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 분석 100달러 시대 돌입…승부는 기술 아닌 데이터"
아시아, 글로벌 유전체 데이터 공백 메울 핵심 지역 전망
기술 경쟁보다 데이터 경쟁이 신약개발 성패 좌우 예상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10-13 07:04   수정 2025.10.13 07:08
유전체 연구 및 염기서열 분석 비용의 변화 과정.©아이큐비아(IQVIA)

한때 1인당 1억원이 넘던 인간 유전체 분석 비용이 이제 100달러(약 14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100달러 유전체 시대’는 글로벌 보건과 제약바이오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는 현실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임상 CRO이자 제약바이오 전문 리서치 기관인 아이큐비아(IQVIA)는 최근 ‘글로벌 유전체 이니셔티브의 진화(The Evolving Global Landscape of Genomic Initiatives)’ 리포트를 통해 이 같은 변화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리포트에 따르면, 2001년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는 13년간 27억 달러를 투입해 인류 최초의 전장유전체를 해독했다. 이후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과 롱리드 시퀀싱 기술이 잇달아 상용화되면서 비용은 급격히 낮아졌다.

2022년에는 미국 울티마지노믹스(Ultima Genomics)가 100달러 수준의 전장유전체분석(Whole Genome Sequencing, WGS)을 구현하며 상징적 이정표를 세웠다. 불과 20년 전 1인당 9500만 달러였던 분석비용이 100만분의 1로 떨어진 셈이다.

아이큐비아 전략·인사이트 부문 토비 하우스(Toby House) 연구원은 “이러한 비용 혁신은 연구기관 중심이던 유전체 분석을 병원, CRO, 제약기업으로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면서 “대형 정부 프로젝트에 집중됐던 데이터가 산업 전반으로 분산되며 ‘유전체 데이터 대중화’라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유전체 이니셔티브는 257건으로, 2020년(187건) 대비 37%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북미가 전체의 38%를 차지하며 여전히 선도 중이지만, 아시아는 46건으로 22개 프로젝트가 새로 추가되며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중국의 ‘차이나 카두리 바이오뱅크(China Kadoorie Biobank)’와 UAE의 ‘에미리티 게놈 프로그램(Emirati Genome Programme)’은 각각 5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로, 인종·지역적 유전다양성 확보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하우스 연구원은 “유럽 중심으로 형성돼온 유전체 연구의 지형이 다극화되고 있으며, 각국이 자국민 유전체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 주권 경쟁에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중동·아시아 각국은 자국민 유전체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신약과 진단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환자 연계 데이터 기반 유전체 이니셔티브 현황.©아이큐비아(IQVIA)

유전체 분석은 이제 DNA 염기서열 해독을 넘어 ‘멀티오믹스(multiomics)’로 확장되고 있다. 전체 프로젝트의 27%가 단백체(Proteomics), 전사체(Transcriptomics) 등 다른 오믹스 데이터를 통합하고 있다. 23개 프로젝트는 유전체·전사체·단백체·대사체를 모두 다루는 멀티오믹스 접근법을 채택했다.

이러한 통합 데이터는 타깃 발굴과 바이오마커 개발에서 기존보다 정교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단일 유전자 수준이 아닌 전사·단백질·대사 네트워크 전체를 분석함으로써 약물 반응성·부작용·질환 예측의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인다.

또한 환자 의료기록(EMR/EHR)과 연계된 유전체 데이터는 전체의 24%를 차지했다. 이는 2020년 대비 14%p 증가한 수치다. IQVIA는 “환자 연계 데이터는 임상적 활용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이며, 유전학적 근거가 확보된 신약 후보는 그렇지 않은 후보보다 승인 가능성이 63% 더 높다”고 설명했다.

아이큐비아는 정치·재정적 불확실성이 향후 글로벌 유전체 연구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미국 정부가 국립보건원(NIH) 예산 44%(약 200억 달러) 삭감을 추진하면서, 전 세계 6만건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와 데이터 인프라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로 인해 미국 내 연구자의 75%가 유럽·캐나다 등으로의 이주를 고려하고 있으며, 글로벌 헬스 펀딩 축소는 저중소득국가의 연구 지속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하우스 연구원은 “이 공백을 아시아가 메워야 한다”며 “데이터의 다양성이 미래 신약개발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유전체 데이터는 더는 연구의 산물이 아니라 산업의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제약바이오 산업이 기술 경쟁보다 데이터 경쟁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누가 더 다양하고 신뢰도 높은 유전체·오믹스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실제 치료 가치로 전환하느냐가 ‘100달러 유전체 시대’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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