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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4일, 저는 4년 간의 임기를 마치고 서울을 떠났습니다.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하자 마자 이 글을 씁니다.
짐도 채 풀지 못하고 펜을 든 까닭이 있습니다. 2022년 7월 부임한 이래 대한민국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나, 미처 전하지 못하고 온 이야기가 하나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제약·바이오 업계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전장에서 비롯된 인연
두 나라의 인연은 70여 년 전 전장에서 비롯됐습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에 지상군을 파병한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입니다. 강뉴(Kagnew) 부대 6,037명이 한국 땅을 밟았고, 그 가운데 122명은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536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들이 그 땅에 닿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1951년 4월 13일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한 부대는 지부티까지 육로로 이동한 뒤 4월 16일 미군 수송선에 승선하였고,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건너 5월 6일에야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고국을 떠난 날로부터 스무사흘, 1만 킬로미터가 넘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들 대다수는 자신이 향하는 나라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청년들이었습니다.
재임 기간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 이 기억을 얼마나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지 여러 차례 확인했습니다. 참전 기념관을 방문할 때마다, 그리고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을 만날 때마다 그러했습니다. 진정한 우정은 이해관계뿐 아니라 함께 겪은 경험과 오래 남는 감사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다만 이 인연이 기념식장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억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이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얻은 착상
지난 5월, 저는 서울의 한 제약회사 본사에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관계자들과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대한민국 제약기업 연구개발 현황과 생산 체계에 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가지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70여 년 전 피로써 맺은 관계를, 이번에는 의약품 위에서 다시 쓸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한 세대 만에 세계적인 경제·기술 강국으로 올라선 나라입니다. 저는 그 성취 자체보다 성취에 이른 방식에 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의 경험은 성장이 사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도로와 공장과 디지털 기반시설 또한 중요하나, 그것들은 결국 인적 자본과 유능한 제도, 그리고 공동의 국가적 비전이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지금 에티오피아에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에티오피아가 직면한 과제 먼저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에티오피아는 인구 1억2,000만 명이 넘는 아프리카 제2의 인구대국이나, 오랜 기간 의약품과 의료용품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해 왔습니다. 2023년에도 수요의 85%를 수입으로 충당하며 연간 10억 달러 이상을 지출헸습니다.
이는 에티오피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이 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국경이 폐쇄되었을 당시, 우리는 그 취약성이 초래하는 결과를 분명히 목격했습니다. 의약품이 제때 도달하지 못하면 국민이 목숨을 잃습니다. 숫자로 환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제약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자국 생산 역량을 확충하는 데 지난 수년을 집중해 왔습니다.
지난 몇 년의 변화
첫째는 규제입니다. 에티오피아식품의약청(EFDA)은 2025년 9월 세계보건기구(WHO)의 글로벌벤치마킹툴(GBT) 평가에서 성숙도 3단계(Maturity Level 3)를 획득했습니다. 허가와 실사, 품질검사, 시판 후 관리, 거버넌스에 이르는 규제 전 주기를 250개가 넘는 지표로 평가하는 절차입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아홉 번째로, 정부간개발기구(IGAD) 역내에서는 최초로 이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규제는 결국 신뢰의 문제입니다. 이 인증은 에티오피아에서 허가받은 의약품이 국제 기준에 따라 심사됐음을 국제사회가 인정했다는 의미며, 나아가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된 제품이 에티오피아 국내에만 머무르지 아니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생산입니다. 세계은행은 올해 5월 자료에서 에티오피아 자국 생산 비중이 전체 의약품 공급의 40%를 상회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던 나라가 이제 절반에 가까운 물량을 직접 생산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다음 목표는 필수의약품 수요의 50% 자급입니다.
킬린토는 준비돼 있습니다
아디스아바바 남측에 킬린토 특별경제구역이 있습니다. 약 300헥타르 규모로, 설계 단계에서부터 의약품 및 의료기기 제조만을 목적으로 조성된 단지입니다. 세계은행 그룹 재원으로 도로와 용수, 전력을 갖췄으며, 표준 공장동을 제공해 초기 투자 부담을 경감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이곳에 마련한 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EFDA를 통한 의약품 허가절차 간소화, 법인세 감면, 자본재 및 건축자재 무관세 수입, 그리고 투자 보증입니다. 산업단지개발공사(IPDC)는 올해 4월, 킬린토에 입주하는 의약품·의료기기 제조기업에 대해 토지 임대료를 4년간 면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만 요건이 있습니다. 수출용 또는 수입대체용 생산일 것, 공장동을 자체 건설할 것, 해당 분야에서 1년 이상의 경험을 보유할 것, 고용을 창출할 것, 그리고 기술과 지식을 이전할 것입니다.
마지막 요건을 특별히 언급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완제품을 사오는 관계를 바라지 않습니다. 제조 역량을 함께 세워 나갈 동반자를 찾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GMP 운영 경험, 제네릭 및 개량신약 개발 역량, 원료의약품 공정기술, 그리고 규제기관 사이의 협력, 이것이 지금 에티오피아에 절실한 역량입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세계로
의약품 사업에 있어 규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물류라는 사실 또한 배웠습니다. 이 점에서 에티오피아가 내어 드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항공은 2022년 아프리카 항공사 최초로 IATA CEIV Pharma 인증을 취득했으며, 2025년과 2026년 연속해 재인증을 받았습니다. 아디스아바바 볼레국제공항 화물시설은 연간 100만 톤의 처리 능력을 갖추고 완전 자동화돼 있으며, 일평균 2,000톤 이상을 취급합니다.
항공기 계류장 구간의 온도를 유지하는 스마트 쿨 돌리는 내부 온도를 영하 29도에서 영상 27도까지 조절합니다. 전용 화물기 17대로 70개가 넘는 화물 노선과 140개가 넘는 여객 노선을 운항하며, 화물 네트워크 규모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큽니다.
지난 2018년 개설된 인천–아디스아바바 직항 노선도 있습니다. 1951년 우리 청년들이 스므사흘 걸쳐 건넜던 그 바다를, 오늘날에는 아디스아바바에서 인천까지 열 시간 남짓이면 건너옵니다.
저 또한 그 길을 그렇게 돌아왔습니다. 열 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그러나 두 나라의 마음을 잇기에 결코 긴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사를 위해 방문하시거나 기술이전 인력을 파견하시는 경우에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리적 조건 또한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해 아프리카와 중동을 잇는 관문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홍해와 수에즈운하가 인접하여 유럽 및 걸프 지역으로 신속히 접근할 수 있으며, 지부티항을 통해 해상 물류가 연결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가 있습니다. 아프리카연합 55개 회원국 가운데 54개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지대로, 인구 13억 명에 역내 총생산 3조4,000억 달러 규모입니다.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킬린토에서 생산된 제품은 대륙 전역으로 무관세 수출이 가능합니다.
중동의 긴장으로 공급망이 동요하는 현 시점에서, 에티오피아는 공급원의 다각화와 개방적이고 예측 가능한 무역로, 그리고 아프리카를 세계 시장에 보다 긴밀히 연결하는 투자를 지지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대립이 아니라 포용과 발전입니다.
제약 요인에 관하여
유리한 사실만을 전하는 것은 외교관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에티오피아는 2024년 7월 외환제도를 개편하여 시장환율제로 전환했습니다. 송금 및 과실송금의 예측 가능성이 상당히 개선됐습니다. 그러나 외화 유동성과 현지 금융 조달은 여전히 투자자들께서 지적하시는 애로 사항입니다. 저는 이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원료의약품을 비롯한 원부자재의 상당 부분을 우리 또한 아직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숙련 인력 확보와 GMP 수준 유지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업 계획을 수립하실 때 이러한 사정을 정직하게 반영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만 한 가지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인도의 킬리치드럭스와 글로케어파마가 이미 킬린토에 공장을 설립했으며, 인도제약수출협의회는 40여 개 기업 사절단을 파견해 단지를 직접 시찰했습니다. 중국 기업들 진출 또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명단에 대한민국 기업 이름이 아직 오르지 않았다는 점은, 재임 중 저의 오랜 아쉬움이었습니다.
성장은 사람에서 시작됩니다
교육에 대한 대한민국의 한결같은 헌신은, 제가 재임 기간 목격한 가장 인상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떠한 문명이든 그 토대는 인적 자원의 수준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식을 국가 발전 중심에 둠으로써 대학과 연구, 혁신의 생태계를 경제 경쟁력 동력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이는 에티오피아의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성취 또한 물리적 기반시설만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 기술과 혁신, 제도적 역량과 좋은 거버넌스를 얼마나 갖추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디지털 전환, 교육, 재생에너지, 제조, 스마트농업, 혁신 분야 역량은 에티오피아 경제 개혁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앞으로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제약은 국민의 생명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분야입니다.
맺으며
외교는 결국 사람에 관한 일입니다. 정부는 협정을 맺으나, 그것을 작동하게 하는 주체는 사람입니다. 대학은 지식의 연결망을 형성하고, 기업은 일자리와 투자를 창출하며, 연구자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냅니다.
국가 간의 가장 견고한 다리는 공식 협정 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대학, 기업, 학자, 예술가, 그리고 젊은이들 사이의 지속되는 관계 위에 놓입니다. 이 연결이 에티오피아와 대한민국 관계의 다음 장을 계속 써 나갈 것입니다.
우리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으나, 역사적으로는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가치와 서로에 대한 존중, 그리고 공동의 목표를 지니고 있습니다.
70여 년 전 우리의 청년들이 대한민국으로 가서 그 자유를 함께 지켰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 기업들이 에티오피아에서 아프리카의 건강을 함께 지켜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것이 제가 서울을 떠나며 남기는 제안입니다.
저의 이 제안은 에티오피아와 대한민국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우리가 함께 세우는 공장은 에티오피아 국민에게는 양질의 의약품이 가져다줄 건강과 희망을, 대한민국의 기업에는 13억 인구의 대륙으로 향하는 교두보를 안겨 줄 것입니다. 이는 어느 한쪽이 베푸는 일이 아닙니다. 두 나라가 함께 거두는 결실입니다.
4년간 베풀어 주신 후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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