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치료제 ‘타그리소’의 1차 치료급여를 요청하는 국민동의청원 글이 동의수 5만명을 돌파하면서 유방암치료제 ‘엔허투’의 신속승인 요청 청원에 이은 두번째 위원회 회부 안건이 될 전망이다. 국회를 향해 고가약 급여적용을 촉구하는 외침은 점점 증가하는 모습이다.
지난 8일 올라온 ‘폐암 치료제 타그리소의 1차 치료급여 요청에 관한 청원’ 글은 27일 오전 4만9990명의 동의를 받아 위원회 회부 조건인 5만명의 99%를 달성하며 동의 만료일자를 십여일 앞두고 회부 조건을 거의 달성했다. 현재는 동의수 5만명을 채우고 동의종료청원으로 변경됐다.
현재 폐암 투병 중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6년 전 폐암 2기a로 진단받고 수술을 받았으나, 그로부터 4년 6개월 후 재발돼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타그리소를 복용하기 시작하자 복용 3개월 만에 모든 종양이 없어졌다는 기적 같은 소식을 들었다”며 “암 덩어리가 사라져서 기쁘지만, 이제 저에겐 약값이라는 높은 현실의 벽이 남았다. 이미 1년 넘게 타그리소를 먹느라 7000만원을 넘게 썼다. 앞으로 어떻게 약값을 마련해야 할지가 진짜 문제다. 약을 끊을 수도 없고 가족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는 것 같아 괴롭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폐암 환우회 사이트에는 타그리소 약값 부담을 호소하는 환자들도 많고, 방글라데시 제네릭을 구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애타게 애원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모두 타그리소 1차 치료 급여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라며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폐암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타그리소 1차 치료 급여 승인을 바라고 바란다”고 강조했다.
타그리소는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2016년 국내 출시 후 1년 만에 2차 치료제로 급여 등재를 받았다. 2018년 1차 치료제로 적응증이 확대됐으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급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첫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가 지난 1일 열렸지만 안건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허가 후 5년간 4번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고배를 마신 셈이다.
하지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타그리소 복용을 애타게 원하는 환자들의 급여화 요구가 위원회 회부 조건을 갖추면서 5번째 움직임의 귀추가 주목된다.
이외에도 국회를 향해 외치는 고가약 급여 촉구 목소리는 점점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달 중순인 지난 14일에는 대장암 표적치료제 ‘비라토비(엔코라페닙)’에 대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상정 및 급여화에 관한 청원과, ‘엔허투’의 허투 저발현 유방암 환자에 대한 적응증 확대를 촉구하는 청원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들 청원은 아직까지 동의 수 1만명에도 도달하지 못해 위원회 회부로 넘어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비라토비의 약평위 상정과 급여화를 촉구하는 청원인은 “유전자변이 BRAF 변이에 대한 유일한 표적 치료제 비라토비는 재발 또는 전이된 대장 및 직장 암에서 BRAF 환자의 유일한 표적 치료제로, 지난해 1월 우수한 임상 결과를 토대로 허가가 진행됐다”며 “하지만 국내 일부 대형병원을 통해 처방‧치료는 되고 있지만, 심사평가원의 약평위에서 상정되지 못해 현재는 비급여로 한달에 1200만원의 병원비가 발생하고 있다. 한 달에 1200만원 이상이 비급여로 발생하며, 1년이 넘도록 약평위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죽어가는 암 환자를 비롯한 국민을 위해 행정처리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또한 자신을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4기 환우의 아들이라고 소개한 또 다른 청원인은 “지난해 세계 최고 권위 암학회인 미국 ASCO에서 ‘엔허투’가 유방암 임상 치료에서 아주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고됐다. 이 연구가 발표되자 미국과 유럽은 승인을 통해 이 약을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우리나라도 허투 유방암 환자에게 이 약이 처방될 수 있게 승인됐다”며 “하지만 엔허투에 대한 우리나라 승인은 현재로선 반쪽짜리도 되지 않는다. 엔허투는 허투 유방암 환자뿐만 아니라 허투 저발현 유방암 환자에게도 똑같이 좋은 효과를 보였지만, 허투 저발현 적응증에 대한 승인이 늦어 전체 유방암 환자 중 65%는 이 약을 처방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신속한 적응증 확대를 촉구했다. 해당 청원 글은 지난 24일 기준 6000명이 조금 넘는 동의를 얻은 상태다.
한편 고가약 급여를 촉구하는 환자 단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정부도 이들의 요구를 쉽게 외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지난 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심평원 서울지원을 점거해 혈우병 치료제 ‘헴리브라(에미시주맙)’ 급여 적용을 촉구하는 농성을 벌였다. 전장연은 지난 7일 출근길 지하철 시위와 유사한 방식으로 건물 내 11개 엘리베이터 출입문에 휠체어를 한 대씩 정차해 농성을 벌였고, 이에 심평원이 엘리베이터 작동을 멈추자 “엘리베이터 작동 중지는 명백한 장애인 차별”이라고 맞섰다. 오전 9시에 시작된 농성은 오후 4시쯤 심평원이 “전장연의 의견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전한 후에야 마무리됐다. 결국 이틀 뒤인 9일 심평원 약평위에서는 헴리브라에 대한 급여기준 확대 안건이 통과됐다. 사실상 장애인단체의 물리적 행사가 건강보험 정책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환자단체의 선 넘는 실력 행사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은 지난 8일 전문기자협의회 간담회에서 전장연의 심평원 서울지원 농성에 대해 “무리한 물리적 행사에는 오히려 강경하게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