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결산] "허가 속도가 바뀌었다"…2025년, 식약처 심사 결정적 분기점
신속심사·GMP 90일·사전상담 전면화… ‘규제자 속도’가 정책이 된 한 해
대면 심사·수시검토·길잡이 제도까지, 허가 구조를 재설계하다
159억 원·207명, ‘규제자의 속도’에 국가가 답하다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12-22 06:00   수정 2025.12.22 06:01

2025년은 국내 신약 허가·심사 제도에서 ‘속도’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운영 지표와 절차 변화로 가시화된 첫 해로 기록될 예정이다. 올해 1월 시행된 ‘신약 허가 신속심사 혁신 방안’은 도입 8개월 만에 실제 운영 성과와 구조적 과제를 동시에 드러내며, 신약 심사 체계가 이전과는 다른 국면에 진입했음을 보여줬다.

2025년 현재까지 신속심사 절차에 접수된 품목은 10개 성분, 14개 품목이며, 연말까지 예년 수준인 19~20개 성분 허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도 시행 초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접수 규모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국산 개발 신약과 수입 의약품이 고르게 포함된 점도 특징이다. 특히 수입 의약품 비중이 여전히 높은 상황은, 국내 허가 심사 체계가 글로벌 개발 일정과 직접 맞물려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로 해석된다.

‘신속’의 실체… 대면 회의 중심 심사 구조로 전환
2025년 신약 허가 혁신의 가장 큰 변화는 심사 과정 전반에 대면 회의를 구조적으로 삽입했다는 점이다. 과거 서면 질의·응답 중심으로 운영되던 심사 방식에서 벗어나, 사전 상담부터 보완자료 검토, 최종 심사 단계까지 대면 논의가 사실상 의무화된 체계로 전환됐다.

현재 신속심사 대상 품목의 경우, 보완 단계에서만 평균 5회 이상, 전체 절차에서는 업체당 약 10회 내외의 공식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모든 회의는 회의록과 공문으로 남겨져, 심사 과정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동시에 높이고 있다.

이 같은 구조 변화는 단순히 소통을 늘린 차원을 넘어, 불필요한 재보완과 해석 차이를 줄이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서면 보완 요구의 의미가 불명확해 추가 질의와 재제출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면 회의를 통해 심사관이 직접 설명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허가 전략 수립의 불확실성이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GMP 심사 90일 완료… 병목 구간 구조적으로 해소
신약 허가 지연의 대표적 원인으로 지적돼 온 GMP 심사 역시 2025년을 기점으로 구조적인 변화를 맞았다. 기존에는 GMP 실태 조사가 허가 절차 후반부로 밀리면서 법정 심사 기간을 초과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으나, 개편된 제도에서는 접수 후 90일 이내 GMP 심사 완료라는 명확한 기한이 설정됐다.

이에 따라 신속심사 대상 품목은 법정 목표 기간인 295일 내 허가가 제도적으로 가능해졌다. 특히 제조 공정이 복잡한 바이오의약품이나 글로벌 동시 개발 품목의 경우, GMP 일정 불확실성이 줄어든 점이 체감 변화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단순한 행정 효율 개선을 넘어, 글로벌 신약 개발 전략에서 한국 허가의 활용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허가 지연이 상업적 손실로 직결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경우, 출시 시점이 한 달만 앞당겨져도 수백억 원 단위의 매출 차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 상담과 ‘길잡이 제도’, 개발 초기부터 개입
2025년 심사 체계 전환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축은 개발 초기 단계부터 허가를 염두에 둔 사전 개입 구조다. 식약처는 기존의 사전 상담 제도를 한 단계 확장해, 임상시험 전 단계부터 허가까지 전주기를 연계하는 ‘길잡이 제도’를 본격 도입했다.

사전 상담을 받은 약 500여 개 품목을 분석한 결과, 의약품의 47%, 의료기기의 63%가 최소 한 단계 이상 개발 진전을 이뤘으며, 일부 품목은 실제 허가까지 도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사전 상담이 단순 자문이 아니라, 개발 방향 설정과 시행착오 감소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길잡이 제도는 사회적 필요성과 개발 의지가 명확한 20개 핵심 품목을 선정해 전담팀을 배정하고, 주기적인 모니터링과 밀착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는 허가 신청 이후 심사 절차를 개선하는 ‘신속심사 혁신 방안’과 구분되는 제도로, 허가 이전 단계에서의 시간 절약을 목표로 한다.

수치로 확인되는 변화, 그러나 남은 과제
제도 운영 8개월 차를 맞은 현재, 식약처는 신속심사 혁신 방안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하고 있다. 접수 건수는 예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대면 소통 강화와 GMP 일정 단축을 통해 허가 지연의 주요 원인이 구조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동시에 인력 구조의 불균형이라는 과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올해 신속심사 전담 인력 약 30명이 충원됐지만, 이들 대부분은 공무원이 아닌 공무직 심사원으로, 실제 주심사자로 투입되기까지는 상당한 교육과 경험 축적이 필요하다. 그 결과 기존 실무자와 연구관급 중간관리층의 부담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중간관리자인 연구관급 공무원 1인이 최대 10명 이상의 심사 인력을 관리·검토해야 하는 구조는 제도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해결이 필요한 과제로 꼽힌다. 식약처 역시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심사원 충원뿐 아니라 관리·검토 권한을 가진 공무원 인력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속도’의 재정의, 제도의 방향은 명확해졌다
2025년 신약 허가 혁신의 의미는 허가 기간이 며칠 단축됐는지에 있지 않다. 핵심은 허가 지연이 발생하던 지점을 제도적으로 앞당겨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규제 당국이 개발 과정 전반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재정의했다는 데 있다.

대면 회의 기반 심사, GMP 일정의 구조적 관리, 사전 상담과 길잡이 제도를 통한 개발 초기 개입은 모두 ‘속도’를 결과가 아닌 설계 변수로 다루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이는 식약처가 더 이상 최종 관문에 머무르지 않고, 개발 전주기를 함께 설계하는 규제 동반자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도 시행 8개월 차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2025년은, 국내 신약 심사 역사에서 ‘허가 속도’가 처음으로 제도 설계의 중심에 올라선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변화는 2026년 이후 한국의 신약 개발 환경 전반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59억 원·207명 증원의 의미
2025년 신약 허가·심사 체계 변화의 또 다른 축은, 제도 개선과 병행된 전례 없는 규모의 인력·예산 확충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5년 승인·심사 인력 확충을 위해 159억 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총 207명의 인력 증원을 확정했다. 이는 단순한 조직 확대 차원이 아니라, 허가·심사 속도 자체를 정책 과제로 격상시킨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이 같은 성과를 식약처 단독의 결과로 설명하지 않았다. 오 처장은 “현장의 문제 제기와 대통령의 정책적 인식이 맞물린 결과”라고 강조하며, 규제 속도가 산업 경쟁력에 직결된다는 공감대가 정부 차원에서 형성됐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새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주재로 열린 바이오 혁신 토론회와 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산업계는 공통적으로 “기업이 아무리 연구개발과 투자를 서둘러도, 기업 스스로 줄일 수 없는 속도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 속도가 바로 규제기관의 심사 속도라는 인식이었다. 이 발언은 단순한 현장 불만이 아니라, 규제 병목이 산업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핵심 문제 제기로 공유됐다.

이 같은 문제 인식은 이후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국회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주요 논거로 작용했다. 그 결과 확보된 207명의 증원 인력 가운데 205명은 허가·심사 인력으로 배치될 예정이다. 디지털 소통 인력 2명을 제외하면, 이번 증원의 목적은 오로지 심사 기간 단축과 처리 속도 개선에 맞춰져 있다.

오 처장은 이에 대해 “이번 인력 증원은 식약처의 오랜 숙원이자, 산업과 국민을 동시에 고려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식약처는 단순히 인원 수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전문성 중심의 인력 재설계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대규모 채용을 전담하는 별도의 채용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어떤 분야에 어떤 전문 인력이 필요한지부터 재설계하는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단기간에 숫자를 채우기보다, 실제 심사 현장에서 즉시 기여할 수 있는 인력을 선별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앞서 제도 개편 과정에서 드러난 중간관리층 부담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결국 159억 원의 예산과 207명 증원은 숫자 자체보다, 규제자의 속도를 국가 경쟁력의 변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정책적 전환을 상징한다. 제도 개선과 인력·조직 재설계가 맞물린 2025년은, 신약 허가·심사 체계에서 ‘속도’가 선언이 아닌 국가 차원의 투자 대상으로 자리 잡은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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