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약 파이프라인 2162개 '역대 최대'…'글로벌 갭' 줄일 넥스트 모달리티 관건
바이오벤처가 산업계 78% 주도하며 양적 팽창 견인… 2022년 대비 약 31% 급증
글로벌 톱10은 '항체(46.6%)' 대세 속, 국내는 여전히 '저분자 화합물(35.1%)' 집중
김순남 본부장 "ADC·CGT 등 신규 모달리티 전환 가속 및 임상 데스밸리 극복 지원 총력"
김홍식 기자 kimhs423@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4-17 06:00   수정 2026.04.17 06:01
김순남 국가신약개발사업단 R&D 본부장. ©약업신문=김홍식 기자

대한민국 신약개발 생태계가 매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들이 보유한 신약 파이프라인이 2,100개를 가뿐히 돌파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국가신약개발사업단(KDDF)이 16일 출범 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김순남 R&D 본부장의 발표를 통해 공개한 ‘2025 국내 신약개발 파이프라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신약 파이프라인은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전환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조사는 산업계, 학계, 연구계, 병원계를 총망라하여 552개 기관, 총 2,162건의 유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내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의 폭발적인 양적 증가다. 2022년 1,650개였던 파이프라인은 2024년 1,701개를 거쳐 2025년 기준 2,162개로 급증했다. 불과 3년 만에 약 31%가 늘어난 수치다.

이러한 성장을 견인한 핵심 주체는 단연 '산업계', 그중에서도 '바이오벤처'다. 전체 파이프라인 2,162건 중 산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9.2%(1,929건)에 달했다. 이어 학계가 7.3%(158건), 연구계 2.9%(62건), 병원계 0.6%(13건) 순이었다.

산업계 내부를 들여다보면 바이오벤처의 약진이 더욱 두드러진다. 산업계 파이프라인 1,929건 중 바이오벤처가 1,505건을 보유하며 전체의 78.0%를 차지했다 . 중견기업은 399건(20.7%), 대기업은 25건(1.3%)에 불과했다. 이는 대한민국 신약개발 생태계가 대형 제약사 중심에서 혁신 기술로 무장한 민첩한 벤처 중심으로 재편되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2022년 873개였던 바이오벤처의 파이프라인은 2025년 1,505개로 두 배 가까이 팽창했다.

양적인 성장은 고무적이지만, 글로벌 트렌드와의 간극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목됐다. 파이프라인의 약물 유형(Modality)을 분석한 결과, 국내 신약개발은 여전히 전통적인 '저분자 화합물(Small molecule)'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모달리티별 파이프라인 현황을 보면 저분자 화합물이 758건으로 전체의 35.1%를 차지하며 부동의 1위를 기록했다 . 이어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및 핵산 의약품이 367건(17.0%), 항체(Antibody) 281건(13.0%), 재조합 단백질(rProtein) 257건(11.9%), 표적단백질분해제(TPD) 93건(4.3%) 순이었다.

반면, 2025년 기준 R&D 투자 상위 글로벌 10대 제약사의 파이프라인 1,084개를 분석한 결과는 이와 확연히 달랐다. 글로벌 톱10의 포트폴리오에서는 '항체'가 46.6%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으며, 저분자 화합물은 32.3%에 머물렀다. 특히 글로벌 항체 파이프라인 내부에서는 이중특이항체(BsAb)가 44.6%, 항체약물접합체(ADC)가 28.7%를 차지하며 차세대 모달리티가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었다.

다만 긍정적인 신호는 국내 생태계도 빠르게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3년간 국내 파이프라인 변화를 살펴보면, CGT(209→367건), 항체(218→281건), TPD(48→93건) 등 혁신 모달리티 분야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사업단 역시 포트폴리오의 18.3%를 항체에, 17.4%를 CGT에 배정하며 글로벌 격차 해소를 위해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적응증별 분포에서는 전 세계적인 현상과 마찬가지로 항암제 쏠림 현상이 강하게 나타났다. 전체 2,162건 중 '암 질환' 타깃 파이프라인이 887건(41.0%)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항암제 다음으로는 신경계 질환 255건(11.8%), 면역계 질환 216건(10.0%), 대사 질환 162건(7.5%), 감염성 질환 131건(6.1%) 순으로 개발이 활발했다.

또한, 신약개발의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바이오마커' 활용과 오픈 이노베이션의 핵심인 '공동연구' 지표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환자군 선별을 위한 바이오마커를 보유한 파이프라인은 607건으로 미보유(599건)와 엇비슷한 수준에 그쳤다. 타 기관과의 공동연구 역시 '미수행'이 1,583건에 달해, '수행(576건)' 대비 압도적으로 높아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독자 개발 선호 성향이 짙은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프라인의 개발 단계를 살펴보면 대한민국 신약개발의 미래 과제가 명확해진다. 전체 파이프라인 중 탐색 단계(Discovery)가 39.4%(851건), 비임상 단계(Non-clinical)가 35.2%(760건)로, 전체의 74.6%가 초기 연구 단계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인체 대상 임상시험인 임상 1상은 13.6%(294건), 임상 2상은 9.0%(194건), 임상 3상은 2.6%(57건)에 불과했다. 품목허가 신청(NDA/BLA) 단계는 단 5건(0.2%)에 그쳤다.

이는 수많은 유망 물질이 도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는 '임상 단계'로 넘어가는 데 심각한 병목 현상,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를 겪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KDDF의 역할이 빛을 발한다. KDDF는 현재 국내 탐색 단계 과제의 43.7%(372건), 비임상 단계 과제의 15.3%(116건)를 직접 협약 과제로 끌어안으며 든든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나아가 사업단은 다가올 2단계 사업을 통해 임상 2상, 3상의 지원 비율을 대폭 확대하고 기업의 매칭 펀드 비율을 낮추는 등 임상 단계 진입 허들을 낮추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김 본부장은 "지난 5년간 바이오벤처를 중심으로 국내 신약 파이프라인의 양적 기반은 성공적으로 마련되었다"고 평가하며, "앞으로는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하는 ADC, 이중항체 등 혁신 모달리티로의 전환을 유도하고, 우수한 초기 후보물질들이 자금난으로 인해 사장되지 않고 글로벌 임상 3상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지원 체계를 전폭적으로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초기 파이프라인의 풍부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제약바이오가 블록버스터 신약 배출이라는 글로벌 결승선을 통과할 있을지 KDDF 다음 행보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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