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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약개발 현장에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일이 잦다. '신약개발'과 '신물질개발'이라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개념이 여전히 혼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혼동이 일부 연구자 개인의 인식 차원을 넘어, 연구과제 평가와 국가 R&D 시스템 전반에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냉정하게 말해, 신약개발에 관여하는 다수의 연구자와 교수들은 ‘신약개발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 활동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가본 경험이 많지 않다. 오히려 의약품 허가·심사 업무를 실제로 접해본 사람들 만이 이 두 영역을 비교적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약개발의 1차적 목표는 분명하다. 허가기관으로부터 의약품 허가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최종 목표는 산업적 성공이든, 환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든 간에 ‘시장과 환자에게 도달하는 것’이다.
반면, 신물질개발은 전혀 다른 차원의 활동이다. 이는 신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물질을 탐색하고, 초기 수준에서 그 가능성을 검증하는 단계에 해당한다. 중요한 활동임은 분명하지만, 그것 자체가 곧 신약개발의 완성이나 핵심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차이는 신약 허가 절차를 들여다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합성의약품을 예로 들면, 신약으로 허가받기 위해서는 허가기관에 신약허가신청(NDA, New Drug Application)을 제출해야 한다. 이때 제출되는 문서는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CTD(Common Technical Document) 형식을 따른다.
CTD는 ▲모듈 1: 행정 자료 ▲모듈 2: 품질·비임상·임상에 대한 종합 요약 ▲모듈 3: 화학·제조·품질관리(CMC) ▲모듈 4: 비임상 시험 보고서 ▲모듈 5: 임상시험 보고서 등 다섯 개의 모듈로 구성된다.
이 구성만 보더라도 신약 허가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신약 허가는 물질의 ‘새로움’이 아니라, 생산 가능성, 품질의 일관성, 유효성, 그리고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체계적 입증을 평가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허가기관의 관점에서 신청 대상 물질이 ‘신물질이냐 아니냐’는 본질적 판단 기준이 아니다. 이전에 신약으로 허가받은 적이 없는 물질이면, 그것이 신물질이든 아니든 신약 허가 신청의 대상이 된다. 이미 허가된 물질이라면 그때는 신약이 아니라 제네릭(또는 자료제출의약품)의 경로를 따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신물질에 이토록 집착하는가? 이유는 명확하다. 신약 연구과제를 평가하는 구조 자체가 신물질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가자이자 심사자인 교수와 연구자들이 신물질 여부에 과도한 가중치를 두고, 그 기준이 다시 연구자들의 전략을 왜곡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신약 허가 과정에서 작용기전(MOA)은 참고자료일 뿐, 허가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는 아니다. 실제로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임상적 유효성과 안전성, 그리고 제조·품질관리(CMC)에 대한 신뢰 가능한 데이터다.
신물질개발은 신약개발의 한 축일 뿐이다. 그 이후에는 훨씬 더 혹독한 단계들이 기다리고 있다. 대규모 생산 공정의 확립, 품질 일관성 확보, 반복 검증 가능한 유효성·안전성 입증이라는 현실적인 장벽을 넘어야만 비로소 신약 허가라는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다.
문제는 신물질개발이라는 단계가 목적 그 자체가 될 때 발생한다. 이른바 ‘신물질개발 블랙홀’에 빠지게 되면, 신약개발은 오히려 출구 없는 터널로 변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블랙홀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이를 무의식적으로 유지·강화하는 연구 생태계의 집단적 관성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우리나라의 신약개발이 계속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 이제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신물질개발과 신약개발은 다르며, 신약개발의 중심은 허가와 시장 진입이라는 현실에 있다는 점을 말이다.
지금이 바로 신물질개발이라는 블랙홀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연구자, 평가자, 정책 입안자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신약개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 신약개발의 미래가 더 이상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실질적인 전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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