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뷰파인더 너머의 심상을 향으로 빚어내다
TADA PARFUMEUR 창립자 타다 아차웡(Tada Archawong)
김유진 기자 pick@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4-23 05:00   수정 2026.04.23 05:37

태국 니치 향수 브랜드 '타다 퍼퓨미에르(TADA PARFUMEUR)' 창립자 타다 아차웡(Tada Archawong)이 방한했다. 서울 용산구  KCS서울에서 지난 13일 열린 KFFS(K향수와 뷰티 조향사들) 정기 세미나 현장.  KFFS 소속 국내 향수 업계 관계자들과 마주 앉은 그는 글로벌 시장 공략법과 자신만의 조향 철학을 꺼냈다.

"6~10년 전엔 이런 행사에 5명이나 올까 싶었습니다." 한국 향수 커뮤니티의 폭발적인 성장을 체감한 그의 첫 마디였다. 객석을 메운 수십 명의 젊은 조향사들과 브랜드 마케터들이 그의 말에 귀를 세웠다.

글로벌 니치 향수 시장은 전통적으로 프랑스와 유럽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그는 이 견고한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타다 퍼퓨미에르는 현재 미국 럭키센트(Luckyscent)와 샌프란시스코 ZGO 퍼퓨머리 등 주요 하이엔드 편집숍에 입점했다. 브랜드 론칭 불과 1년 반 만에 달성한 성과다. 마케팅 예산을 쏟아부은 결과가 아니다. 철저히 입소문만 탔다. ‘태국 출신 독학파 조향사’라는 그의 이력에 주목하는 이유다.

▲타다 퍼퓨미에르 창립자 타다 아차웡(Tada Archawong) ⓒ화장품신문 김유진 기자

타다 아차웡은 과거 촬영감독(Cinematographer)으로 일했다. 이 경험은 향을 다루는 방식에 그대로 묻어난다. 그는 자신의 조향 과정을 사진의 아웃포커싱(Out-focusing) 기법에 빗댔다.

"카메라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상 하나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날려버립니다. 조향도 똑같아요. 중심 초점(focal point)만 남깁니다.“

모든 재료를 돋보이게 하려는 과욕을 버렸다. 뚜렷한 한 장면에서 출발해 중심을 잡고, 나머지 요소는 배경으로 부드럽게 흐리게 둔다. 향료를 섞기 전, 머릿속에 구체적인 세트장부터 짓는다. 조명과 소품의 위치까지 상상한 뒤 버릴 향과 살릴 향을 냉정하게 선별한다. 향수 보틀에 그려진 일러스트가 그 결과물이다. 향을 맡는 순간 이미지가 직관적으로 꽂힌다. 시각을 덜어내고, 향으로 바꿨다. 

그는 정규 조향 교육은 받은 적이 없다. 완전한 독학이다. 정통파 조향사들 사이에서 그는 룰을 깨는 이단아로 불리곤 한다. 

"기존 틀을 살짝 벗어날 때 독특한 캐릭터가 나옵니다. 익숙한데 낯선 매력이죠. 단, 깨선 안 될 룰부터 완벽히 알아야 합니다."

파격만 좇는 건 위험하다. 향수는 궁극적으로 사람 피부에 직접 닿는 화학물질이다. 그는 안전성을 최우선에 둔다. IFRA(국제향료협회) 원료 사용 제한 수치를 지독하게 파고든다. 규제와 기술적 한계 안에서만 변주를 준다. 파격 이면의 기본기다.

 

 ‘사케와 말차’, 미각과 후각의 테이스팅 미학

서구권 소비자들이 타다 퍼퓨미에르에 반응한 지점은 원료다. 말차, 사케, 보바 티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평범한 오리엔탈리즘을 피하고 철저한 하이퍼 리얼리즘을 택했다.

말차 향수 '교쿠로(Gyokuro)'가 대표적이다. "진짜 말차 향수가 시중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1년 반 동안 포뮬러 수정에만 매달렸습니다." 원료 배합 비율만 수백 번 엎었다. 찻잎 고유의 미세한 씁쓸함을 잡기 위한 치열한 과정이었다.

일본 사케를 풀어낸 '에미시키 센세이션(Emishiki Sensation)' 작업은 더 가혹했다. 사케는 알코올 특유의 찌르는 향이나 우디함이 없다. 과일과 꽃향기 경계 어딘가를 맴돈다. 참고할 레퍼런스도 없었다. 결국 매일 사케를 마시며 조향을 반복했다. 셰프의 테이스팅 과정과 같다. 목 넘김 직후 코끝에 남는 모호한 잔향을 찾으려 수십 종의 과일과 플로럴 노트를 분해하고 재조립했다. 미각과 후각을 오가며 어떤 원료가 사케의 단면을 끌어낼 수 있을지 맞췄다. 지루한 반복 작업이었다.

▲ 서울 용산구  KCS 서울 세미나실에서  지난 13일 열린 KFFS 세미나에서 국내 향수 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발표하고 있는 타다 아차웡. ⓒ화장품신문 김유진 기자

신곡(神曲)과 태국산 오드의 환생

보이지 않는 감정도 향으로 빚어낸다. 외신은 그의 향에서 '슬픔과 사색 속의 위안'을 읽어냈다. 단테의 '신곡(Divine Comedy)'을 모티브로 한 시리즈가 중심에 있다.

핵심 원료는 태국산 오드(Thai Oud)다. 오드는 산지와 추출법에 따라 향이 극명하게 튀는 값비싼 재료다. 타다는 현지 농장 여러 곳을 직접 돌며 재배 방식에 따른 향의 편차를 일일이 데이터로 구축했다. 

"깨끗한 오드는 '천국(Paradiso)'에 썼습니다. 반면 모터 오일처럼 끈적이고 짐승 냄새가 나는 오드는 '지옥(Inferno)' 라인에 배치했죠.“

감정 표현에는 직관적인 원료를 매칭한다. 슬픔은 중국산 시더우드(Chinese Cedarwood)의 스모키함으로 푼다. 살아있는 생동감은 아이리스(Iris)의 몫이다. 

"왜 슬픈가. 그 안에 작은 온기는 없는가." 조향할 때 그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감정이 발현되는 순간의 온도와 습도까지 고려해 노트를 짠다. 향을 공식으로 짜맞추지 않는다. 철저히 감정 단위로 쪼갠다. 그는 그렇게 향을 만든다.
 

▲타다 퍼퓨미에르의 '신곡(Divine Comedy)' 컬렉션. (왼쪽부터) 인페르노, 푸르가토리오, 파라디소. 

“본질은 브랜드 CI, 때를 기다려라”

글로벌 팬덤 구축에 천문학적인 마케팅 예산은 쓰지 않았다. 유기적인 성장(Organic Growth). 그게 전부다. 그는 해외로 돌아가 브랜드를 추천해 준 이름 모를 고객들에게 공을 돌렸다. 현재는 미국을 넘어 북유럽 등 다양한 국가의 유통사로부터 입점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한국 향수 업계에 조언도 남겼다. 향의 품질은 이미 기본값이 됐다. 담담하지만 묵직한 그의 어조에 객석 곳곳에서 펜을 든 손이 바빠졌다. 

"향을 잘 만드는 건 파인 다이닝의 첫 문을 여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진짜 승부는 브랜드 창립 이념과 CI에 있어요.“

공간을 채우고 뼈대를 세우는 건 결국 스스로의 몫이다. 그는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조향의 과정 자체를 즐기라고 강조했다. 

"버티다 보면 반드시 당신의 때가 옵니다(Be patient until your day comes)." 타다 아차웡이 현장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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