합으로 하이엔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유럽 브랜드들은 앞으로 선택받은 소수만이 경험할 수 있는 배타적 구조와 장인정신, 초고급 스토리텔링을 통해 문화적 리더십을 재정립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향후 시장 성장의 중심으로 아시아 신흥시장을 지목했다. 동남아시아 프레스티지 뷰티 시장은 세계 평균 성장률의 두 배 수준인 연평균 11%의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 내 비중을 보면 베트남이 41%로 지역을 선도하고 있다. 이어  인도네시아 33%, 태국 11%, 필리핀과 말레이시아가 각 7%, 싱가포르가 2%를 차지한다.

인도의 럭셔리 뷰티 시장도 주목된다. 2023년 8억 달러 규모였던 시장은 2035년엔 40억 달러로 약 5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SNS 활용도가 높은 부유층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인도 전체 뷰티·퍼스널케어 시장은 210억 달러 규모로, 이 중 럭셔리 뷰티 비중은 4%에 불과하지만 성장 잠재력은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뷰티스트림즈는 K-뷰티 전망에 대해 “글로벌 시장의 재편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첨단 더마코스메틱 기술과 문화적 창의성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혁신(hybrid innovation)’을 통해 두 번째 물결에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감각적 패키징을 앞세웠던 초기 단계에서 벗어나, 과학 기반 포뮬러와 글로벌 협업 중심의 고도화 단계로 발전했다는 것. 국내 브랜드들은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분야 전반에서 새로운 기술 기준을 제시하며, 파리·뉴욕·상파울루 등 세계 주요 시장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보고서는 K-뷰티의 다음 과제로 ‘정교한 현지화(local translation)’를 꼽았다. 다양한 지역에서 장기적 소비자 충성도를 확보하기 위해선 피부 톤, 뷰티 의식, 사회적 가치관 등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제품 개발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K-뷰티가 그동안 축적해 온 과학적 신뢰와 문화적 감수성이 글로벌 시장 전환의 중심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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