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비대의 이면에 숨은 희귀질환…"파브리병, 의심에서 시작된다”
[인터뷰] 김인철 계명대학교 교수, “파브리병, 늦게 발견될수록 되돌릴 수 없는 손상 남긴다”
“신생아 선별검사 이후의 과제… 성인 파브리병 진단은 여전히 숙제”
“희귀하지만 낯설지 않은 질환… 심근비대 환자에서 파브리병 떠올릴 수 있어야”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12-22 06:00   수정 2025.12.22 06:01
김인철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약업닷컴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약업신문 = 최윤수 기자

파브리병은 X염색체에 위치한 GLA 유전자 변이로 인해 α-갈락토시다제 A 효소가 결핍되면서 발생하는 유전성 희귀질환이다. 효소 기능 저하로 인해 체내에서 분해되지 못한 당지질(GL-3, lyso-GL-3)이 혈관 내피세포와 심근세포, 신장 사구체, 신경계 등에 점진적으로 축적되며, 이 과정은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

초기에는 통증, 발한 저하, 위장관 증상 등 비특이적인 증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질환으로 오인되기 쉽고, 성인기에 이르러서야 심장 비대, 신부전, 뇌혈관 질환 등의 형태로 발견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희귀질환으로 분류되지만, 진단이 지연될 경우 다장기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 부담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심장 침범은 파브리병 환자의 예후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좌심실 비대, 부정맥, 심부전과 같은 심장 증상은 고혈압성 심근비대나 비후성 심근병증으로 오인되기 쉬워, 심장내과 진료 현장에서 파브리병이 진단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심장 비대 환자군에서 파브리병을 감별 진단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으며, 조기 진단과 치료 개입의 중요성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심장내과 김인철 교수는 최근 진행한 약업닷컴과의 인터뷰에서 파브리병 진단과 치료의 현실을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했다.

김 교수는 심장내과 전문의로서 심근비대, 원인 불명의 심근병증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파브리병을 의심하고 진단으로 연결한 다수의 임상 경험을 축적해 왔다. 이번 인터뷰는 파브리병의 질환 특성과 진단 과정, 심장 침범의 임상적 의미, 국내 치료 환경과 급여 기준, 그리고 장기 관리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김 교수는 인터뷰에서 파브리병을 “의심하지 않으면 발견되지 않는 질환”으로 정의하며, 특히 후기 발현형 파브리병 환자들이 심장 증상으로 처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2024년부터 파브리병이 신생아 선별검사 급여 항목에 포함되면서 진단 환경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성인 진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의료진의 인식과 진단 접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가 장기 손상을 예방하고 예후를 개선하는 핵심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임상에서는 급여 기준과 제도적 한계로 인해 치료 시점이 지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전형적 발현형과 후기 발현형, 진단 접근이 달라진다
김 교수는 파브리병의 임상 양상이 크게 전형적 발현형과 후기 발현형으로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전형적 발현형은 α-갈락토시다제 A 효소 활성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경우로, 소아·청소년기부터 신경병성 통증, 사지 말단 통증, 발한 저하, 위장관 증상, 각막 혼탁 등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은 성장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지만, 개별 증상만으로는 다른 질환과 구별하기 어려워 진단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면 후기 발현형은 효소 활성이 일부 유지돼 어린 시절에는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다가, 성인이 된 이후 특정 장기 증상으로 처음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김 교수는 “심장내과 진료 현장에서 접하는 파브리병 환자 대부분이 후기 발현형”이라며 “고혈압성 심근비대나 비후성 심근병증으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다가,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파브리병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후기 발현형 환자들은 대개 40~60대에 심장 비대, 부정맥, 심부전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연령이나 고혈압에 의한 변화로 해석될 경우, 파브리병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 교수는 이러한 임상 현실이 진단 지연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의심하지 않으면 발견되지 않는다”… 진단까지 평균 수년
파브리병 진단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질환에 대한 인지도 부족과 비특이적 증상이다.

김 교수는 “환자 본인뿐 아니라 의료진도 파브리병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진단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심장 비대라는 소견은 고혈압, 비후성 심근병증, 판막질환 등 다양한 질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어, 희귀질환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심장내과에서 파브리병을 의심하게 되는 중요한 단서 중 하나는 심전도 소견이다. 김 교수는 “파브리병 환자의 경우 심전도에서 QRS 파형이 유독 높게 나타나거나 PR 간격 단축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러한 소견이 보이면 단순한 고혈압성 변화로 치부하지 않고, 추가 평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심초음파 검사는 좌심실 벽 두께와 기능을 확인하는 데 기본적인 검사이며, 심장 MRI는 파브리병 진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 교수는 “MRI에서 세포 내 물질 축적에 따른 특징적인 영상 소견이 관찰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T1 값 감소나 특정 부위의 조영 증강 소견은 파브리병을 강하게 시사하는 단서가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소견이 확인되면 효소 활성 검사와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진을 진행하게 된다.

신생아 선별검사 도입 이후 변화… 가족 진단의 출발점
2024년부터 파브리병이 신생아 선별검사 급여 항목에 포함되면서 진단 환경에도 점진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김 교수는 “아직 성인 진료 현장에서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직접 진단된 환자를 많이 접한 것은 아니지만, 자녀의 진단을 계기로 부모와 형제자매까지 검사로 이어지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브리병은 X염색체 연관 유전질환으로, 가족 검사가 매우 중요하다. 원칙적으로는 가계도를 작성해 3대에 걸쳐 유전적 연관 가족을 확인하는 것이 권고된다. 다만 김 교수는 국내 현실에서는 가족 검사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전질환에 대한 심리적 부담 때문에 환자가 가족에게 질환을 알리는 것을 주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교수는 환자가 질환을 충분히 이해하고 치료 효과를 체감한 이후에 가족 검사를 권유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 검사를 통해 추가 환자가 발견되지 않더라도, 향후 불필요한 불안이나 오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치료의 핵심은 조기 개입… 장기 손상 이전이 관건
파브리병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가능한 한 이른 시점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치료를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신장 기능 저하, 심부전, 뇌졸중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생존율도 크게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장기 손상을 늦추거나 일부는 호전시킬 수 있어, 예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심장 침범이 본격화되기 전 치료를 시작할 경우, 좌심실 벽 두께 감소와 심장 기능 개선이 관찰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신장 기능 역시 사구체 여과율 감소 속도를 늦출 수 있어, 투석이나 이식으로 진행되는 시점을 지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치료 시점이 늦어질수록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이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국내 치료 옵션과 임상 경험
현재 국내에서 파브리병 치료로 사용 가능한 옵션은 효소대체요법(ERT) 2종과 특정 유전형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 샤프론 치료제 1종이다. 효소대체요법은 2주 간격으로 정맥 주사를 통해 투여되며, 체내에 부족한 효소를 보충해 당지질 축적을 줄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김 교수는 “파브라자임(아갈시다제 베타)은 표준 허가 용량이 1.0mg/kg으로 설정돼 있고, 장기간 축적된 임상 데이터와 실제 사용 경험이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레프라갈(아갈시다제 알파) 역시 치료 옵션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두 약제를 직접 비교한 임상 연구는 없어 개별 환자의 임상 양상과 의료진 경험을 바탕으로 치료제를 선택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샤프론 치료제는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에게만 적용 가능해 대상 환자가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현재 임상 현장에서는 효소대체요법이 파브리병 치료의 중심 축을 이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급여 기준의 현실과 한계
김 교수는 현행 급여 기준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현재는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더라도 심장이나 신장, 뇌 등 주요 장기에 유의미한 침범이 확인돼야 급여 적용이 가능하다”며 “임상적으로는 증상이 경미한 단계에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더 효과적임에도, 제도상으로는 장기 침범 이후에야 치료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일부 환자는 진단을 받고도 일정 기간 치료를 시작하지 못한 채 경과 관찰만 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구조가 조기 치료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하며, 향후 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장기 관리와 환자 교육의 중요성
파브리병은 일회성 치료로 끝나는 질환이 아니라 평생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이다.

김 교수는 “환자와 보호자가 질환의 특성과 치료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장기 치료 순응도를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브리병이 희귀질환이라는 이유로 숨기거나 치료를 포기할 필요는 없으며, 적절한 치료와 추적 관찰을 통해 안정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 간 의료 격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교수는 “수도권뿐 아니라 각 지역 대학병원에도 파브리병 진단과 치료 경험을 가진 의료진이 있으며, 장기 추적 관리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환자와 가족이 가까운 의료기관에서 지속적으로 관리받는 것이 치료 지속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김인철 교수는 파브리병 진단과 치료의 핵심을 ‘의심’, ‘조기 개입’, ‘지속 관리’로 정리했다. 그는 파브리병이 이름만으로도 낯설고 두려움을 주는 질환일 수 있지만,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통해 예후를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심장 비대나 원인 불명의 심근병증 환자를 진료할 때 파브리병을 한 번 더 떠올리는 것이 환자의 치료 경로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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