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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라는 인식에 갇혀 있던 근감소증이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 핵심 미충족 의료 수요로 부상했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질병코드를 부여하고, 2021년 국내 질병분류(KCD)에도 공식 등재되었지만, 현재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근감소증 치료 적응증을 획득해 상용화된 신약은 전 세계적으로 전무한 상태다.
특히 최근 글로벌 제약 시장을 휩쓸고 있는 GLP-1 계열 비만치료제(위고비, 마운자로 등)가 체중 감량 과정에서 심각한 근손실을 유발한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드러났다.
이에 따라 근감소증 치료제는 단순 노인성 질환을 넘어 비만약의 필수 병용 파트너이자 그 자체로 거대한 블록버스터급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들 역시 과거 글로벌 빅파마들의 임상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독창적인 기전과 약물 재창출 전략을 무기로 이른바 '빈집'을 선점하기 위한 임상 속도전에 돌입했다.
현재 임상 현장에서 근감소증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 공식 약물은 없다. 단백질 합성을 돕는 필수 아미노산 중심의 영양 처방과 저항성 운동 요법이 표준 가이드라인의 전부다.
과거 노바티스, 사노피, 리제네론 등 굴지의 글로벌 빅파마들이 이 시장을 타깃으로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으나 대부분 임상 후기 단계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들은 주로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단백질인 ‘마이오스타틴’을 차단하는 기전에 집중했다.
그 결과, 환자의 근육량을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실질적인 근기능 향상을 통계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 근감소증은 호르몬, 신경계, 만성 염증 등 복합적인 노화 기전이 얽힌 질환이기에 단일 단백질 타깃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주춤한 사이, 국내 R&D 파이프라인은 근육의 질적 개선과 임상 속도를 동시에 잡는 우회 전략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제어전문연구단 출신들이 주축이 된 바이오 벤처 아벤티는 기존 위장 통증 치료제로 쓰이던 약물을 근감소증 치료제로 탈바꿈시키
는 약물 재창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미 인체 내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인 만큼, 전임상과 임상 1상을 건너뛰고 곧바로 임상 2a상에 직행하는 파격적인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근육의 크기를 키우는 것을 넘어 근육 다발과 근섬유를 결합시켜 실질적인 근육량과 기능을 동시에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굵직한 전통 제약사들의 혁신 신약 도전도 눈에 띈다. 한미약품은 비만약 투여로 인한 근손실 부작용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UCN2(유로코르틴2) 메커니즘을 적용한 신규 후보물질을 발굴,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1상에 돌입했다. 이는 체중 감량에만 머물러 있던 기존 비만 치료의 패러다임을 ‘근육 강화’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으로, 한미약품 고유의 R&D 역량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블록버스터 창출을 노리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기업 간 공동 개발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HK이노엔은 카인사이언스와 손잡고 펩타이드 약물 'KINE-101'을 기반으로 한 근본적인 염증 제어에 나섰다. 조절 T세포를 활성화해 체내 면역 항상성을 회복시키는 이 독창적인 접근법은, 향후 HK이노엔이 자체 개발 중인 비만치료제와의 병용 시너지를 극대화할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기대를 모으며 임상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근육 질환 전문 벤처 애니머스큐어는 이연제약과 맞손을 잡고 노화성 근감소증은 물론 암 환자의 급격한 체중 및 근육 감소를 유발하는 ‘암 악액질’ 치료제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이연제약이 보유한 고순도 pDNA 대량 생산 인프라에 애니머스큐어의 정교한 근육 오가노이드 평가 시스템이 결합하면서 신약 개발의 타깃 적중률과 상용화 속도가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 외에도 플루토, 케이에스비튜젠, 바이오바이츠 등 다수의 바이오 벤처가 신규 타깃 및 특화 바이오마커 발굴을 통해 연구 저변을 넓히는 추세다.
국내 파이프라인들이 속속 임상 본궤도에 오르고 있지만, 최종 상용화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뚜렷하다. 가장 큰 난제는 임상 평가지표의 달성이다. 골격근량의 증가 수치뿐만 아니라, 보행 속도, 악력 등 환자의 실제 신체 기능 향상을 증명할 수 있는 정교한 임상 디자인이 필수적이다. 또한 약물 반응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근감소증 특이적 바이오마커의 확립도 시급하다.
특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바이오·헬스케어 메가펀드 조성 및 산업 육성 기조와 맞물려, 보건복지부 역시 초고령사회 진입에 대비한 노인성 질환 극복에 방점을 찍고 있다. 추후 혁신 신약이 개발될 경우, 건강보험 급여 적용 및 약가 우대 등 실질적인 정책 지원이 뒷받침되어야만 산업적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근감소증 치료제 시장은 현재 12조 원 규모인 글로벌 골다공증 시장을 가볍게 뛰어넘어, 연간 수십조 원 단위로 팽창할 잠재력을 지녔다.
2026년 현재, 단순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를 넘어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한 K-바이오의 임상 성과가 향후 글로벌 무대에서 어떤 경제적 가치를 입증해 낼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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