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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법률사무소 리오 이일형 대표 변호사(ihlee@riolaw.co.kr)
1. 우리나라 건강보험 약가제도 구조
우리나라 건강보험 약가제도는 2006년 선별등재 방식(Positive List System)으로 전환을 기점으로 현재의 틀을 갖추었다. 이 제도 하에서 의약품이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오르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급여 적정성 평가를 통과한 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과 약가 협상을 거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심의·의결을 받아야 한다. 이때 약가 결정 기준으로는 임상적·경제적 기준이 복합적으로 활용된다.
등재 이후에도 약가는 복수의 자동 조정 장치 적용을 받는다. 사용량-약가 연동제는 실제 사용량이 예상치를 초과할 경우 약가를 자동 인하하는 구조이며, 위험분담제(RSA)는 고가 혁신 신약 급여 등재를 가능하게 하면서도 재정 위험을 분산하는 보완 장치로 운용된다. 구 제도에서 제네릭 의약품 약가 산정률은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였다.
2. 2026년 약가제도 개편안의 주요 내용
보건복지부는 2026년 3월 26일 건정심을 열어 14년 만의 전면적인 건강보험 약가제도 개편안을 의결했다(보건복지부 2026. 3. 26.자 "환자 신약 보장성 높이고 제약 혁신은 촉진…약가제도 개편안 의결" 정책 브리핑 참조). 이번 개편의 핵심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제네릭 약가 산정률이 기존 53.55%에서 45%로 대폭 인하된다. 계단식 인하 기전도 기존 20번째 이후 제네릭에서 13번째로 앞당겨져, 다품목 등재 억제가 한층 강화된다.
둘째, 기등재 의약품에 대해서도 2026년 하반기부터 2036년까지 10년에 걸쳐 단계적 인하가 추진된다. 이미 유통 중인 의약품에까지 새로운 약가 기준을 사실상 소급 적용한다는 점에서, 산업계에 미치는 충격이 특히 크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신속 등재 제도가 도입된다. 등재 기간을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함으로써, 고가 혁신 신약의 급여권 진입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넷째, 기업 유형별 우대 제도가 신설된다. 혁신형 제약기업에는 기등재 약가 인하 시 특특례가 부여되고(60% 약가 가산 최대 4년 보장, 사용량-약가 조정 시 인하율 감면비율 30%→50% 상향), 신규 도입되는 '준혁신형 제약기업'(R&D 매출 비중이 매출액 1,000억 원 이상인 기업 경우 5% 이상, 1,000억 원 미만인 기업의경우 7% 이상인 중소제약사로, 요건 충족 기업 중 정부가 최종 지정)과 '수급안정 선도기업'에도 약가 우대 혜택이 주어진다.
3. 과거 약가인하 사례와 시사점
우리나라 약가정책 전환점들은 단기적 재정 절감을 낳는 대신 산업 구조의 큰 변화를 수반해 왔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2012년 4월 단행된 '일괄 약가인하'다. 당시 정부는 제네릭 약가를 대거 삭감하며 연간 1조 원 이상 보험재정 절감을 공언했다. 그러나 이후 연구들은 그 부작용을 실증하고 있다.
최윤정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분석에 따르면, 2012년 약가인하 단행 이후 관련 의약품 매출이 2013년에 34%, 그리고 2019년까지는 26~51.2% 감소세가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학회의 2025년 연구 역시 주목할 만한 결과를 제시한다. 약가인하 정책에 노출된 기업은 미노출 기업에 비해 상대적 매출 성장 둔화를 경험했으며, 약가인하 대상이 아닌 비급여 의약품 생산 비중을 상대적으로 증가시키는 행태 변화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이러한 기업의 생산구성 변화로 인해 정책이 의도했던 소비자 약제비 절감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건강보험 재정 절감 효과도 오히려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분석들은 2026년 전면 개편이 '2012년 충격의 데자뷔'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의 근거가 된다.
4. 법적 쟁점과 실무 대응 방향
2026년 개편안은 건강보험 재정 절감과 신약 접근성 확대라는 정책적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법적 관점에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헌법적 쟁점으로는 헌법 제37조 제2항이 규정하는 '침해의 최소성' 원칙 위반 가능성이 있다.
또 이번 개편안은 기업의 재산권(제23조) 및 직업 수행의 자유(제15조)를 본질적으로 침해할 소지가 있다. 행정법적으로는 재량권 일탈·남용 가능성과 함께, 기등재 의약품에 대한 사실상 소급적 약가 인하가 행정법상 신뢰보호 원칙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
산업계의 피해 추산도 심각하다. 제약 5개 단체는 이번 개편으로 연간 최대 3조 6,000억 원의 산업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하며, 약 1만 5,000명의 고용 위기와 필수의약품 공급 차질, 나아가 국내 제네릭 기반 붕괴로 인한 외자사 시장 잠식이라는 '제약주권 상실'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약회사가 취할 수 있는 실무적 대응 방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취득 또는 갱신이 가장 현실적인 방어 수단이다. 기등재 약가 인하 시 특례가 부여되는 만큼, 해당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이라면 인증 유지에 최우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퇴장방지의약품·필수의약품 체계 편입 및 국산 원료 직접생산 강화를 통한 약가 우대 혜택 확보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제네릭 의존 포트폴리오를 혁신신약·개량신약·바이오시밀러 중심으로 재편하고 R&D 투자 비중을 높여야 한다.
법적 측면에서는 개별 품목 약가 인하 고시에 대한 행정소송, 나아가 제도 자체의 헌법 합치성을 다투는 헌법소원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2012년 제기됐던 약가인하 처분 관련 소송에서 제약회사들이 대거 패소한 선례가 있는 만큼, 실제 소 제기 이전에는 반드시 면밀한 법적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기고자는 변호사이자 약사로서 이번 개편안을 지켜보며, 단순한 재정 절감 논리만으로 제약 산업의 구조적 기반을 흔드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깊이 염려하고 있다. 이번 글이 제약업계 실무자 여러분께 정책 대응의 방향을 정립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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