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한국, ‘콩팥 시간’ 늦추다
2020년 이후 국내 만성콩팥병 처방 지형 바꾼 글로벌 TOP5
SGLT-2·피네레논·빈혈·인 조절…CKD 치료 움직이는 핵심 축
질환 억제·심혈관 보호·빈혈·고인산 관리까지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2-04 06:00   수정 2026.02.04 06:01

한국 사회가 본격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만성콩팥병(Chronic Kidney Disease, CKD)은 더 이상 특정 환자군에 국한된 질환이 아니다. 고혈압과 당뇨병 유병률이 함께 증가하는 구조 속에서 CKD는 고령 인구 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으며, 단순히 신장 기능 저하에 머무르지 않고 심혈관 질환, 빈혈, 전해질 이상, 골대사 장애 등 다층적인 문제를 동반한다.

특히 CKD는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조용한 질환’으로 불린다. 하지만 일단 진행 단계에 접어들면 환자의 일상 기능과 삶의 질이 급격히 저하되고, 투석이나 신장이식이라는 고강도 의료 개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CKD는 단순한 장기 질환이 아니라, 고령사회에서 의료·재정 부담을 동시에 키우는 대표적인 만성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전의 한계…“관리 중심”에서 머물던 시대 그리고 SGLT-2의 등장
2020년 이전까지 국내 CKD 치료는 기본적으로 혈압 조절, 혈당 관리, 지질 개선, 단백뇨 감소 등 ‘위험 인자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ACE 억제제나 ARB 계열을 중심으로 한 보존적 치료가 표준이었고, 신장 기능 저하 속도를 의미 있게 늦출 수 있는 약물 옵션은 제한적이었다.

진행성 CKD 환자에서는 빈혈과 고인산혈증 관리가 핵심이었지만, 이 역시 합병증을 “따라잡는” 형태의 치료에 가까웠다. 즉, 질환 자체의 경과를 바꾸기보다는 이미 나타난 문제를 교정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의료현장에서는 “CKD는 결국 진행한다”는 인식이 상당 부분 공유돼 있었고, 치료 목표 역시 투석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CKD는 고령 환자에게 피할 수 없는 경로처럼 받아들여졌고, 장기 예후 개선에 대한 기대치는 높지 않았다.

이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꾼 계기는 202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SGLT-2 억제제의 확장이다. 당뇨 치료제로 출발한 이 계열은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신장 보호 효과와 심혈관 위험 감소 효과를 동시에 입증하며, CKD 치료의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국내 CKD 치료는 명확히 두 갈래로 나뉘기 시작했다. 하나는 SGLT-2 억제제와 이후 등장한 피네레논을 중심으로 한 질환 진행 억제 및 예후 개선 축, 다른 하나는 기존부터 이어져 온 빈혈·고인산혈증 등 합병증 관리 축이다.

중요한 점은 이 두 축이 서로 경쟁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동시에 강화되며 CKD 치료를 단선적 접근에서 다층적 관리 모델로 끌어올렸다. 이는 CKD가 단순한 신장 질환이 아니라 전신 건강과 노년기 기능 유지에 직결된 질환이라는 인식이 의료현장에 정착했음을 의미한다.

SGLT-2 억제제의 부상…CKD 치료의 새로운 기본값
국내 CKD 치료 패러다임 변화의 중심에는 ‘SGLT-2 억제제’가 있다. 이 계열은 사구체 내 압력을 낮추고, 신장 과여과를 완화하며, 염증과 섬유화를 줄이는 복합적 기전을 통해 신장 기능 저하 속도를 늦춘다. 동시에 심부전 입원과 심혈관 사건 위험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확인되면서, 고령 환자에서 특히 높은 임상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흐름의 대표적 사례가 ‘자디앙(엠파글리플로진)’이다. 개발사인 베링거 인겔하임은 심혈관·신장 영역을 전략적으로 강화하며, 자디앙을 단순한 당뇨 치료제가 아닌 ‘심장과 콩팥을 함께 보호하는 약물’로 포지셔닝해 왔다. 국내에서도 원외처방 규모가 빠르게 확대됐고, CKD 적응증 급여 확대를 계기로 접근성이 더욱 높아졌다.

자디앙의 확산은 의료현장에서 치료 시작 시점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과거에는 CKD가 상당 부분 진행된 이후에야 적극적 약물 개입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비교적 초기 단계에서도 SGLT-2 억제제가 고려된다. 이는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인식이 실제 진료 행태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파글리플로진, 브랜드를 넘어 성분군으로 정착
자디앙과 함께 SGLT-2 축을 형성한 또 다른 중심은 ‘다파글리플로진’ 계열이다. 오리지널 제품인 포시가는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했으며, 한때 국내 원외처방액 500억 원대를 기록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이후 제품 철수와 함께 동일 성분 기반의 후속 제품군으로 시장이 재편됐지만, 이는 오히려 성분 자체가 치료 표준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현재 의료현장에서는 특정 브랜드보다 다파글리플로진이라는 성분군 자체가 CKD 치료 옵션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SGLT-2 억제제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고령 환자 진료에서 중요한 것은 장기 복용 가능성과 안전성이다. 이 점에서 다파글리플로진 계열은 비교적 안정적인 부작용 프로파일과 축적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 진료에서 활용도가 높은 축으로 자리 잡았다.

케렌디아, 두 번째 보호 전략의 등장
SGLT-2 억제제가 CKD 치료의 1차 축이라면, ‘케렌디아(피네레논)’는 여기에 더해진 2차 보호 전략이다. 바이엘이 개발한 피네레논은 비스테로이드성 미네랄코르티코이드 수용체 길항제로, 당뇨병을 동반한 CKD 환자에서 신장 기능 악화와 심혈관 사건을 동시에 감소시키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피네레논의 등장은 CKD 치료가 단일 약물 중심에서 병용 전략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SGLT-2 억제제에 피네레논을 추가하는 방식이 점차 논의되고 있으며, 이는 환자 특성에 따라 다층적 보호 전략을 설계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웰에이징 관점에서 피네레논의 의미는 단순한 수치 개선을 넘어, 심혈관 합병증과 신장 악화를 동시에 관리함으로써 고령 환자의 전반적 예후를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신성빈혈 치료, 삶의 질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축
CKD가 진행될수록 신장에서 생성되는 에리스로포이에틴이 감소하면서 빈혈이 발생한다. 신성빈혈은 단순한 혈액 수치 이상이 아니라, 피로감, 근력 저하, 인지 기능 저하, 심혈관 부담 증가로 이어져 고령 환자의 일상 기능을 직접적으로 떨어뜨린다.

이 영역에서 핵심 역할을 해온 약물이 ‘미쎄라’다. 로슈가 개발한 장기 지속형 조혈자극제(CERA)로, 투석 전·후 환자 모두에서 반복 처방이 이뤄진다. 최근까지도 안정적인 처방 규모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신성빈혈 치료가 CKD 관리에서 얼마나 구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성빈혈 치료는 단순히 생존 기간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고령 환자가 스스로 움직이고, 사회적 활동을 유지하며, 독립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기반 치료다. SGLT-2 억제제가 질환의 속도를 늦춘다면, 빈혈 치료는 그 과정에서 환자의 ‘현재 삶’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렌벨라와 고인산혈증 관리, 투석 환자의 장기 예후 좌우하는 요소
진행성 CKD와 투석 환자에서 고인산혈증은 혈관 석회화와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이는 주요 요인이다. 이 영역의 대표 치료제가 사노피의 ‘렌벨라(세벨라머)’다.

렌벨라는 인 결합제로 장기간 사용돼 왔으며, 매년 꾸준한 처방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렌벨라가 일시적 신약이 아니라, 말기 신질환 관리의 ‘바닥 처방’을 형성하는 구조적 약물임을 의미한다. 고령 투석 환자가 증가하는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고인산혈증 관리는 앞으로도 CKD 치료의 핵심 축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질환 억제+합병증 관리’의 이중 구조가 만든 새로운 치료 모델
2020년 이후 국내 CKD 치료의 가장 큰 변화는 치료 목표가 명확히 이원화됐다는 점이다. 하나는 SGLT-2 억제제와 피네레논으로 대표되는 질환 진행 억제 및 심혈관 보호, 다른 하나는 미쎄라와 렌벨라처럼 빈혈·전해질 이상을 관리하며 환자의 기능과 삶의 질을 지키는 축이다.

이 두 축은 서로를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시에 강화되며 CKD 치료를 단일 지표 중심 접근에서 전신 건강을 고려하는 통합 관리 모델로 끌어올렸다.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고령 CKD 환자에게 SGLT-2 계열로 신장 기능 악화를 늦추는 동시에, 빈혈과 고인산혈증을 함께 관리하는 다층적 치료가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이는 CKD가 더 이상 ‘신장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노년기의 활동성과 자립도를 좌우하는 핵심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령사회에서의 CKD 치료란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CKD 치료는 의료 영역을 넘어 사회적 과제로 확장되고 있다. 투석 환자 증가, 장기 입원과 외래 방문 빈도 상승, 복합 만성질환 관리 비용 증가는 건강보험 재정과 돌봄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맥락에서 SGLT-2 억제제와 피네레논을 중심으로 한 조기 개입 전략은 단순한 약물 혁신이 아니라, 향후 의료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로 해석된다. 질환 진행을 늦추고 심혈관 사건을 줄이는 것은 곧 입원과 투석 진입을 늦추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빈혈과 고인산혈증 관리처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치료 축 역시 여전히 중요하다. 이는 고령 CKD 환자의 현재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장기 요양과 돌봄 부담을 줄이는 데도 기여한다.

향후 과제
앞으로 CKD 치료에서 중요한 과제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조기 진단과 조기 개입이다. SGLT-2 억제제와 피네레논의 효과는 초기 단계에서 시작할수록 크다. 따라서 건강검진과 1차 의료 현장에서 CKD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로 연결하는 체계가 중요해진다.

둘째, 병용 전략의 표준화다. 환자의 연령, 동반 질환, 신장 기능 단계에 따라 어떤 조합이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한 임상 경험이 축적되고 있으며, 이를 진료 지침과 교육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셋째, 지속 가능한 급여 구조다. 고령 CKD 환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장기 치료 접근성을 유지하려면 합리적인 급여 설계와 약가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만성콩팥병 치료는 더 이상 신장 수치 개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웰에이징 질문에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다. 2020년 이후 형성된 이 글로벌 TOP5 치료 축은, CKD 관리가 관리 중심에서 예후 중심, 그리고 삶의 질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지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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