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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개발에서 비임상 데이터는 단순히 ‘좋은 결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실제 환자에게 투여하기 전, 약물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초기 신호를 확인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에이비엘바이오와 미국 자회사 네옥 바이오(NEOK Bio) 이중항체 ADC ‘ABL209(NEOK002)’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효능이 확인됐다는 점을 넘어, 기존 치료제 한계를 보완하려는 설계 방향이 데이터로 제시됐다.
EGFR ‘독성 한계’ 이중 타깃 설계로 정면 돌파
에이비엘바이오는 AACR 2026 기간 중 공개되는 미국암학회(AACR) 발행 암 치료 분야 국제 학술지 ‘몰레큘러 캔서 테라퓨틱스(Molecular Cancer Therapeutics)’에 ABL209의 비임상 연구 결과를 20일 게재했다.
기존 단일항체 ADC(항체-약물 접합체)가 가진 태생적 한계를 이중항체 기반 구조로 극복한 성과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ABL209는 EGFR과 MUC1을 동시에 표적하는 이중항체에 토포이소머레이스 I 저해제(TOP1 inhibitor)를 결합한 이중항체 ADC다. EGFR은 강력한 항암 표적이지만 정상 조직에도 발현돼 독성 부담이 크고, MUC1은 다양한 암에서 발현되지만 발현의 이질성과 혈중으로 떨어져 나가는 특성(shedding)으로 인해 단일 표적 접근 시 효능이 제한되는 한계가 있다.
특히 EGFR은 이미 검증된 항암 표적이나, 동시에 가장 다루기 어려운 타깃이기도 하다. 효과는 분명하지만 피부와 장 점막 독성 때문에 용량을 충분히 올리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반복돼 왔다.
ABL209는 이러한 한계를 설계로 접근했다. 두 타깃이 동시에 발현된 종양에서는 결합력을 높이고, 단일 표적만 존재하는 정상 조직에서는 상대적으로 결합을 낮추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조건이 맞는 종양에서 더 강하게 작동하도록 설계됐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접근은 ADC 개발에서 핵심인 ‘효능과 독성의 균형’, 즉 치료역 확보와 직결된다. 효과를 높이면 독성이 증가하고, 독성을 낮추면 효과가 떨어지는 구조적 한계를 넘기 위한 시도다.
ADC 개발 경쟁 중심이 타깃에서 설계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수원 아주대학교 약학대학에서 열린 ‘PharmaVision–IntegraPharma’ 세미나에 연사로 나선 한 신약개발 전문가는 “최근 항암제 개발은 구조 설계 경쟁이 핵심으로 부상했다”며 “과거에는 타깃을 먼저 확보한 기업이 우위를 점했지만, 지금은 설계 역량에 따라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PDX 78% 종양 퇴행·저용량 완전 반응…설계 효과 입증
공개된 논문에 따르면, ABL209는 췌장암, 폐암, 식도암, 대장암, 두경부암, 방광암 등 6개 암종에 걸친 36개의 환자유래종양모델(PDX)에서 평가됐다. 그 결과, 28개 모델에서 종양 퇴행이 관찰돼 약 78%의 퇴행 반응률을 보였고, 나머지 모델에서도 종양 성장 억제율(TGI) 70% 이상을 기록했다.
PDX 모델은 실제 환자의 종양 조직을 이식해 만든 모델로, 일반 세포주 기반 모델보다 임상 환경을 더 잘 반영한다. 다양한 종양 조건에서 일관된 반응이 나타났다는 점은 임상 진입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연구는 종양의 이질성까지 고려한 데이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제 PDX 분석에서도 EGFR과 MUC1이 동일 종양 내에서도 서로 다른 세포군에 분포하는 양상이 확인됐다. 표적이 균일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효과가 유지됐다는 점이 핵심이다.
용량 반응에서도 특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췌장암 세포주 유래 이식모델(CFPAC-1)에서는 1.5mg/kg 단회 투여만으로 완전 종양 퇴행이 확인됐다. KRAS 변이를 가진 종양 모델에서도 항종양 활성이 유지됐으며, 일부 모델에서는 지속적인 종양 억제 효과가 관찰됐다. 이는 기존 표적치료제의 한계로 지적되던 영역에서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전적으로도 차별성이 확인된다. ABL209는 단일 표적 ADC 대비 세포 결합력과 세포 내 유입(internalization)이 증가했고, 리소좀으로의 이동도 더 효율적으로 나타났다. 페이로드가 실제로 작용해야 하는 세포 내 위치까지 더 안정적으로 전달됐다는 의미다.
세포독성 평가에서도 IC50 기준 2.0~80.2 nM 범위로 나타나며, 대조군 대비 더 높은 세포 사멸 활성을 보였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주변 효과(bystander effect)’다. 혼합 세포 모델에서 항원이 없는 세포도 함께 감소하는 결과가 확인됐다. 즉, 실제 종양처럼 표적이 균일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치료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데이터에서 더 중요한 부분은 안전성이다. ABL209는 EGFR에 대한 결합 친화도를 낮추고 이중표적 구조를 적용해 해당 신호 억제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 이에 따라 비임상에서 인간 표피 각질형성세포 증식을 억제하지 않는 유의미한 결과가 확인됐다.
약동학 및 독성 프로파일도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원숭이 모델에서 10mg/kg 투여 시 반감기 약 5.2일을 나타냈고, 3~20mg/kg 구간에서 선형적인 노출(AUC)을 유지했다. 또한 최대 40mg/kg까지 내약성이 확인돼, 기존 EGFR 기반 ADC 대비 용량 확장 가능성을 시사했다.
ABL209는 현재 미국에서 임상 1상 IND 승인 이후 개발이 진행 중이며, 2027년 초기 데이터 공개가 예정돼 있다.
국내 항암 신약개발 바이오텍 연구자는 “ABL209는 EGFR과 MUC1을 동시에 겨냥하는 이중항체 구조를 통해 단일 표적 접근의 한계를 설계적으로 보완하려는 전략을 택했다”며 “특히 정상 조직에서의 결합은 낮추고, 종양에서의 선택성은 높이려는 접근은 치료역 확장을 겨냥한 전형적인 설계”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최근 ADC 경쟁이 타깃 발굴에서 설계 경쟁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고려하면, ABL209는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임상에서 치료역 확장이 실제로 확인된다면, EGFR 기반 ADC 접근 자체를 다시 평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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