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노인 인구의 복합 만성질환 관리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야심 차게 준비한 ‘일차의료 혁신시범사업’이 9월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분절적으로 방문하며 발생하는 전체 의료 이용 체계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동네 의원 중심의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건강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이번 사업의 핵심 목표다.
지난달 30일 보건복지부 강민구 지역필수공공의료실 지역의료정책과장은 전문기자협의회와의 간담회를 통해 이달 확정된 시범사업의 세부 운영 방안과 향후 중장기 계획을 상세히 설명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시범사업 방향을 첫 보고한 이후, 의료계 안팎의 의견을 수렴해 수가 모형 등을 수정한 뒤 올해 6월 재보고를 거쳐 사업 모델을 확정했다. 이어 7월 진행된 참여기관 공모는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의료 현장의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단독모형은 9대 1, 협력모형은 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복지부는 기본 요건과 이행계획서, 유사 사업 참여 여부 등을 고려해 1차적으로 3배수를 선별한 뒤, 심사위원회를 꾸려 시범사업 이해도, 수행계획 타당성, 다학제 팀 구성 및 운영 계획, 시도별 분포 등을 엄격히 평가했다.
그 결과 9월 초 단독모형 20개 의원, 협력모형 100개 의원 등 총 120개 의원이 최종 선정됐다. 내과나 가정의학과 등 특정 진료과에 국한하지 않고 개방했으며, 높은 경쟁률을 토대로 향후 매년 추가 공모를 통해 규모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이번 사업의 첫 번째 방점은 '주치의' 개념의 도입이다. 다만 자유로운 의료 이용에 익숙한 국내 실정을 고려해 환자에게 강제성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주치의는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관리를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하며, 서비스 질 유지를 위해 의료기관 당 환자 등록 수는 1000명으로 제한했다. 이는 기존 1차 의료 만성질환관리(만관제) 사업이 기관당 평균 200~300명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 대상 질환과 관리 범위가 대폭 확대된 것이다.
이번 시범사업에서 가장 파격적인 시도는 단연 '통합수가'의 적용이다.
강민구 과장은 "기존 행위별 수가로는 예방과 관리를 아우르는 주치의 사업 참여를 유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환자 그룹당 포괄적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환자 분류는 미국에서 널리 활용되는 환자상태 기반 지불 모형인 'HCC(Hierarchical Condition Categories)' 모델을 차용했다. 환자의 성별, 연령, 현재 보유한 진단명 등을 종합해 1년간 예상되는 의료비 소요액을 통계적으로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환자를 4개 분위로 나누어 연간 정해진 보상액을 지급하는 구조다.
당초 의료기관들이 재정적 리스크를 우려해 통합수가제 선택을 기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이에 복지부는 통합수가를 선택하는 기관에 '일차의료 서비스 보상 30% 가산'이라는 강력한 유인책을 제시했다. 그 결과 전체 120개 의원 중 55개 의원(단독모형은 20개 중 11개)이 통합수가를 선택하며 새로운 지불제도에 대한 개원가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통합수가를 선택하더라도 청구는 기존처럼 행위별로 입력하도록 안내하여 의료 이용량 변화를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시범사업 도중 환자의 주치의가 변경될 경우에는 해당 의사의 활동 기간에 비례해 비용이 분할 지급된다.
세 번째 핵심은 '맨파워'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동네 의원의 1인 원장 체제로는 주치의로서 환자의 영양, 운동, 복약 상황까지 모두 챙기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팀 기반 진료(다학제 팀)'를 지향한다.
의원 자체적으로 다학제 팀을 구현하는 '단독 모형'에는 연간 3000만원의 운영지원 보상이 지급되며, 평균 10개의 의원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협력 모형'의 경우 다학제 팀을 꾸리는 거점 지원 기관에 연간 1억 5000만원이 지원된다. 연간 총 소요 재정은 약 250억원으로 추산되며, 사업 진행 과정에서 건강보험 재정 절감 효과도 함께 검증할 예정이다.
한편, 다학제 팀 내 '약사 배제'와 관련해 강 과장은 현실적인 이유를 들었다. 병원급과 달리 동네 의원 내에 약사가 상주하는 모델은 사실상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시범사업 지침상 환자의 약물 관리는 일차적으로 주치의가 처방 전반을 살피며 중복 및 상호작용 위험을 통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의사 1인이 복합 만성질환자의 모든 복약 관리를 전담할 여력이 부족한 만큼, 지역 내 시행 중인 '다제약물 관리 사업' 네트워크에 연계하여 약물 관리를 의뢰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강 과장은 "약물 관리는 진료실 안에서 의사가 해야 할 역할과 약사가 해줘야 할 역할이 어우러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향후 성과 지표가 고도화되어 실제 환자의 투약 개수 감소 등을 엄격히 평가하게 될 때, 지역 약국 네트워크와의 연계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지표를 설계할 여지는 열려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이번 시범사업을 3년간 운영하며 성과보상 지표를 고도화하고, 바람직한 유인 구조를 설계한 뒤 본격적인 제도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기존 만관제나 장애인 건강 주치의 사업과의 중복 참여를 원천 제한해 사업 간 혼선을 방지한 가운데, 장기적으로는 파편화된 다양한 주치의 연관 사업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밑그림도 그리고 있다.
분절적 의료 이용이 당연시되던 대한민국 의료 생태계에 던져진 일차의료 혁신시범사업이라는 승부수가 과연 지역사회 중심의 만성질환 관리 백년지대계를 세울 수 있을지, 보건의료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01 | 난소암 신약시장, ADC 중심 재편...오레고보... |
| 02 | “체중‧혈당 관리 간접비교서 ‘파운다요’ 판... |
| 03 | "동네 단골의사가 내 주치의로”…복지부, 일... |
| 04 | 충북창경센터, '하반기 바이오 창업 아카데... |
| 05 | 비만약 경쟁 ‘GLP-1 이후’로…로슈, 아밀린 ... |
| 06 | 씨엔알리서치 “국내 CRO 매출 1조원 눈앞…다... |
| 07 | [기고]병원물류 표준화 ③ '병원 품목정보 표... |
| 08 | 기후변화, 피부질환 발생률‧중증도에 심대한... |
| 09 | 반플리타·민쥬비·셈블릭스 암질심 통과…CAR-... |
| 10 | 비대면 플랫폼서 '병원 수령' 마운자로 가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