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제약기업들이 그들의 미래전략을 수정하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못된다.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R&D 투자비용을 필요로 하고 있는 데다 고유의 영역에 대한 경쟁사들의 잠식이 가속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컨설팅업체 우드 맥켄지社의 스튜어트 바우먼 애널리스트의 진단이다.
또 다른 한 소식통도 "중견 제약기업들이 메이저 메이커들의 공세를 감당치 못해 수세에 몰리고 있다"며 공감을 내비쳤다. 개발 후기단계에 있는 유망 후보신약들을 라이센싱 계약으로 확보하는 전략이 공룡업체들과의 경쟁에서 한계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볼륨 측면에서 볼 때 중견기업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가족경영(family-owned 또는 family-controlled) 제약기업들이 최근들어 '가문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심지어 지금과 같은 추세에 변화가 뒤따르지 못할 경우 그 이름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고개를 내밀고 있을 정도.
이에 따라 중견 제약기업들 사이의 합종연횡을 통한 자구책 모색에 나서는 사례가 눈에 띌 것이라는 예측에도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베른하르트 슈블레 가문이 전체 지분의 73%를 보유하고 있는 독일 머크 KGaA社의 경우 불확실한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고조되면서 지난 23일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유럽 최대의 바이오테크놀로지 메이커로 꼽히는 스위스 세로노社는 앞으로 그룹이 나아갈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달 초 골드만 삭스社와 손을 잡았다. 세로노측은 메이저리그 메이커에 회사를 넘기는 방안까지 검토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베르타렐리 가문이 설립했던 세로노는 신약 경쟁력을 배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아직까지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편.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세로노가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 등 틈새분야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노바티스社나 화이자社 등의 빅 메이커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빅 메이커들에게 크게 어필할만한 유망신약이 눈에 띄지 않는 탓에 세로노측이 볼륨확대를 위한 인수후보자를 찾아나설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알타나社(Altana)의 경우 제약사업 부문에 대한 파트너 물색에 적극 나서고 있는 케이스. 영국 컨설팅업체인 캠브리지 헬스케어&바이오테크社의 마틴 포슬 회장은 "머크와 알타나, 세로노 등은 지금까지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지속해 왔지만, 갈수록 글로벌화가 진전되고 있는 현실에서 미래에 대한 보장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족경영 체제로 유지되어 왔던 중견 제약기업들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기업들끼리 M&A를 추진하거나, 사업을 매각하는 등의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포슬 회장은 덧붙였다.
그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최근 영국의 셀텍社(Celltech)를 인수하고, 화학사업 부문을 분사시켜 바이오테크놀로지 제약 분야의 선도주자로 면모를 일신하기 시작한 벨기에 UCB SA社는 참조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알타나의 최대주주로 크반트 가문의 상속자인 수잔 클라텐은 파트너 찾기에 발벗고 나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머크 또한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5억 유로 정도를 투자해 알타나의 제약사업 부문 인수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문의 위기'에 빠져 있는 유럽의 중견제약사들이 자구책 모색을 통해 또 한번 '가문의 영광'을 창출할 수 있을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