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윤석열 정부는 왜 하필 이 기업의 손을 잡았나
이주영 기자 jylee@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3-05-11 06:00   수정 2023.06.14 10:31

2019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노재팬(No Japan) 불매운동’. 당시 일본 총리였던 아베 신조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전보장우호국)’에서 제외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취하자,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표어 아래 하나가 되어  일본 제품을 보이콧 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동참했다.  일본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유니클로’는 노재팬 물결의 직격탄을 맞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컸던 명동 매장을 폐점했다. 당시 불매운동은 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팔지도 않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불매운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약업계까지 번진 탓에 일본 제약사들은 불안에 떨었다. 대전시약사회는 노재팬 운동 20여일 만에 일본의약품 판매중단을 선언했고, 전라북도약사회는 국산의약품 캠페인을 벌였다.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약준모)은 일본 의약품의 대체품을 소개하는 사이트 ‘노노재팬드럭’을 개발해 인기 있는 일본 의약품을 대신할 수 있는 국산 의약품을 소개했다. 감기약 ‘화이투벤’, 구내염치료제 ‘알보칠’, 비타민제 ‘액티넘’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모두 일본 제약 1위 기업이자 글로벌 다국적 제약사인 다케다제약의 의약품이다.

다케다제약은 2016년 국내에서 판매 중이던 비타민제 ‘액티넘 EX PLUS’와 동일한 제품인 ‘Alinamin EX PLUS’를 태국에서 판매하면서 전범기인 ‘욱일기’로 마케팅을 벌여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다케다제약은  태국 출시 기념 행사장을 전범기로 도배했다. 사회자가 손에 쥐고 있는 행사 진행 카드를 비롯해 제품 홍보 사진 배경은 온통 전범기투성이였다.  액티넘을 PPL로 등장시킨 한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그렇게 식을 줄 모르던 No재팬 불매운동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서서히 잦아들었다.

4년이 지난 요즘 그 다케다제약이 다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9일  정부는 일본의 글로벌 다국적 제약사인 다케다제약과 국내 바이오기업간 협업을 지원하기로 한 사실을 외교 성과로 내놓고 있다.   일각에선 보수적인 일본 제약기업이 K바이오와 손을 잡았다니 신약 후보물질 개발 경쟁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으며 맞장구치기도 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달 중 일본을 방문해 다케다제약과 K바이오 간 오픈이노베이션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케다제약이 가나가와현에 조성한 신약개발 클러스터 쇼난바이오헬스이노베이션파크를 방문해 현장의 산‧학‧연 클러스터를 둘러보고 K바이오와의 신약개발 협력을 논의하는 일정이다. 바이오벤처와 스타트업이 활성화됐으나 빅파마가 전무한 국내 시장에서 다케다제약이라는 거대 공룡기업과의 협력은 바이오 분야의 진일보 도화선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물론 차세대먹거리 산업으로 꼽히는 바이오분야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글로벌 빅파마와의 협력은 굉장히 중요한 기회이자 성과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사과와 배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우리 입장에서  욱일기 마케팅 논란을 일으킨 기업과의 협력은 마냥 웃고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것도 불과 4년 전 불매운동 대상이었던 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달 25일 공개한 인터뷰 녹취 파일로 윤석열 대통령은 크게 홍역을 치렀다. 이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와 관련 “100년 전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제망신’,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일본 총리의 말인 줄 착각하고도 남을 매우 무책임하고 몰역사적 인식’이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이런 가운데 김건희 여사는 지난 7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 방한 당시 기시다 유코 여사와 함께 서울 진관사를 방문했다.  그 곳에서 양국의 영부인은 수륙재 등 전통의식을 관람하고 명상과 다도로 친교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진관사는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이 일제 강점기에 ‘일심회’라는 비밀결사조직을 결성해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곳이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일장기 위에 태극 문양을 덧칠한 태극기를 보관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104년이 지난 후 항일독립정신이 서린 이 곳은 이제 일본 총리 부인이 즐겁게 차 마시며 명상한  곳으로 기억되게 됐다. 김 여사가 진관사가 어떤 곳인지  몰랐다면 역사적 소양이 부족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역사적 인식이 문제다.  부창부수(夫唱婦隨)다.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은 윤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실을 방문해 “언론이 정확하게 잘 좀 짚어달라”고 당부했다. 하여 윤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국가와 역사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지금, ‘차세대 산업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욱일기’ 마케팅 기업과 협력해 거두는 발전이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성과로 빛날 수 있겠느냐고. “과거를 잊은 국가는 미래를 갖지 못한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취임 1주년을 맞이한 대통령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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