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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GLP-1 계열 비만·당뇨병 치료제 사용 이후 시력을 잃었다는 환자들의 소송이 확대되면서 약물과 시신경 손상 사이의 연관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의약품청(EMA)이 세마글루타이드의 매우 드문 이상반응으로 비동맥염성 전방허혈성 시신경병증(NAION)을 인정한 가운데, 미국 성인 121만여 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 처방에 따른 위험 증가가 확인되지 않아 의학적 근거와 규제기관의 판단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특히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 처방군의 NAION 진단 오즈가 다른 계열 치료제 처방군보다 유의하게 낮았으며, 과체중·비만 환자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해당 연구는 의료 청구자료를 활용한 관찰연구로, 약물의 안전성을 확정하거나 기존 연구에서 보고된 위험을 배제하는 근거로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에서는 환자들이 제약사의 위험 경고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고, 유럽에서는 제품 정보에 관련 경고를 반영하는 등 규제 대응이 진행되고 있다. GLP-1 치료제의 사용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NAION 발생 위험을 어떻게 평가하고 환자에게 전달할 것인지가 새로운 안전성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서 시력 상실 소송 확대…약물 인과관계·경고 의무 쟁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시간) 오젬픽과 위고비, 젭바운드 등 GLP-1 계열 치료제를 사용한 뒤 NAION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환자들이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환자들은 치료제 사용 이후 갑작스러운 시력 손상을 경험했으며, 제약사가 관련 위험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노보는 소송의 근거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으며, 일라이 릴리 역시 의약품 안전성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약물과 개별 환자의 시력 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법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관련 소송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동부연방지방법원에서 다지역소송(Multidistrict Litigation, MDL) 3163으로 통합 심리되고 있다. 미국 다지역소송 심리위원회(JPML)는 2025년 12월 15일 NAION 관련 제조물책임 소송을 통합하도록 결정했다.
MDL은 공통된 사실관계와 법적 쟁점이 있는 개별 소송을 한 법원에서 함께 심리하는 절차다. 일반적인 집단소송과는 구분되며, 개별 환자의 피해와 손해배상 문제는 별도로 다뤄질 수 있다.
소송 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 사법부의 월별 다지역소송 현황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NAION 관련 통합소송의 계류 사건은 2026년 6월 1일 110건에서 9월 1일 216건으로 늘었다. 다만 해당 수치는 계류 중인 사건 수로, 의학적으로 약물과의 인과관계가 확인된 환자 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소송에서 문제가 된 NAION은 시신경 앞부분으로 공급되는 혈류가 부족해 시신경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갑작스럽고 통증이 없는 시력 저하나 시야 결손이 나타나며, 한쪽 눈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발생 기전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뇨병과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관상동맥질환, 수면무호흡증 등이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신경 유두의 해부학적 특성도 질환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GLP-1 치료제와 NAION의 연관성을 평가할 때 중요한 변수다. GLP-1 치료제를 사용하는 환자 상당수가 당뇨병이나 비만, 심혈관계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약물 투여 이후 NAION이 발생하더라도 약물 자체의 영향인지, 기존 질환과 환자의 특성에 따른 것인지 구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121만 명 연구서 위험 증가 확인 안 돼…EMA는 이상반응 인정
GLP-1 치료제와 NAION의 연관성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미국 군 보건체계의 대규모 실제 진료자료를 분석한 연구는 기존 일부 연구와 다른 결과를 제시했다.
미국 군의관대학과 월터리드 국립군의료센터 등의 연구진이 참여한 연구는 국제학술지 ‘Military Medicine’에 온라인으로 선공개된 뒤 2026년 5~6월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2017년 12월부터 2023년 9월까지 미국 군 보건체계에서 진료받은 18세 이상 성인 121만2775명의 의료 청구자료를 분석했다. 연구 대상은 제2형 당뇨병 환자 97만3529명과 과체중·비만 환자 23만9246명으로 구분됐으며, 전체 대상자에서 NAION 진단은 2447건 확인됐다.
연구진은 세마글루타이드 처방군과 비GLP-1 수용체 작용제 처방군을 비교하고, 연령과 성별, 인종 및 동반질환 등을 고려해 NAION 진단 가능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제2형 당뇨병 환자 가운데 세마글루타이드 처방군 8만7846명에서는 NAION 진단이 68건 확인됐다. 진단 비율은 약 0.08%였다. 반면 다른 계열 당뇨병 치료제 처방군 88만5683명에서는 2274건이 확인돼 진단 비율이 약 0.26%로 나타났다.
동반질환 등을 보정한 분석에서도 세마글루타이드 처방군의 NAION 진단 오즈는 비교군보다 유의하게 낮았다. 보정 오즈비는 0.36이었으며, 95% 신뢰구간은 0.25~0.51이었다.
이는 분석에 포함된 환자들의 특성을 통계적으로 보정한 뒤에도 세마글루타이드 처방과 NAION 진단 사이에 음의 연관성이 관찰됐다는 의미다. 다만 약물 자체가 NAION을 예방한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한 결과는 아니다.
과체중·비만 환자군에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세마글루타이드 처방군 1만7526명에서는 NAION 진단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다른 계열 치료제 처방군 22만1720명에서는 105건이 확인됐다.
그러나 보정 오즈비는 0.10, 95% 신뢰구간은 0.01~1.35로 나타나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진단 사례가 매우 적어 추정치의 불확실성이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연구에서 과체중·비만 환자의 세마글루타이드 처방군에서 NAION 진단이 0건이었다는 사실을 해당 환자군에서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는 없다.
연구진은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 세마글루타이드 처방군의 NAION 진단 가능성이 더 낮았으며, 과체중·비만 환자에서는 유의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아울러 이번 결과는 NAION 위험만을 이유로 세마글루타이드 사용을 일률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연구에서 서로 다른 결과가 보고됐기 때문이다.
2024년 JAMA Ophthalmology에 발표된 Hathaway 등의 연구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를 처방받은 환자에서 NAION 위험이 증가하는 연관성이 관찰됐다. 덴마크의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Grauslund 등의 연구에서도 위험 증가가 보고됐다.
반면 2025년 Ophthalmology에 발표된 Chou 등의 다국가 실제 진료자료 연구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 사용과 NAION 사이의 유의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미국 군 보건체계 연구 역시 위험 증가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가 연구 대상과 설계의 차이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Hathaway 등의 연구는 전문 신경안과 진료기관에 의뢰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돼 환자 선택에 따른 편향 가능성이 있다. 덴마크 연구의 경우 세마글루타이드 처방군과 비교군 사이에 일부 위험요인의 분포가 달랐으며, 연구에 사용된 진단코드가 동맥염성 허혈성 시신경병증까지 포함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번 연구 역시 의료 청구자료를 활용했기 때문에 진단코드의 정확성을 개별 의무기록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며, 처방된 약물이 실제로 투여됐는지도 검증하지 못했다.
또한 당뇨병과 고혈압 등 동반질환의 중증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세마글루타이드 투여 시작 시점과 NAION 발생 사이의 시간적 관계도 평가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결과만으로 세마글루타이드의 NAION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연구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EMA는 세마글루타이드의 NAION 위험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마쳤다.
EMA 산하 약물감시위해평가위원회(PRAC)는 2025년 6월 비임상시험과 임상시험, 시판 후 안전성 자료 및 의학 문헌 등을 검토한 뒤 세마글루타이드와 NAION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오젬픽과 위고비, 리벨서스 등 세마글루타이드 성분 의약품의 제품 정보에 NAION을 매우 드문 이상반응으로 추가하도록 권고했다.
EMA에 따르면, 일부 대규모 역학연구에서는 제2형 당뇨병 성인의 세마글루타이드 사용과 NAION 발생 위험 사이에 약 2배의 증가가 관찰됐다. 이를 절대위험으로 환산하면 세마글루타이드 치료 1만 환자년당 약 1건의 추가 발생에 해당한다.
EMA는 세마글루타이드 치료 중 갑작스러운 시력 상실이나 급격한 시력 악화가 나타나면 지체 없이 의료진에게 연락하도록 권고했다. NAION이 확인된 경우에는 세마글루타이드 치료를 중단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FDA가 GLP-1 치료제와 NAION 사이의 잠재적 연관성을 평가하고 있다. WSJ의 9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FDA는 당시 미국 제품 정보에 NAION 경고를 추가하도록 의무화하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 유럽과 영국, 일본, 호주 등에서는 관련 경고를 도입하는 등 규제 대응에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다만 EMA의 판단과 이번 대규모 연구는 모두 세마글루타이드에 관한 것이다. 미국 소송에는 티르제파타이드 등 다른 성분도 포함돼 있지만, 세마글루타이드 연구 결과를 모든 GLP-1 계열 치료제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다.
현재까지의 근거는 세마글루타이드와 NAION의 안전성 관련성을 뒷받침하는 연구와 위험 증가를 확인하지 못한 연구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MA는 여러 근거를 종합해 매우 드문 이상반응으로 판단했지만, 개별 환자에게 발생한 시력 손상의 원인을 특정하는 문제와는 구분된다.
향후 미국 소송과 FDA의 안전성 평가 결과, 혈당 조절 수준과 치료 기간 등을 고려한 추가 연구가 GLP-1 치료제의 NAION 위험을 보다 구체적으로 판단하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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