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인가 기회인가, K-제약바이오 대전환기…지금이 도약 시점"
정부·기업·의료계·연구기관 모두가 '전략적 협업'해야 지속가능성 열린다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3-31 06:00   수정 2025.03.31 06:01
2025년 한국 제약산업의 대전환: 9대 트렌드.©아이큐비아(IQVIA)

2025년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그야말로 분기점에 서 있다. 병원 현장의 의료 인력 붕괴, 디지털 전환 가속, 글로벌 경쟁 심화까지. 외부 위협과 내부 과제가 동시에 밀려오며,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이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아이큐비아(IQVIA)는 지난 28일 '2025년 한국 제약산업의 대전환: 위기와 기회의 공존' 보고서를 발간했다. 아이큐비아는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변화 양상을 정리하고, 산업계가 직면한 현실을 △산업의 대전환 △디지털과 혁신 △글로벌화와 지속가능성,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전략과 방향을 제시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의정 갈등은 단순한 보건 이슈를 넘어 산업계 전반에 깊은 균열을 남겼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상급종합병원 병상 가동률이 반 토막 났다. 항암제와 주사제 중심의 원내 의약품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 국내 주요 제약사들의 재고자산은 전년 대비 25% 이상 증가하며 2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상위 빅5 제약사의 2024년 영업이익 총합은 전년보다 19.1% 줄어든 5503억원에 그쳤다.

임상시험도 줄줄이 연기됐다. 일부 제약사는 환자 모집 차질로 임상 재평가 기한을 2년까지 늦추는 상황에 부닥쳤다. 의료 인프라가 흔들리자, 제약바이오 산업의 핵심 기반인 R&D도 함께 위축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대형 제약사가 주도해온 생태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신약개발 전문 소형의 바이오텍 오스코텍이 발굴한 폐암 신약을 고도화해 FDA 문턱을 넘었다. 한미약품은 GLP-1 기반 비만·당뇨 신약 파이프라인을 적극 확장 중이다. 2024년 기준 국내 임상 3상 승인 건수는 전년 대비 4.6배 급증하며 산업 전반의 R&D 열기가 거세다.

벤처기업 단독으로 글로벌 시장을 두드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비보존제약, 에이비엘바이오, 지아이이노베이션 등이 자체 기술로 해외 임상 및 기술수출에 성공하면서, 대형사의 그늘 없이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벤처 독립 모델'이 힘을 얻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대형·벤처·글로벌' 간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벌어지는 입체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단순한 자본력보다 빠른 실행력과 기술력, 유연한 파트너십이 기업 생존의 열쇠가 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기술 확보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는 항체약물접합체(ADC)와 이중항체, 세포유전자치료(CAGT) 분야는 국내 기업들에게도 기회의 창을 열고 있다. 유한양행, 리가켐바이오, 알테오젠 등은 독자적 플랫폼을 앞세워 글로벌 기술이전에 나섰다.

지씨셀과 차바이오텍은 세포치료제 분야의 임상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치료 패러다임은 기존의 저분자 의약품 중심에서 '플랫폼 기반 혁신'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치료법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기술로 질병의 본질에 접근하는 흐름이다 나타났다.

AI 기술은 산업을 움직이는 실체가 되고 있다. JW중외제약의 'JWave', 대웅제약의 'DAISY', SK바이오팜의 'HUBLE+'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AI를 R&D에 접목하면서 신약 후보물질 도출부터 임상 설계, 환자 케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변화가 진행 중이다.

또한 생산성과 품질관리, 마케팅, 환자 순응도 관리까지 확장되는 AI 활용 범위는 산업 전체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 투명성, 알고리즘 검증, 개인정보 보호 등 새로운 규제 이슈도 함께 따라오고 있어, 기업들은 이에 대한 체계적 대응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주도하는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한국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2024년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는 2425억원으로, 세계 4위에 올랐다. '위고비' 출시 이후 폭발적인 수요가 이어졌다. 한미약품은 삼중작용제 'HM15275', 근육 증가 및 체중 감량 신개념 치료제 'HM17321' 등 3개 파이프라인을 보유해 국내 비만 신약개발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비만치료제의 적응증이 심혈관질환, 알츠하이머 등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장기지속형 제형 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빅파마와의 기술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급성장 이면에는 비대면 처방 논란, 오남용 우려, 가격 접근성 등 복합적인 과제도 존재한다.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선두주자와 경쟁하려면 제형 기술, 적응증 확대, 안전성 확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DMO)은 이제 명실상부한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성장 축으로 자리 잡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송도 5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다. 셀트리온도 CDMO 전문 자회사를 통해 글로벌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한미약품은 단백질 의약품 생산을 위한 미생물 배양 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단순 생산을 넘어 공정개발(CDO), 후속 제조 및 품질관리(DMO)까지 포함하는 통합형 서비스로 진화하면서, 국내 기업의 제조 역량은 세계적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다만 중소형 CDMO 기업들의 기술 격차, 영업 네트워크 부족 등은 풀어야 할 과제다.

아이큐비아 코리아(IQVIA Korea) 이강복 마케팅&세일즈 엑설런스 리드(Marketing & Sales Excellence Lead)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면서 "AI와 디지털을 중심으로 R&D를 혁신하고, 차세대 치료제 플랫폼을 강화하며, 글로벌 시장과 ESG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만이 앞으로 생존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료 시스템의 충격을 넘어, 이번 위기를 산업의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올해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라며 "정부, 기업, 의료계, 연구기관 모두가 '전략적 협업'이라는 해답을 공유하고 실천할 때, 지속가능한 성장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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