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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공간이 신약개발의 새로운 실험실로 떠오르고 있다.
무중력과 우주방사선이라는 특수 환경이 단백질 구조 분석과 줄기세포 연구, 장기모사칩(MPS) 개발 등을 가속화하면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가 우주를 차세대 연구개발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우주 환경을 활용한 바이오의약 혁신 기술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NASA와 NIH, 글로벌 제약사 머크(Merck) 등을 중심으로 우주 기반 바이오 연구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국제우주정거장(ISS)을 활용한 우주의약 연구와 우주 3D 바이오프린팅 실증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우주가 지상에서 수년이 걸리는 연구를 단기간에 수행할 수 있는 독특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지구 저궤도(LEO)의 미세중력 환경에서는 세포가 보다 입체적으로 성장하고 조직 형성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며, 중력에 의해 발생하는 다양한 물리적 제약이 크게 줄어든다. 특히 세포 간 상호작용과 조직 발달 과정이 지상과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신약 후보물질 탐색과 질환 연구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는 평가다.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단백질 결정화 연구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표적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지상에서는 중력의 영향으로 불순물과 대류 현상이 발생해 고품질 결정을 얻기 어렵다. 반면 우주에서는 이러한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 보다 크고 정밀한 단백질 결정 형성이 가능하다.
실제 글로벌 제약사 머크(Merck)는 블록버스터 면역항암제 '키트루다(Keytruda)'의 단백질 결정화 실험을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진행했다. 이를 통해 피하주사(SC) 제형 개발 가능성을 검토하고 제조 효율성과 환자 편의성 향상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단백질 결정화 기술이 향후 항체의약품과 희귀질환 치료제, 정밀의료 기반 신약 개발 과정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우주 환경에서 확보한 고품질 단백질 구조 정보는 신약 후보물질 설계 정확도를 높이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우주 인프라 기업 레드와이어(Redwire)는 우주 단백질 결정화 플랫폼을 구축해 상업화를 추진 중이다. 회사는 우주에서 생성한 결정체를 활용한 의약품 개발과 제조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글로벌 제약사들과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도 우주 환경의 장점이 확인되고 있다. ISS에서 수행된 다양한 실험에서는 미세중력 환경이 줄기세포 증식을 촉진하고 조직 재생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혈관 생성과 조직 재생을 유도하는 메커니즘도 관찰되면서 재생의학과 세포치료제 개발에 활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주 환경은 노화 연구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우주비행사들은 짧은 기간 동안 근육 감소와 골밀도 저하, 면역체계 변화 등을 경험하는데, 이는 지상에서 수십 년에 걸쳐 나타나는 노화 현상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이를 활용해 노화 관련 질환의 진행 과정을 단기간에 분석하고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장기모사칩(MPS·Microphysiological System) 역시 우주 바이오 분야의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NASA와 NIH는 'Tissue Chips in Space' 프로젝트를 통해 신장·근육·혈뇌장벽 등 인체 장기를 모사한 칩을 우주에서 시험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단일 장기 수준을 넘어 여러 장기를 연결한 멀티오건(Multi-organ) 플랫폼 연구로 확대되면서 신약 평가 정확도를 높이는 데 활용될 전망이다.
우주방사선 역시 단순한 위험 요소가 아닌 연구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주방사선이 유발하는 DNA 손상과 세포 반응을 분석해 새로운 항암 치료 전략을 개발하거나 방사선 보호제 및 우주 환경 특화 치료제 개발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쟁도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미국 NASA와 NIH를 중심으로 머크, 레드와이어, 스페이스X 등이 참여하는 '스페이스 바이오' 생태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유럽우주국(ESA)과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도 관련 연구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도 우주 바이오 연구가 실증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이스린텍은 올해 국내 최초 우주의약 연구모듈 'BEE-PC1'을 ISS에 탑재해 단백질 결정화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오커넥트 역시 한국 최초로 우주 환경에서 3D 바이오프린팅 기술 실증에 나섰다.
정부도 한국형 ARPA-H 사업을 통해 우주 바이오와 장기모사칩, 바이오프린팅, 우주방사선 활용 치료기술 등을 미래 전략 분야로 육성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내 우주 바이오 분야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정부 지원과 민간 참여가 확대되면서 글로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우주 환경은 지상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생물학적·화학적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독보적 연구 플랫폼"이라며 "우주 기반 바이오 연구는 신약개발과 재생의학은 물론 우주의학 분야까지 확장되며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형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스페이스 바이오 경쟁이 민간 기업과 정부 주도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만큼 국내 역시 우주 실증 연구와 규제·인프라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업계에서는 우주 바이오가 아직 초기 시장이지만, 향후 항체의약품과 세포·유전자치료제, 재생의학 분야를 중심으로 새로운 연구개발 플랫폼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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