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 릴리(Eli Lilly)가 리겔 파마슈티컬스(Rigel Pharmaceuticals)와 진행 중이던 RIPK1 억제제 공동 연구에서 중추신경계(CNS) 관련 개발 파트를 철수했다. 이번 결정은 2021년 체결된 협력 계약의 일부 변경으로, 릴리가 CNS 관통형 RIPK1 억제제 후보물질의 임상 개발과 상업화를 주도하기로 했던 부분을 종료했다.
릴리의 철수는 리겔의 3분기 실적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리겔은 지난 10월 초 릴리로부터 CNS 관련 협력 종료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양사는 기존 계약에 따라 총 9억 6000만 달러의 잠재적 계약금(마일스톤 포함)을 설정했으며, 이 중 1억 2500만 달러가 선급금으로 지급된 바 있다. 협력 종료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은 전체 파트너십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핵심 자산인 ‘오카두서팁(ocadusertib)’ 개발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이는 리겔이 여전히 계약상의 성과금(마일스톤) 달성 가능성을 유지함을 의미한다.
오카두서팁는 현재 릴리가 중등도에서 중증의 활성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2상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약물로, RIPK1 억제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염증성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적용되고 있다. RIPK1 단백질의 과활성은 세포사멸(programmed cell death)을 촉진하여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적인 세포에서는 카스파제-8(caspase-8)이 RIPK1을 절단해 균형을 유지하지만, 변이가 발생하면 절단이 이루어지지 않아 세포사멸과 염증이 통제되지 않게 된다.
RIPK1 억제제 연구는 여전히 주요 제약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7월 노바티스(Novartis)는 중국 바이오텍 시로나스(Sironax)로부터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 BBB)을 통과할 수 있는 플랫폼에 대한 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플랫폼의 핵심 자산은 신경퇴행성 질환과 면역·염증 질환을 표적으로 하는 두 가지 RIPK1 억제제 후보물질이다.
반면 사노피(Sanofi)는 덴알리 테라퓨틱스(Denali Therapeutics)와 공동개발 중이던 RIPK1 억제제의 다발성 경화증(MS) 2상 임상 실패 이후 해당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릴리의 이번 결정이 단기적인 포트폴리오 재편 전략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릴리는 최근 항암제와 대사질환 중심으로 연구개발(R&D) 투자를 집중하며, 신경계 분야의 일부 파이프라인을 정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면역염증 및 자가면역 질환 중심의 중장기 전략을 강화하면서, CNS 관련 고위험 프로젝트를 선별적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리겔은 이번 협력 구조 변화에도 불구하고, 릴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주요 임상 자산의 개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회사는 향후 자체적인 CNS 연구를 별도로 추진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와 함께 RIPK1 억제 기전이 신경염증과 면역질환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향후 다국적 제약사의 연구협력 움직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