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성 은(Silver) 성분이 유럽에서 화장품 원료로서의 안전성을 최종 입증받았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산하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가 최근 발표한 최종 과학적 조언 보고서에 따르면 마이크론 크기의 입자성 은은 씻어내는 화장품에 최대 0.2%, 씻어내지 않는 화장품에 최대 0.3% 농도로 사용할 경우 인체에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자성 은은 메이크업 제품에 반짝이는 효과를 주거나 컨디셔닝제로 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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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산업에서 은은 주로 아이섀도, 하이라이터, 매니큐어 및 바디 파우더 등에서 금속성 색조를 내는 착색제(CI 77820)로 널리 쓰여왔다. 2023년 2월, 유럽 화학물질청(ECHA) 산하 위해성평가위원회(RAC)가 은을 생식 독성 카테고리 2로 분류할 것을 권고하면서부터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져왔다.
유럽 화장품 규정 제15조 1항에 따라 생식 독성 물질은 화장품 내 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 SCCS의 안전성 평가를 통과해 안전하다고 판명될 경우 예외적으로 사용을 이어갈 수 있다. SCCS는 2024년 6월 "당시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안전역 확보가 불가능하다"며 "단독 혹은 혼합 사용 시 씻어내는 제품 0.2%, 씻어내지 않는 제품 0.3% 농도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사용 불가 판정을 내린 바 있다.
2025년 8월, 한 신청자가 새로운 피부 침투 연구 데이터를 제출하면서 국면이 전환됐다. 인간 자원자와 돼지 피부를 대상으로 진행한 생체 외 및 생체 내 실험 결과, 화장품 제형에 섞인 마이크론 크기의 은 입자는 피부의 가장 바깥 방어선인 각질층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마이크로 실버 입자는 미세한 은 가루들이 스펀지처럼 구멍이 많은 형태로 단단하게 엉겨 붙은 구조다. 표면적이 넓은 만큼 은 이온을 지속해서 방출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보고서는 제조업체의 자료를 인용해 은 입자를 물리적인 힘으로 더 작게 부수려 해도 표면적만 감소할 뿐 더 작게 쪼개지지 않으며 개별 입자의 외부 치수가 100㎚(나노미터)를 명확히 초과해 규제 대상인 나노 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피부 흡수를 확인하기 위해 건강한 성인 10명을 대상으로 28일간 생체 내 실험을 진행했다. 매일 하복부에 크림을 바르게 한 뒤 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는 방식으로 각질층을 60겹까지 분리해 분석했다. 측정 결과 은 성분은 최상단 30겹 이내에서만 주로 발견됐다. 반복 도포를 가정한 28일이 지난 후에도 더 깊은 피부층에 은이 점진적으로 축적되는 현상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크림을 바르고 4일 동안 전혀 닦이지 않게 밀봉해 둔 조건에서도 은 성분은 피부를 뚫지 못했다. 피부 맨 겉면(각질층)에서 처음에 바른 양의 88.2~104.5%가 고스란히 회수됐다. 첨단 정밀 분석 장비(ToF-SIMS)로 사람과 돼지의 피부 단면을 깊숙이 살펴봤을 때도, 각질층 아래 살아있는 피부 조직(표피·진피)에선 은 성분이 단 한 건도 검출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마이크로 실버가 입자 상태 그대로 피부를 뚫고 체내로 흡수될 위험은 사실상 없다는 뜻이다.
입자가 피부 장벽을 뚫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새로운 안전성 평가는 은 입자 자체가 아닌 입자에서 떨어져 나오는 은 이온에 초점이 맞춰졌다. 보고서는 피부나 입을 통해 은 이온이 몸속으로 들어가는 양을 엄격한 기준으로 계산했다. 그 결과 피부, 구강, 호흡기 등 모든 노출 경로를 합산해 따져봐도 안전 기준을 충분히 만족시켜 인체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적으로 화장품을 쓸 때 건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얼굴이나 몸에 뿌리는 펌프 형태의 스프레이 제품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호흡기 흡입 문제도 검증을 마쳤다. 은 입자의 크기가 5μm(마이크로미터) 미만이라 호흡기를 통해 100% 들이마실 수 있다고 보수적으로 가정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루 8시간 내내 노출되는 환경을 가정한 엄격한 허용 기준(0.01㎎/㎥)이나 90일 연구에서 입증된 안전 기준에 크게 못 미쳐, 화장품 사용자의 건강을 위협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독성 평가에서도 돌연변이나 발암 가능성이 낮고, 알레르기 같은 과민 반응을 유발할 위험도 사실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씻어내는 제품에 최대 0.2%, 피부에 남기는 제품에 최대 0.3%까지 은 입자를 넣을 수 있다. 단, 이때 은 입자의 크기는 100㎚(나노미터)보다 크고 1㎜(밀리미터)보다 작아야 한다. 치약 같은 구강 위생 제품은 0.2%, 매니큐어 등 네일 제품은 0.3%까지 허용된다. 특히 네일 제품을 통한 은 노출량은 0.00015㎍(마이크로그램) 수준에 불과해, 전체적인 안전성 기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 미미한 것으로 확인됐다.
어린이용 화장품 역시 성인과 동일한 농도 기준을 적용받아 안전하게 제조·판매할 수 있다. 단, 어린이용 구강청결제의 경우 한도를 0.05%로 대폭 낮춰야 한다. 펌프 형태의 스프레이와 달리 가스 추진제 기반 제품은 신청자의 평가 요구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안전성 검증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SCCS는 "가스식 스프레이 화장품을 개발할 때는 마이크론 크기의 입자성 은 배합을 배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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