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엔알리서치 “국내 CRO 매출 1조원 눈앞…다음 경쟁력은 AI·생산성·개발 파트너”
안병진 사장, 임상약리과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서 글로벌·데이터·AI 기반 CRO 경쟁력 제시
2024년 국내 소재 임상 CRO 71개사 매출 9835억원, 전년 대비 20.9% 증가
외국계 CRO 5827억원·국내 CRO 4008억원, 생산성 격차도 확인
AI 활용으로 인당 생산성 10~20% 향상 가능성 제시, 글로벌·데이터 통합이 과제
권혁진, 허지수 기자 │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10-01 06:00   수정 2026.10.01 06:01
씨엔알리서치 안병진 사장이 서울성모병원 임상약리과 개설 20주년 ‘AI 신약개발 규제과학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약업신문=권혁진 기자
씨엔알리서치 안병진 사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국내 임상시험수탁기관(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CRO) 시장이 1조원에 육박했지만, 외형 성장만으로 경쟁력을 설명하기는 어려워졌다. 제한된 내수 시장과 인력 중심 사업 구조 속에서 AI와 데이터 활용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단순 업무대행을 넘어 신약개발 전반을 지원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CRO를 활용하는 제약사와 바이오벤처의 요구도 달라지고 있다. 자체 임상개발 조직을 갖춘 제약사는 특정 기능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전문기관을 요구하는 반면, 임상개발 역량이 부족한 일부 바이오벤처는 개발 전략부터 규제 대응, 임상 운영까지 이끄는 개발 파트너를 찾고 있다.

씨엔알리서치 안병진 사장은 지난 30일 서울 강남구 엘리에나호텔에서 열린 ‘AI 신약개발 규제과학 학술심포지엄’에서 ‘국내 CRO산업의 현재와 미래 경쟁력’을 주제로 이 같은 변화를 짚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서울성모병원 임상약리과 개설 20주년을 맞아 마련됐다. 지난 20년의 성과를 돌아보고 AI 융합 신약개발과 규제과학의 향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안 사장은 “국내 CRO 시장이 약 1조원 규모까지 성장했지만 신약개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 이상 시장 자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는 쉽지 않다”며 “결국 지금과 같은 인력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같은 인력으로 더 많은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매출 1조원 육박…외국계 성장 두드러져”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 ‘2025년 임상시험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재 임상 CRO 71개사의 2024년 매출 합계는 9835억700만원으로 전년 8136억2100만원보다 20.9% 증가했다.

국내 CRO 47개사 매출은 4007억6600만원으로 전년 대비 3.8% 늘었다. 외국계 CRO 24개사는 5827억4100만원으로 36.3% 증가했다. 전체 매출에서 외국계가 차지한 비중은 약 59.3%다.

2024년 CRO 종사자는 총 7193명으로 집계됐다. 국내 기업이 3047명, 외국계가 4146명이었다. 연간 1인당 매출은 국내 CRO가 1억3200만원, 외국계 CRO가 1억4100만원으로 외국계가 약 7% 높았다.

해당 조사에서는 71개사 가운데 44개사가 응답했고, 나머지 27개사는 추정치를 적용했다. 세부 수치는 국내 CRO 산업의 전체 규모와 생산성 흐름을 파악하는 지표로 볼 필요가 있다.

제약사는 ‘기능 제공자’, 바이오벤처는 ‘개발 파트너’ 요구

CRO의 역할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안 사장은 국내 CRO 산업을 1990년대~2005년 태동기, 2005~2015년 성장기, 2015~2020년 전문화기, 2020년 이후 전략적 파트너 시대로 구분했다.

초기에는 임상시험 모니터링과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지원, 임상시험파일(TMF) 관리 등 운영 지원이 중심이었다. 이후 프로젝트 관리와 데이터 관리, 통계, 의학문서 작성(Medical Writing), 약물감시 등으로 업무 영역이 넓어졌다.

현재는 분산형 임상시험(DCT), AI 분석, 실사용데이터(Real-World Data)·실사용근거(Real-World Evidence), 전자 동의(eConsent)·전자 원자료(eSource), 글로벌 규제 컨설팅까지 CRO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

특히 의뢰자 유형에 따라 필요한 역량도 달라졌다. 안 사장은 “임상시험 수행 역량을 갖춘 제약사는 CRO를 더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능 제공자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임상개발 역량이 충분하지 않은 바이오벤처는 전략부터 실제 수행까지 이끌어주는 개발 파트너를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글로벌 CRO와 협업하거나 기술수출을 경험한 바이오벤처가 국내 CRO를 다시 찾으면서도 글로벌 수준의 품질과 서비스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비용 경쟁은 이어지는데 고객의 요구 수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CRO 경쟁력을 △품질(Quality) △시간(Time) △비용(Cost) △성공률(Success Rate) 네 가지 요소로 정리했다.

여기서 성공률은 CRO가 후보물질 자체의 효능을 높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임상 단계와 목적에 맞는 개발 전략과 프로토콜을 설계하고 환자 모집, 데이터 관리, 규제 대응 등을 효율화해 임상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패 위험을 줄이는 역량에 가깝다.

AI 네이티브 CRO, 인당 매출 1.58억원 시나리오

안 사장은 AI를 CRO 생산성 구조를 바꿀 핵심 수단으로 제시했다. 현재 국내 CRO의 생산성을 100으로 놓고 외국계 CRO 107, AI 도입 CRO 110, 업무 전반을 AI 중심으로 설계한 ‘AI 네이티브 CRO(AI Native CRO)’ 120으로 높아지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연간 1인당 매출도 현재 국내 CRO의 1억3200만원에서 외국계 수준인 1억4100만원, AI 도입 단계 1억4500만원, AI 네이티브 단계 1억5800만원까지 높일 수 있다고 봤다. 국내 CRO의 현재 수준과 비교하면 각각 약 10%, 20%의 생산성 향상을 가정한 수치다. 이는 실제 CRO에서 달성한 성과가 아니라 AI 활용 수준에 따른 생산성 향상 시나리오다.

AI 활용 영역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모니터링 보고서 초안 생성, 임상시험계획서(Protocol)와 연구자자료집(IB) 요약·번역, 전자 임상시험파일(eTMF) 자동화, 안전성 서술문(Safety Narrative) 요약 등이 대표적이다.

데이터 관리에서는 데이터 질의(Query) 자동 생성과 우선순위 제안, 질의 해결안 추천, 이상 데이터 탐지와 클리닝을 활용할 수 있다. 임상시험 기관 성과 분석, 위험 예측, 일정 지연 예측과 인력·자원 배분도 적용 가능 영역으로 꼽았다.

안 사장은 “AI가 들어온다고 특정 직무가 바로 없어지는 방향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임상시험은 규제기관의 기준을 의뢰자가 수용하고 CRO가 이를 실행하는 규제 산업이기 때문에 규제기관과 의뢰자, CRO가 함께 변화해야 실제 업무 형태도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 늘리지 않고 더 많은 임상 수행해야”

AI 확산은 CRO 인력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과거 기능별로 세분화했던 업무를 AI와 디지털 시스템이 연결하면서 여러 영역을 동시에 이해하고 수행하는 ‘하이브리드형 인력’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다.

안 사장은 “앞으로는 하나의 직무만 수행하는 방식보다 여러 직무의 역량을 함께 갖춘 형태로 인력이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CRO가 제한적인 내수 시장을 넘어 성장하려면 글로벌 시장 진출과 데이터 통합, 업무 자동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게 안 사장의 진단이다.

안 사장은 “여러 곳에 흩어진 데이터를 확보해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인력 숫자를 계속 늘리지 않더라도 더 많은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업무를 효율화하는 것이 앞으로 CRO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임상약리과가 개설 20주년 기념 행사 현장.©약업신문=권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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