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약국, 동일성분 약 평균 6.4개 보유…불용재고·건보재정 악화 심각
79.4% 약국 “소진 전 폐기 경험”…의사 처방은 고가 위주, 환자 부담 가중
약준모 보고서 “제네릭 구조 개선·성분명 처방·국가 개입 필요” 제안
전하연 기자 haye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9-08 06:00   수정 2025.09.08 06:01
지역 약국에 다수 회사에서 출시한 동일 성분 의약품(모사프리드 제제)들이 중복 구비된 모습. ©약준모

의약분업 시행 25년이 지났지만 국내 상품명 처방 관행이 고착되면서 지역 약국들이 과도한 동일성분 의약품 재고를 떠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 인해 약국은 불용재고와 폐기 부담을 겪고 있으며, 환자와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이 발생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준모, 위원장 김민성)은 최근 ‘대체조제 의약품 관련 지역 약국 현황 보고서’를 통해, 전국 126개 약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는 지난 8월 25일부터 31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됐으며, 동일성분·동일함량·동일제형 의약품 보유 현황과 폐기 경험, 처방 경향, 약국 인식 등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설문에 응답한 126개의 약국 중 100개(79.4%)의 약국에서 가장 많은 회사의 제품을 보유한 대체조제 의약품들 중 일부 의약품을 소진하지 못하여 폐기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26개(20.6%)의 약국만이 폐기한 경험이 없다고 응답했다. ©약준모

약국 평균 6.37개 회사 제품 구비, 약 80%는 폐기 경험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 약국은 동일 성분 의약품을 조제하기 위해 평균 6.37개 회사 제품을 구비하고 있었다. 

최대 25개까지 확보한 경우도 있었으며, 10개 이상 보유한 약국이 전체의 18.3%에 달했다. 대체조제 가능한 의약품을 단 한 회사 제품만 갖춘 약국은 없었다.

특히 약국 79.4%(100곳)는 동일성분 의약품을 소진하지 못해 폐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대한약사회가 운영하는 불용재고 의약품 반품사업에 따르면 2023년 전국 약국의 반품 신청액은 286억 원에 달했으며,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사회적 비용도 상당한 것으로 지적됐다.

약국에서 다수 회사 제품을 구비하는 성분은 모사프리드(소화기관용약), 레바미피드(소화성궤양용제), 로수바스타틴·아토르바스타틴(동맥경화용제), 록소프로펜(진통소염제), 세파클러(항생제) 등으로, 이들 성분은 국내에서 모두 100개 이상의 제약사 제품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의사 처방은 고가 위주…최저가 선택은 2.5%뿐

병·의원 한 곳에서 처방되는 동일성분 의약품의 종류는 평균 4.81개였으며, 역시 최대 25개까지 처방하는 사례가 있었다. 내과,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 순으로 다수 회사 제품이 집중됐다.

가장 주목할 점은 의사들의 처방 경향이었다.

조사 결과, 병·의원 44%가 동일성분 중 ‘가장 고가 제품’을 다빈도로 처방하고 있었으며, 대조약(오리지널) 선호는 12.5%, 최저가 약을 주로 처방하는 경우는 2.5%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의사의 선택 기준이 환자 본인부담과 건보재정 측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저가 지향은 사실상 미미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약국에서 대체조제 시 가장 우선하는 기준은 ‘불용재고 위험이 낮은 약’(33.3%)이었다. 이어 대조약(26.2%), 재고량이 많은 약(23%), 환자 부담이 적은 저가약(16.7%) 순으로 나타나, 의사와 약사의 선택 기준 차이가 두드러졌다.
 

국내외 오리지널(대조약) 의약품 대비 제네릭 의약품 약가비교.

제네릭 구조·성분명 처방 개선 필요성 강조

보고서는 현 상황의 문제점을 △불용재고 및 폐기 발생 △환자·건보재정 부담 증가 △제네릭 난립으로 인한 시장 왜곡 등으로 규정했다. 

실제로 OECD 32개국 중 한국의 제네릭 약가 수준은 4번째로 높아 캐나다의 1.5배, 미국의 1.6배, 영국·독일의 2.1배에 이른다. 

2018년 발사르탄 발암물질 사태 당시 국내에서는 76개사 174품목이 판매 중지된 반면, 캐나다는 21개, 미국은 10개, 영국은 5개 품목에 그쳤던 것도 한국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됐다.

이와 함께 성분명 처방 도입의 필요성도 강조됐다. 

보고서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도네페질 5mg의 경우 최저가 425원, 최고가 2,060원으로 가격 차이가 5배에 이른다”며 “성분명 처방을 통해 환자가 오리지널과 제네릭 중 선택할 수 있게 하면 건보재정과 본인부담을 동시에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은 INN 기반 대체조제로 연간 2억 유로(약 3천억 원)를 절감했으며, 한국도 성분명 처방 도입 시 연간 5,000억 원 이상의 재정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고 부연했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의약품 품절 사태가 잦아지면서 대체조제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가 차원의 대체조제율 통계는 저가 전환율만 집계되는 등 현실과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심평원·건보공단 데이터를 연계해 실제 처방·조제 행태를 분석하고, ‘묶음의약품’ 간 자유로운 대체조제를 허용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국가 개입 시급성 부각

보고서는 “초고령화와 생산인구 감소로 건보재정이 2026년 적자 전환, 2030년에는 준비금 소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특정 직역의 편의를 위해 국가와 국민이 희생되는 구조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제네릭 시장 구조 개선, 성분명 처방 제도화, 국가 차원의 데이터 수집·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는 지역약국과 병·의원 현장에서의 구체적 수치를 통해 상품명 처방 체계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성분명 처방 논의와 제네릭 제도 개선에 중요한 근거 자료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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