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아닌 ‘개발 내비게이션’으로”…식약처, 신약·바이오 가이드라인 대전환 착수
허가 뒤쫓기에서 선제 가이드로…100억 원 투입 가이드라인 프로젝트
임상·비임상·품질·복합제네릭을 묶은 의약품 30건 개발 계획
차세대 항체·mRNA·오가노이드를 겨냥한 바이오 12건 가이드라인
최윤수 기자 jjysc0229@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6-01-14 06:00   수정 2026.01.14 06:01

2026년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신약과 첨단 바이오의약품 개발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규모 가이드라인 개발 사업에 착수한다. 임상, 비임상, 품질, 복합제네릭, 세포·유전자치료제, 차세대 항체, 백신, 오가노이드까지 아우르는 이 사업은 단순한 가이드라인 정비가 아니라, 신기술 중심의 의약품 개발 지형에 맞춰 규제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발 친화형’으로 재설계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강주혜 의약품심사부장은 13일 홍정희 의약품규격과장과 왕소영 세포유전자치료제과장과 함께  식약처 출입 전문지 기자단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열고, 의약품심사부와 바이오생약심사부가 각각 추진하는 ‘의약품 신속개발 지원 가이드라인 개발 사업’과 ‘첨단 신기술 기반 바이오의약품 가이드라인 개발 사업’의 구체적인 구조와 목표를 공개했다.

(왼쪽부터) 홍정희 의약품규격과장, 강주혜 의약품심사부장, 왕소영 세포유전자치료제과장. © 식약처 출입 전문지 기자단

“신약 개발의 가장 큰 병목은 규제가 아니라 ‘정보 공백’”
이번 사업의 출발점은 산업계의 일관된 문제 제기였다.

AI, 빅데이터, 합성 펩타이드, 흡입제, 세포·유전자치료제처럼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시험하고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허가가 가능한지에 대한 ‘실무 수준의 기준’이 부족하다는 것.

식약처는 그동안 ICH 가이드라인이나 기존 국내 가이드라인이 존재했음에도, 현장에서는 “한 줄짜리 원칙만 있고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시험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업은 바로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의약품심사부가 추진하는 ‘의약품 신속개발 지원 가이드라인 개발 사업’은 총 71억 50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되며, 가이드라인을 통해 의약품 시장 진입까지의 경로를 상세히 안내해 개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임상·비임상·품질·복합제네릭… 4대 축으로 30건 가이드라인
의약품 분야에서는 임상, 비임상, 품질, 복합제네릭 4개 영역에서 총 30건의 가이드라인이 집중적으로 개발된다.

임상 분야에서는 AI 기반 신약개발, 의료 빅데이터와 실사용데이터(RWD)의 임상적 활용 기준이 핵심 과제다. 특히 AI로 후보물질을 도출하거나,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 동물시험을 대체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가이드라인에 담긴다.

비임상 분야는 동물실험 대체시험법과 신기술 기반 독성·유효성 평가가 주요 대상이다. 기존에는 회사마다 논문이나 자체 방법을 활용해 시험을 수행했지만, 이번에는 공통된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품질 분야는 합성 펩타이드,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마이크로니들, 용출물·침출물(Q3) 등 ICH 가이드라인이 강화된 영역을 중심으로, 시험 결과를 어떻게 CTD에 반영해야 하는지까지 포함한 ‘실무형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다.

복합제네릭 분야는 흡입제, 현탁제, 고분자 제형 등 기존 경구제와 다른 복잡 제형의 동등성 평가 기준이 핵심이다. 약물 성분뿐 아니라 디바이스, 입자 크기, 분사 특성 등 물리적 요소까지 포함한 평가 프레임이 제시될 예정이다.

바이오의약품: 신기술 중심 12건 가이드라인 제정
바이오 분야에서는 ‘첨단 기술 기반 바이오의약품 가이드라인 개발 사업’이 별도로 추진된다. 이 사업에는 24억 원이 투입되며, 총 12건의 가이드라인 제·개정이 목표다.

가이드라인은 ▲생물학적제제 분과에서는 백신과 전통적 바이오의약품을 대상으로 품질·안전성·유효성 가이드라인 제정 ▲유전자재조합의약품 분과에서는 차세대 항체, 이중항체, 나노항체 등 새로운 항체 기술에 대한 평가 기준이 마련 ▲세포유전자치료제 분과에서는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오가노이드 치료제, 희귀질환 대상 소규모 임상 설계까지 포함한 가이드라인 개발 등 세 개 분과를 중심으로 개발된다.

특히 오가노이드 기반 치료제와 같이 아직 국내 IND 승인 사례가 거의 없는 기술에 대해서도 품질·비임상·임상 설계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겠다는 계획이 제시됐다.

외부 전문가가 쓰고, 식약처가 검증하는 새로운 구조
이번 사업의 또 하나의 핵심은 가이드라인 생산 방식의 변화다.

기존에는 식약처가 내부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구조였다면, 이번에는 외부 전문가가 초안을 작성하고, 식약처와 전문가협의체가 이를 검증·조율하는 구조로 바뀐다.

의약품 분야에는 지원단이 별도로 운영돼 사업 관리와 일정 조정을 담당하고, 바이오 분야는 총괄 운영기관과 분과별 전문가협의체가 가이드라인 개발과 검증을 맡는다. 모든 분과에는 식약처 내부 심사자가 함께 참여해 규제 일관성과 공공성을 유지하는 구조다.

식약처는 이를 통해 특정 기업에 유리한 기준 설정이나 규제 완화 논란을 차단하고, 과학적 근거와 심사 경험이 결합된 ‘제3의 평가 기준’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규제 완화가 아니라, 합리성과 디테일을 더하는 작업”
식약처는 이번 사업을 ‘규제 완화’로 보지 말아달라고 분명히 했다.

가이드라인의 목적은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허가가 가능한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ICH 가이드라인이 있음에도 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원칙은 있지만 디테일이 없기 때문”이며, 이번 사업은 그 디테일을 채우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규제 당국은 보다 일관된 기준으로 심사를 할 수 있게 된다.

2026년, ‘규제 과학’이 산업 경쟁력이 되는 해
이번 가이드라인 개발 사업은 단년도 사업이 아니라 계속 사업으로 설계됐다. 2026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차기 연도 수요를 조사하고, 중장기 로드맵을 갱신하는 구조다.

강주혜 과장은 “신약 기술이 너무 빨리 변해 규제기관도 이를 스캔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는 시대”라며, 유럽 규제기관들 역시 미래 기술을 사전에 등록·분석하는 체계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결국 이번 사업은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신기술 경쟁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제공하는 ‘공공 내비게이션’을 구축하는 작업이다. 2026년, 식약처의 가이드라인이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신약 개발의 인프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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