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에서 평가로…식약처, 시판 후 안전관리 ‘근본 전환’ 선언
RMP 통합 이후 첫 정책 방향 공개…재심사 시대 공식 종료
“이상사례 '많이'보다 '제대로' 보라”…평가 중심 규제 강화
RWD·DUR·실태조사까지 전면 개편…데이터 기반 체계로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3-31 06:00   수정 2026.03.31 06:01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약품 시판 후 안전관리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공식화했다. 단순 보고 중심의 기존 약물감시 체계에서 벗어나, 인과성 평가와 데이터 기반 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정밀 안전관리 체계’로의 전환이 본격화된다.

식약처는 30일 ‘의약품 시판 후 안전관리 정책설명회’를 통해 2026년 정책 방향과 제도 개선 사항을 공개하고, 위해성관리계획(RMP) 중심의 통합 체계 정착, 실사용데이터(RWD) 활용 확대, 실태조사 강화 등을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특히 업계가 그동안 관행적으로 수행해온 ‘형식적 이상사례 보고’에서 벗어나, 실제 안전성 평가 역량을 갖춘 관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번 설명회는 의약품 안전평가과를 중심으로 실태조사, RMP 제도 운영, DUR 정보 개발, 동등성 재평가 등 시판 후 안전관리 전반을 포괄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발표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된 키워드는 ‘통합’, ‘유연성’, ‘데이터’, 그리고 ‘책임성’이었다.

재심사 폐지 이후…RMP 중심 통합 체계 본격 정착
가장 큰 제도 변화는 재심사 제도의 사실상 종료와 RMP 중심의 통합 체계 정착이다.

식약처는 기존 재심사와 RMP가 이중적으로 운영되면서 발생했던 행정 비효율을 해소하고 국제 조화를 달성하기 위해 두 제도를 통합했다. 이에 따라 2025년 2월 21일 이후 허가되는 의약품에는 재심사가 부여되지 않으며, RMP 이행 의무만 적용된다.

기존 재심사 대상 품목은 경과조치에 따라 종전 규정을 유지하지만, 신규 품목은 모두 RMP 체계 하에서 관리된다. 이는 단순한 제도 변경을 넘어, 시판 후 안전관리의 개념 자체를 ‘사후 평가’에서 ‘사전·사후 통합 관리’로 확장하는 의미를 가진다.

RMP 체계의 특징은 유연성이다. 재심사 제도가 4년, 6년 등 획일적인 기간을 적용했던 것과 달리, RMP는 품목별 특성에 따라 조사 기간과 감시 방법을 설정할 수 있다. 다만 이에 대한 근거 자료 제출 책임은 기업에 있다.

또한 사용성적조사 등 추가 약물감시 활동은 기존과 동일하게 시판 1개월 전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며, 최종 결과 보고 역시 RMP에 설정된 일정에 따라 변경허가 형태로 제출된다.

다만 업계의 관심이 높은 ‘RMP 종료 기준’은 아직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로, 향후 협의체 논의를 통해 구체화될 예정이다.

“이상사례 0건? 신뢰성 의심”…데이터 신뢰성 검증 강화
이번 설명회에서 특히 강조된 부분은 데이터 신뢰성 문제였다.

식약처는 실제 사례를 언급하며, 사용성적조사에서 이상사례가 ‘0건’으로 보고된 경우 대부분 누락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제출 자료의 신뢰성이 의심될 경우 별도의 신뢰성 조사를 실시하고, 결과에 따라 행정처분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는 단순 보고 체계에서 데이터 품질 관리 체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보고 건수 자체보다 ‘데이터의 정확성’과 ‘평가 과정의 타당성’이 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실태조사 5년차…“이제는 평가 능력 본다”
2022년 도입된 시판 후 안전관리 실태조사는 2026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다.

식약처는 그간 4년간 총 118개 업체를 점검해 1354건의 지적사항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업체당 평균 12건의 지적이 발생한 셈이다.

주요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는 조직과 인력 부족, 둘째는 업무 기준서(SOP) 미흡, 셋째는 안전성 정보 전달 체계의 부재였다.

특히 생산 실적은 높지만 이상사례 보고가 현저히 적은 ‘보고 미흡 업체’가 다수 확인되면서, 보고 체계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이에 따라 2026년 실태조사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강화된다.

우선 총 25개 업체를 대상으로 전면 현장조사를 실시한다. 기존처럼 서류 조사와 병행하지 않고, 실제 운영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또한 평가 기준도 달라진다. 단순 보고 건수가 아닌, 안전성 평가 체계의 존재 여부와 운영 적정성을 중점적으로 점검한다. 특히 인과성 평가 기준, 중대성 판단 기준, SOP 구체성 등이 핵심 점검 항목으로 제시됐다.

아울러 과거 지적사항에 대한 개선 여부를 확인하는 ‘이행 점검’도 강화된다. 이는 실태조사가 단순 지적에 그치지 않고, 실제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반복되는 지적사항…“SOP·교육·인과성 평가 취약”
2025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업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도 명확히 드러난다.

가장 많이 지적된 사항은 업무 기준서(SOP)의 부실이다. 많은 기업이 SOP를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업무 수행에 필요한 수준의 구체성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직원이 SOP만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직 측면에서는 PV 인력이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거나 다른 업무와 병행하는 사례가 많았으며, 안전관리책임자가 판매 조직에 속해 있는 경우도 확인됐다. 이는 법령상 금지된 사항으로 ‘중요 지적사항’에 해당한다.

교육 역시 취약했다. 많은 기업이 약물감시 교육만 실시하고, 재평가나 RMP 등 전체 시판 후 안전관리 영역에 대한 교육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직원 대상 이상사례 보고 체계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과성 평가였다. 일부 기업은 중대하지 않은 이상사례에 대해 평가를 수행하지 않고 단순 보고만 하는 사례가 확인됐으며, 평가를 외부 CRO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실제 사용한 평가 알고리즘과 보고 시 기재된 알고리즘이 다른 경우, 평가 주체가 SOP와 다르게 변경된 경우 등 기본적인 절차 위반도 다수 발견됐다.

식약처는 특히 “평가 알고리즘을 임의로 변경하거나 보고 시 다른 방식으로 매핑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중대성 판단 기준 없다”…핵심 리스크 부상
현장에서 가장 혼선이 큰 영역은 ‘중대성 판단 기준’이다.

사망, 입원 등 명확한 기준은 비교적 잘 적용되지만, “기타 의학적으로 중요한 상황”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는 기업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는 이 항목이 약물 의존성, 남용, 혈액질환 등 다양한 상황을 포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업이 명확한 기준 없이 임의 판단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향후 실태조사에서는 중대성 판단 기준의 명확성 여부도 주요 평가 항목으로 반영될 예정이다.

RWD 활용 본격화…“EMR 기반 안전성 평가”
시판 후 안전관리의 또 다른 축은 데이터 기반 전환이다.

식약처는 병원 EMR 데이터를 공통 데이터 모델(CDM) 형태로 구축해, 실제 임상 환경에서의 안전성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기존 자발적 보고 중심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전략으로, 특정 안전성 이슈 발생 시 실제 환자 데이터를 활용한 평가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RWD 기반 분석은 향후 규제 판단에도 중요한 근거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DUR 중장기 계획…AI 도입·취약계층 확대
의약품 안전사용정보(DUR)도 중장기 개편이 추진된다.

현재 DUR은 병용금기, 연령금기, 임부금기 등 9종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총 6,390건의 정보가 운영 중이다.

2026~2030년 계획에서는 세 가지 방향이 제시됐다.

첫째, 기존 정보의 최신화를 통한 신뢰성 강화다. 오래된 정보나 근거가 부족한 항목은 최신 임상 근거 기반으로 재정비된다.

둘째, 정보 개발 및 제공 체계 개선이다. 신약 DUR 정보 제공 주기를 연 단위에서 반기 단위로 단축하고, AI 기반 정보 개발 시스템 도입도 추진된다.

셋째, 취약계층 맞춤형 정보 확대다. 노인, 임부, 장애인 등을 위한 맞춤형 정보 제공과 교육 자료 개발이 강화된다.

특히 마약류 의약품의 DUR 정보는 의료법 개정에 따라 확인 의무가 강화되면서, 정보 정확성과 완결성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

동등성 재평가 확대…“무균제제 본격 진입”
의약품 품질 관리 측면에서는 동등성 재평가가 확대된다.

식약처는 2023~2025년 경구제 재평가를 대부분 완료했으며, 2026년부터는 주사제, 점안제 등 무균제제로 확대한다.

다만 모든 품목에 동일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는다. 과학적·기술적 한계를 고려해 일부 품목은 면제 또는 완화 대상에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방사성 의약품은 물리적 특성상 시험 자체가 어려워 제외 대상이 되며, 대용량 수액제나 의료용 가스 등도 특성상 동등성 입증이 무의미한 경우로 분류된다.

또한 안과용 히알루론산 제제 등은 대조약 확보 어려움 등 현실적 문제를 반영해 제외 대상으로 검토된다.

이러한 접근은 품질 확보와 공급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한 정책으로 해석된다.

“지원 확대 + 규제 정밀화”…이중 전략
이번 정책 전반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이중 전략’이다.

한편으로는 부작용 피해구제 확대, 부담금 완화, 절차 간소화 등 업계 부담을 줄이는 정책이 추진된다. 보상 한도 상향과 납부 방식 개선 등이 대표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데이터 신뢰성 검증, 실태조사 강화, 인과성 평가 요구 등 규제는 더욱 정밀해진다.

이는 단순 규제 강화가 아니라, ‘책임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제공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는 방향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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