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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이어져온 동물실험 축소 구호가 실제 정책으로 돌아왔다. 그 흐름 한가운데 ‘오가노이드’와 ‘신규접근법(NAMs)’이 있다. 윤리와 비용 논쟁을 넘어, 규제기관이 동물 기반 전임상 안전성 평가를 줄이고, 대체 기술의 수용을 넓히겠다는 로드맵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미국 FDA는 지난 4월 ‘Roadmap to Reducing Animal Testing in Preclinical Safety Studies’를 공개했다. 핵심은 동물 사용 감소다. 인체 세포 기반 시험, 오가노이드, 미세생리시스템(MPS) 같은 인체 기반 모델, AI 기반 인실리코 모델을 활용해 동물실험 의존을 낮추는 방향을 제시했다.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단계적 적용을 전제로 한 실행 프로그램에 가깝다.
특히 FDA는 단일클론항체(mAb)를 초기 적용 분야로 선정했다. 비동물 근거가 충분한 경우, 동물실험 의존을 낮출 수 있는 제출 경로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전면 폐지 보다는 대체 가능한 조건을 만들고, 그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향으로 이해하는 게 정확하다.
영국 정부는 더 구체적으로 동물대체시험을 제시했다. 지난 11월 발표한 ‘Animal testing to be phased out faster’ 로드맵은 2026년까지 피부·안구 자극, 과민성 등 일부 시험에서 동물 사용을 중단하는 목표를 담았다.
2030년까지는 약동학 연구에서 개와 비인간 영장류 사용을 크게 줄이겠다는 방향도 포함됐다. 전환 수단으로는 오가노이드·장기모사칩 기반 시스템, 3D 인체 조직 모델, AI 기반 예측 기술 등이 거론됐다. 이 과정에 최대 7500만 파운드 규모의 연구·검증 인프라 지원 계획도 함께 제시했다.
스위스는 3Rs 전략을 더 촘촘하게 다듬고 있다. Swiss 3R Competence Centre(3RCC)를 중심으로 동물대체·감소·개선(Replacement, Reduction, Refinement)을 촉진하는 연구와 생태계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인체세포 기반 방법과 미세생리시스템 등 실용화 연구를 밀어주며, 대체기술이 학술 단계에 머무르지 않도록 제도적 토대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정부와 규제기관이 로드맵, 재정 지원, 검증 인프라를 통해 대체시험 기술의 제도 수용을 가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특히 오가노이드의 위치가 달라졌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 또는 조직 유래 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장기 유사 구조와 일부 기능을 구현하는 인체 기반 시험모델이다. 약물 반응 예측, 독성 평가, 질환 모델링에서 동물모델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혀 왔다. 최근에는 대안 기술이라는 프레임을 넘어, 표준화와 규제 수용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는 분위기다.
국내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는 지난 8월 ‘K-오가노이드 컨소시엄’ 출범을 통해, 오가노이드 생태계를 국가 단위 협력체로 묶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흩어진 기업·기관 역량을 표준화, 정책, 산업화로 연결하겠다는 시도다. 참여 주체 역시 기업과 학·연·기관을 함께 포괄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컨소시엄은 표준·정책, 산업화·재생연구, 정보·협력 분과를 통해 시험법 개발과 규제 대응, 상용화 촉진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컨소시엄 대표 참여 기업은 강스템바이오텍, 그래디언트바이오컨버전스, 대웅제약, 로킷헬스케어, 멥스젠, 바이오솔루션, 삼성바이오로직스, 셀인셀즈, 오가노이드사이언스, 코아스템켐온, JW중외제약 등 총 27곳이다. 여기에 기관 18곳도 참여한다.
규제 이벤트도 예고돼 있다. ‘제14차 동물실험·대체 국제회의(WC14)’는 2027년 8월 15~19일 서울 개최가 예정돼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한국이 동물대체시험 국제 논의의 중심 테이블에 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현장의 온도도 변했다. 바이오코리아 2025 패널 토론에서는 기술 가능성 자체보다 규제 수용성과 제도 설계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오가노이드, 장기모사칩, AI 기반 예측 기술이 연구 단계를 넘어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동시에 규제 전환 속도와 ‘검증 데이터 축적’이 가장 큰 병목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단독 대체시험 결과를 곧바로 인정하기보다, 병행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현실이 공유됐다.
AI는 특히 조건이 붙는다. 생성형 AI를 포함한 예측 모델은 잠재적 오류와 설명 가능성 문제가 제기된다. 규제 활용을 위해서는 성능지표 설정, 검증 체계, 투명성 확보가 선결 과제로 꼽힌다. 기술의 존재만으로는 부족하다. 재현성과 책임성을 제도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인간화 마우스의 위치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일부 면역독성 평가에서 사람 관련성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되며, 전환기에서 브리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동물실험을 없애는 기술이라기보다,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는 모델로 보는 게 맞다.
업계 관계자는 “동물실험 축소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방향이 됐다”면서 “오가노이드와 신규접근법이 신약개발의 기본값으로 완전히 고정됐다고 단정하긴 이르지만, 개발과 평가의 기본 문법이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25년은 그 변화가 규제기관의 공식 로드맵으로 확인된 해”라며 “이제 남은 과제는 제도와 표준, 데이터, 국제 협력의 속도를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느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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