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제네릭 연명' 끝내고 '혁신 생존' 시험대 오른다
수요 예측 고도화 및 R&D AI 도입… 전사적 '비용 다이어트' 시급
확대된 '약가유연계약제' 적극 활용해야… 오픈 이노베이션·M&A로 돌파구 마련
딜로이트 "산업 양극화 심화… 포트폴리오 재편 및 사업 다각화 시급"
김홍식 기자 kimhs423@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5-26 06:00   수정 2026.05.26 06:01
 그래픽©약업신문=김홍식 기자

최대 3조 6,000억 원의 매출 증발이 우려되는 역대급 '약가 한파'가 제약업계를 덮쳤다. 14년 만에 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5%로 삭감하는 초강수 개편안이 확정되면서, 국내 제약산업의 오랜 제네릭 연명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딜로이트 인사이트’에 따르면, 제약사들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비급여 시장 확대와 신약 R&D 중심의 사업 다각화를 이뤄내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벼랑 끝 생존 경쟁에 직면했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 최근 발간한 '약가 제도 개편과 제약산업 대응 전략'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번 개편안의 파장과 기업의 생존 전략을 짚어봤다.

정부가 대대적인 제도 개편에 나선 핵심 배경에는 건강보험 재정의 심각한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약품 청구액은 2011년 5.2조 원에서 2024년 14.0조 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이다.

또한 기형적인 국내 제약 시장 구조도 도마 위에 올랐다. 캐나다 약가검토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의 제네릭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간값 대비 약 2.17배 높은 수준이다. 높은 약가가 보장되다 보니 제약사들은 험난한 신약 개발 대신 동일 성분의 제네릭 출시에만 매달렸고, 이는 국가 전반의 신약 개발 유인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혁신 치료제의 환자 접근성 지연과 필수 의약품 수급 불안정 역시 고질적인 문제였다. 한국은 신약 허가 후 건강보험 적용까지 최장 18개월이 소요돼 일본(3개월), 프랑스(15개월)에 비해 환자 접근성이 크게 떨어졌다. 반면, 채산성 악화 등을 이유로 2021년부터 2024년 3월까지 총 79개의 퇴장방지의약품 생산이 중단되는 등 공급망 위기도 지속해서 발생했다.

이번 약가 제도 개편안은 크게 ▲약가 관리 체계 개편 ▲신약 개발 생태계 조성 ▲수급안정 의약품 안정적 공급체계 마련 등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가장 파장이 큰 대목은 약가 산정률의 하향 조정이다. 기존에는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로 산정되던 제네릭 및 특허만료 의약품 약가가 개편 이후 45%로 조정된다. 시장에 늦게 진입할수록 약가를 깎는 '계단식 인하' 기준도 대폭 강화되어, 기존 20번째 제네릭부터 적용되던 룰이 13번째 제네릭부터로 앞당겨진다. 사실상 제네릭 난립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반면,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당근'도 마련했다. 2026년부터 희귀질환 치료제 등재 기간이 최장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된다. 

또한 '혁신형 제약기업'에는 최대 4년간 약가를 60% 우대 가산해주며, 새롭게 신설되는 '준혁신형 제약기업'에게도 50%의 약가 가산을 부여해 기업의 R&D 투자를 독려한다.

수익성이 낮아 생산을 기피하는 필수의약품에 대해서는 10년 이상 최대 68% 수준의 약가 우대를 적용하여 장기적인 공급 안정성을 도모할 계획이다.

단기적으로 제약업계는 혹독한 보릿고개를 겪을 전망이다.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현 제약바이오 혁신협의체)는 이번 조치로 인해 업계 전체에 최대 3조 6,000억 원의 매출 손실과 1만 4,800명의 실직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산업 내 '양극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 급여 의약품 비중이 높고 R&D 역량이 부족한 중소형 제네릭 제약사들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반면,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가산을 받거나 이미 비급여 시장 및 해외 진출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 대형 제약사들은 오히려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벌릴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제약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투트랙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보고서를 통해 "비용 구조 효율화와 성장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는 이중 대응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우선, 공정 효율화와 저수익 품목(SKU)의 과감한 정리를 통해 영업이익률을 방어해야 한다. R&D 과정에서는 인공지능(AI)을 적극 활용해 시간과 비용을 단축하는 방안이 필수적이다.

성장 측면에서는 독자 생존을 고집하기보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외부 기술 도입으로 R&D 효율성을 높이고, 중소 제약사와의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2026년 약가 제도 개편은 한국 제약산업이 오랜 기간 안주해 온 '양적 경쟁'에서 '질적 경쟁'으로 탈바꿈하는 결정적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혁신 역량과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하는 기업만이 새로운 생태계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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