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가 전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 파는 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정체성'을 구축하는 일이다. 서울 강서구 코엑스마곡에서 열린 ‘2026 서울인디뷰티쇼’의 둘쨋날인 지난 27일 열린 ‘K-뷰티 글로벌 브릿지’ 세미나 현장에서 지난 만난 김소현 박사의 조언은 시종일관 본질적인 지점을 파고들었다. 스탠퍼드 디자인 혁신 센터(SCIDR)를 10년 넘게 이끌며 실리콘밸리 소비재 시장의 냉혹한 변화를 지켜봐 온 김 박사는, 강연 직후 이어진 뷰티누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K-뷰티 파운더들이 직면한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진단했다. 서울인디뷰티쇼는 26~28일까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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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 시장에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그 자체로 프리미엄입니다.” 김 박사는 한국인으로서 존재감을 증명하기조차 버거웠던 20여년 전 유학 시절에 비교하면 지금은 분명 '황금기'라고 표현하면서도 한국 기업들이 단순히 'Made in Korea'라는 꼬리표에 기대어 안주하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오히려 지금은 가장 냉정한 전략적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그의 정식 직함은 SCIDR 이그제큐티브 디렉터다.
Z세대 마음 움직이는 ‘마이크로 조이’
김 박사는 현재 미국 뷰티 시장의 거대한 축인 젠지(Gen Z) 세대의 심리적 허기에 주목했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트라우마를 통과한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키워드는 '멘탈 헬스(Mental Health)'다. 이들은 승진이나 결혼 같은 거창한 행복 대신, 꽃향기를 맡거나 강아지를 만지는 찰나의 행복, 즉 '마이크로 조이(Micro Joy)'를 촘촘히 연결해 삶을 버텨낸다.
“이들에게 뷰티는 파티를 위해 화려하게 꾸미는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의 나를 수용하고 돌보는 '루틴' 그 자체입니다.” 김 박사는 셀레나 고메즈의 레어 뷰티(Rare Beauty)가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고 분석한다. 단순히 예뻐 보이는 제품이 아니라, 불안한 자아를 긍정하고 수익금 일부를 정신 건강 재단에 기부하는 등의 진정성이 젠지의 가치 소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선 노화를 방지하려는 롱제비티(Longevity) 관련 제품 및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10대 후반부터 관심을 갖고 있다. 또 한 가지 지켜봐야 할 트렌드는 '기능성 웰니스'다. 수면 사이클부터 혈압, 혈당, 미세플라스틱 수치까지 주기적으로 체크하며 관리하려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김 박사는 “현재 미국 시장에선 뷰티와 웰니스를 동시에 강조하는 브랜드들이 트렌디하고 인기가 많다”고 소개했다.
브랜드 ‘소울’이 성패 갈라
한국 뷰티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인프라 덕분에 3개월이면 신제품을 뚝딱 만들어낸다. 하지만 김 박사는 역설적으로 그 ‘속도’가 함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90%의 제품이 비슷한 품질이라면, 마지막 10%의 승기를 잡는 건 창업자의 철학입니다.” 특히 브랜드 스토리가 중요한 미국에선 브랜드 론칭 전부터 수 개월간 세세한 콘텐츠를 공유하며 '커뮤니티 빌딩'에 공을 들인다는 것.
한국 창업자들은 유독 전면에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밝힌 김 박사는 미국 시장에선 창업자가 직접 들려주는 스토리텔링이 곧 ‘프리미엄’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사업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지만, 브랜드는 영혼(soul)을 넣는 작업입니다. 소울이 없는 제품은 유행이 지나면 금세 대체되지만, 철학이 있는 브랜드는 문화로 남죠.”
창업자 중심의 브랜딩은 단순히 '얼굴'을 알리는 차원을 넘어, 소비자에게 강력한 '구매 이유'를 제공한다. 김 박사는 "미국 소비자들은 이 제품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어떤 가치를 위해 이 브랜드를 시작했는지에 매우 민감하다"며 "완벽하게 다듬어진 결과물보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투명한 소통이 브랜드의 팬덤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거듭 강조했다.
‘뾰족한’ 타깃부터 공략하라
김 박사는 인터뷰 내내 대중적인 성공에 매몰되어 타깃을 흐리는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최근 만나본 브랜드 중에는 ‘수영장 사용자 전용 제품’이나 ‘극민감성 피부(HSP)’를 가진 이들만을 위해 뾰족하게 설계된 사례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마켓 자체가 워낙 커서 아주 작은 영역만을 겨냥해도 그 규모가 상당하다”며 “세밀하고 뾰족한 타깃팅이 오히려 브랜드 메시지를 선명하게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쓰길 바라는 마음으로 타깃을 넓히다 보면 브랜드가 애매모호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뾰족한’ 전략이 가장 절실한 분야로 김 박사는 두피 및 헤어케어 시장을 꼽았다. 현재 미국 뷰티 시장의 관심축은 스킨케어에서 헤어케어로 이동하고 있지만, 세포라 같은 주요 채널에서도 소비자들의 세밀한 고민을 해결해 줄 K-뷰티 제품군은 여전히 비어있다는 것이다. 접근법도 한국과는 달라야 한다. 그는 “단순히 ‘머릿결이 좋아진다’는 식의 모호한 접근이나, 지나치게 학술적이고 전문적이어서 이해가 어려운 설명보다는 직관적인 표현을 통해 특정 고민이나 라이프스타일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알러지 유발 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인위적인 향 첨가를 기피하는 현지 소비자들의 특성도 반드시 숙지해야 할 부분이다.
답은 '데이터'와 '현장'에 있다
“결정권자가 직접 미국 현지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실 필요가 있습니다.” K-뷰티가 한국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지 시장에 제대로 안착할 비법을 묻자, 김 박사는 대표나 C레벨급 관리자가 미국에서 직접 체류하며 양국의 미묘한 문화적 차이를 피부로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엔 아마존 같은 온라인 플랫폼 입점 문턱이 낮아져 쉽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플랫폼을 통해선 상세한 고객 지표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고객과의 접점을 최대한 늘려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작은 규모로라도 온라인으로는 D2C(자사몰) 채널 운영을 통해 세부 고객 데이터를 축적하고, 오프라인으로도 팝업·샘플링을 진행하며 고객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K-컬처의 후광은 생각보다 오래갈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오래 살아남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선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브랜딩하면서 '프리미엄'으로 진입하는 게 중요합니다.” K-뷰티 열기가 금방 식을까 전전긍긍하는 기업들이 많다. 그러나 김 박사는 “뷰티나 푸드 산업의 경우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부분이 있어 생명력이 질긴 편“이라며 ”한국의 제조 경쟁력에 창업자의 진정성 있는 ‘스토리’가 결합된다면, K-뷰티는 일시적 현상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라이프스타일 장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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