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브비(AbbVie)가 미국 백악관과 약가 인하 및 투자 확대를 연계한 새로운 합의를 체결하며, 미국 정부의 ‘최혜국(Most-Favored-Nation, MFN)’ 약가 정책에 공식적으로 합류했다.
애브비는 이번 합의를 통해 메디케이드(Medicaid) 프로그램에서 일부 자사 의약품의 가격을 인하하고, 향후 10년간 미국 내 연구개발(R&D)과 생산 인프라에 총 1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회사는 의약품 수입 관세 면제와 향후 가격 규제 완화 혜택을 확보했다.
이번 계약에는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직접 구매 플랫폼 ‘TrumpRx’를 통한 자사 의약품 판매 확대도 포함됐다. 애브비는 알파간(Alphagan), 콤비간(Combigan), 휴미라(Humira), 신스로이드(Synthroid) 등을 해당 플랫폼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휴미라는 여전히 매출 비중이 있는 제품이지만, 알파간과 콤비간은 2024년 기준 합산 매출이 2억 4800만 달러에 그친 안과용 제품이며, 신스로이드는 오래된 갑상선 치료제로 최근 실적 보고서에 별도로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매출 비중이 제한적이다.
휴미라는 2023년 특허 만료 이후 바이오시밀러 경쟁에 직면하며 매출 감소 국면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애브비 포트폴리오에서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MFN 계약을 통해 애브비는 휴미라를 포함한 일부 주요 제품을 정부가 정한 가격 기준에 맞춰 공급하는 대신, 관세 면제와 가격 정책에 대한 예외를 확보하는 구조를 선택했다.
애브비는 이번 합의가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네 가지 약가 정책 우선순위를 모두 충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버트 마이클(Robert Michael) 애브비 최고경영자는 “미국 내 약 2만 9000명의 직원과 연간 1600만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기업으로서, 의료 접근성과 혁신 간의 균형을 이해하고 있다”며, “이번 합의를 통해 미국 혁신을 저해하는 정책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지난해 여름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제약사 17곳의 최고경영자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 내 의약품 가격을 다른 선진국 최저 수준에 맞출 것을 요구한 이후 이어진 일련의 MFN 협상의 연장선에 있다. 이 서한에는 애브비를 포함해 암젠, 아스트라제네카, 베링거인겔하임,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 일라이 릴리, 머크, 노바티스, 노보 노디스크, 화이자, 사노피 등 대부분의 글로벌 빅파마가 포함됐다. 현재까지 이들 가운데 리제네론(Regeneron)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이 백악관과 MFN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애브비의 1000억 달러 투자 약속은 지난해 4월 발표한 미국 내 100억 달러 투자 계획에 이은 대규모 추가 공약이다. 다만 회사는 이번 1,000억 달러에 기존 100억 달러가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애브비는 지난해 발표 당시 해당 투자를 연구개발과 생산 인프라 강화에 사용하겠다고 설명했으며, 이번에도 동일한 방향성이 유지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애브비는 최근 애리조나주 템피(Tempe)에 위치한 의료기기 제조시설을 1억7500만 달러 이상에 인수·현대화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해당 시설은 면역질환과 신경과학 분야에서 현재 및 차세대 제품 생산을 지원하는 용도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 투자는 애브비가 미국 내 생산 역량을 확대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이번 MFN 계약은 미국 정부의 약가 인하 압박과 제약사의 투자·공급망 전략이 동시에 맞물려 작동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애브비는 일부 의약품의 가격 인하와 직접 판매 채널 확대를 수용하는 대신, 관세 면제와 장기적인 가격 규제 리스크 완화, 그리고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연계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같은 모델은 향후 다른 글로벌 제약사들의 미국 시장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