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탓'이라 넘기기엔 너무 위험…양극성장애, 평균 진단까지 6년
[인터뷰] 안용민 교수, "약 안 먹으면 80% 재발… ‘장기지속’ 주사제 치료가 바꾸는 삶"
장기지속형 주사제, 순응도 높이고 재입원 막는다
양극성장애 자살률, 우울증보다 높다…감정 사이클이 남기는 치명적 대가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7-16 06:00   수정 2025.07.16 11:48
최근 약업닷컴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안용민 교수가 양극성장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약업신문 = 최윤수 기자

양극성장애는 단순히 기분이 들쭉날쭉한 상태가 아니다.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조되는 ‘조증’과 극단적으로 가라앉는 ‘우울증’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환자의 사회적·직업적 기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는 뇌 질환이다.

문제는 이러한 증상이 때론 창의성이나 활력으로 포장되거나, 반대로 게으름과 무기력으로 낙인 찍히며 진단 시기를 놓치기 쉽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여전히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하게 남아 있어, 양극성장애를 겪는 많은 이들이 치료의 문턱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양극성장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조기 진단, 효과적인 약물 및 비약물 치료의 중요성은 날로 부각되고 있다. 양극성장애는 단기간의 치료로 완치되는 질환이 아니라, 재발 방지와 기능 회복을 위한 장기적 치료 전략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선 의사와 환자, 가족, 사회의 협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들은 여전히 초기 진단에서부터 시행착오를 겪고, 적절한 약물 치료를 찾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에 약업닷컴은 최근 양극성장애 치료 및 정신약물학 분야의 권위자인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안용민 교수(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를 만나, 현재 국내 정신의료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과 최신 치료 전략, 그리고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각적 접근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았다.

안 교수는 “양극성장애는 생물학적 기반의 뇌 질환이라는 점을 사회 전체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진단과 치료는 물론, 낙인을 줄이기 위한 공공 교육과 정책적 접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Q. 일반적인 감정 기복과 양극성장애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
살다 보면 누구나 기분이 들뜨거나 가라앉는 시기를 경험한다. 시험에 붙었을 때 기분이 좋고, 실패했을 때 우울한 건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이다. 하지만 양극성장애는 단순한 기분 변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 질환은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되는 뇌 질환으로, 조증 상태에서는 과도한 자신감과 과대망상, 충동적 행동, 수면 부족에도 불구한 과잉행동 등이 나타나고, 반대로 우울기에는 극심한 무기력과 죄책감, 자살 충동까지 경험할 수 있다.

이런 기분의 극단적인 변화가 개인의 학업, 직장, 대인관계 등에 명백한 기능 저하를 초래하며 수일에서 수주 이상 지속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감정 기복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Q. 양극성장애 1형과 2형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1형은 명확한 조증 에피소드가 한 번 이상 있었던 경우를 말하고, 2형은 조증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조증과 반복적인 우울증이 나타나는 경우다. 조증은 에너지가 과도하게 높고 자극에 민감하며, 현실감각이 떨어질 정도로 비현실적인 사고를 보인다.

반면, 경조증은 상대적으로 경미하고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 보이는 시기로 여겨질 수도 있어 병으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2형 양극성장애 환자들은 흔히 단순한 우울증으로 오진되고, 항우울제를 투여받은 후 조증으로 전환되거나 사이클이 악화되며 뒤늦게 양극성장애로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Q. 양극성장애는 진단까지 평균 6년이 걸린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는데?
양극성장애는 초기에는 대부분 우울증 증상만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조증이나 경조증 여부를 면밀히 질문하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환자 본인도 과거의 기분 상승 상태를 '좋았던 시절' 정도로 생각해 의료진에게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족들도 활발했던 시기를 질병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전문 의료인처럼 양극성장애를 의심하는 경우는, 과거에 지나치게 활발했거나 수면이 줄면서도 피로를 느끼지 않았던 시기, 말이 많아지고 생각이 빨라졌던 시기 등을 집중적으로 캐묻는다. 진단에 도움이 되는 설문지나 척도도 활용한다.

결국 진단은 단면이 아니라 환자의 전체 삶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Q. 양극성장애를 장기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어떤 위험이 있나?
어떤 질환이든 조기에 발견하고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예후에 매우 중요하다. 정신과 질환도 마찬가지다.

양극성장애의 경우 보통 첫 증상이 조증보다는 우울증으로 시작된다. 많은 환자들이 처음 2~3년 정도를 우울증 상태로 보내다가, 그 이후에 조증 또는 경조증이 나타나면서 양극성장애로 진단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우울기가 주로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나타나는데, 이 시기는 학업, 진로, 대인관계 등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기반을 형성해야 할 시기다. 이 시기를 우울한 상태로 보낸다면 학업 성취가 어렵고, 직장을 유지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도 큰 제약이 따르며, 결과적으로 삶의 기능이 무너지는 2차적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또 하나 매우 중요한 점은 자살 위험이다. 양극성장애는 단순 우울증보다 자살률이 더 높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져 있다. 일반적으로는 우울증 환자의 자살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단순히 우울증 환자 수가 더 많기 때문이지 개별 환자당 위험도가 높아서가 아니다.

실제로 동일한 수의 환자를 비교했을 때, 양극성장애 환자의 자살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 이는 조증 상태에서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조되었다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더 극단적인 절망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급격한 기분 변동이 좌절감을 배가시키고, 자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양극성장애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단순한 감정 변화 이상의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며, 학업 및 사회 기능 저하, 대인관계 악화는 물론 자살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조기에 정확히 진단하고, 꾸준히 치료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용민 교수. © 약업신문 = 최윤수 기자

Q. 양극성장애의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나?
양극성장애는 생물학적 뇌 질환이기 때문에 약물 치료가 중심이 돼야 한다. 기분 조절제가 기본이고, 필요에 따라 항정신병 약물도 함께 사용한다. 기분조절제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조현병 치료에 사용되던 2세대 항정신병 약물 중 일부가 기분 조절 효과를 인정받아 양극성장애 치료에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반면, 항우울제는 매우 신중하게 써야 한다다. 단독 투여 시 조증 유발, 기분 사이클 불안정, 재발 위험 증가 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기에 항우울제를 쓰더라도 반드시 기분조절제와 병용해야 한다.

여기에 심리사회적 중재, 가족교육, 스트레스 관리, 재활 등 다각적 접근이 병행돼야 장기적인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Q. 장기지속형 주사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환자에게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되나?
양극성장애는 재발률이 높은 만성질환이다. 특히 약물 순응도가 떨어지면 재발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실제로 재발 환자의 80%가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았다는 통계도 있다.

문제는 재발할수록 회복이 느려지고, 증상이 심화되며, 치료에 대한 저항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이러한 순응도 문제를 극복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다.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 주사로 투약하면 혈중 약물 농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돼, 환자가 약을 깜빡하거나 복용을 거부해도 어느 정도 보호 효과가 지속된다.

특히 아리피프라졸 장기지속형 제제는 조증 억제 효과가 우수하며, 국내외에서 양극성장애 치료에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환자나 보호자 모두에게 편리하고, 무엇보다 재발 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있어 향후 2개월, 3개월 제형으로 확대된다면 치료 접근성과 환자 만족도 측면에서도 큰 진전이 될 것이라 본다.

실제로 조현병 환자들은 증상이 좋아져도 자기의 원래 갖고 있는 기능만큼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대다수 직장도 없고 사회생활이 잘 안되는 반면, 양극성 장애 환자들은 자기 기능만큼 회복이 가능하다. 그래서 직장 생활도 하고 가정 생활도 하고 그런 환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병원에 오는 게 쉽지가 않다. 직장생활 중 매달 병원을 방문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1개월 지속 주사를 맞는 환자들 중 2개월 지속 주사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많은 상황이다. 2개월 지속 주사가 도입되면 2개월 지속 주사로 바꿀 가능성이 높다.

Q. 재발 방지를 위해 환자와 가족이 꼭 지켜야 할 생활 관리 요소가 있다면?
첫 번째는 수면이다. 수면과 기분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서, 잠이 줄어들면 조증으로, 과도한 수면은 우울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규칙적인 수면 습관은 재발 방지에 핵심이다.

두 번째는 약물 순응도다. 환자가 병식이 생겼을 때 복약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가족이 함께 모니터링해야 한다.

세 번째는 감정 기복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을 피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과도한 음주, 불법 다이어트약, 각성제 성분의 약물 사용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꾸준한 운동과 취미 활동은 우울기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단순한 신체 건강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까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Q. 조심해야 할 고위험군이 따로 있다면?
ADHD로 진단받은 아동이나 청소년 중 일부는 이후 양극성장애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두 질환은 일부 증상이 겹치기 때문에 감별이 쉽지 않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충동성이 높아 보일 때, 단순히 ADHD로 보기보다 기분 상태와 수면, 사고의 속도 등을 함께 관찰해야 한다.

또 가족력은 중요한 위험 인자다. 부모나 형제 중 양극성장애 병력이 있다면 발병 확률이 높아지므로, 특히 10대 후반~20대 초반의 감정 변화에 주의해야 한다.

Q. 마지막으로 양극성장애 환자와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양극성장애는 불치병이 아니다. 조기에 진단받고 꾸준히 치료하면 누구나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질환이다.

예술계 종사자 중에 양극성장애를 앓는 이들이 많다. 감정의 폭이 크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이 질환에 더 취약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 감정과 창의력을 조절할 수 있다면 더 깊은 작품과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치료를 두려워하지 말고, 병이라는 낙인에 지지 마시길 바란다. 의료진은 여러분의 삶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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