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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FDA가 최근 전격 공개한 202건의 보완요구서한(Complete Response Letters, CRL)이 제약바이오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번 조치는 미국 보건복지부(HHS)가 추진하는 FDA 의사결정 투명성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신약허가 신청(NDA, BLA)에 대해 승인을 내릴 수 없다는 판단을 담은 문서를 외부에 처음으로 공개한 사례다.
공개 대상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제출된 허가 신청서 가운데, CRL 발행 이후 보완을 거쳐 최종적으로 승인을 받은 사례에 한정됐다. 공개된 CRL에는 실질적인 오류 유형, FDA 표현 방식, 반복적으로 지적된 사안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 업계는 충격을 받은 반면 소비자와 투자자는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CRL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조금 더 노력하라는 일종의 '숙제' 통보에 가깝다. 단지 현재 상태로는 승인이 어렵다는 판단일 뿐이며, 기업이 보완 자료를 제출하면 FDA는 이를 통상 2~6개월(소규모 보완 약 2개월, 주요 변경 약 6개월) 이내에 재심사한다.
문제는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CRL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거나, 내용을 선별적으로 요약해 왜곡해 왔다는 점이다. 2015년 FDA 자체 조사에 따르면, CRL을 받은 기업의 85%는 FDA가 제기한 안전성 및 유효성 관련 우려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40%는 추가 임상시험 요구 사실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FDA는 이러한 관행이 동일한 실수의 반복과 시장 왜곡을 초래해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국내 코스닥 상장 희귀질환 신약개발 기업 관계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약개발 기업들은 실패 사실을 프라이빗하게 숨겨왔고, 이를 악용해 IR과 보도자료에서는 장밋빛 청사진만 내세워 왔다"면서 "결국 진짜 문제는 실패 자체가 아니라, 그 실패를 감춘 것"이라고 꼬집었다.
거짓말을 허락한 구조…기업은 긴장, 시장은 환호
지금까지 CRL 공개 여부와 내용은 전적으로 기업의 자율에 맡겨져 있었다. 즉, FDA로부터 승인 불가 통보를 받더라도, 이를 전혀 발표하지 않거나, 일부 보완 요청이 있었다는 수준으로 축소 발표해도 법적 문제가 없었다.
이러한 허점은 시장에 지속적인 혼란을 불러왔다. 투자자들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였고, 몇 달 뒤 갑작스럽게 추가 임상 진입 발표나 허가 반려 소식이 전해지며, 주가가 급락하는 사례가 반복되곤 했다.
FDA 마티 마카리(Marty Makary) 국장은 이번 CRL 공개에 대해 "제약사와 자본시장 모두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제는 어떤 오류가 승인을 지연시키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202건 CRL은 단순한 행정적 조치가 아니다. FDA는 향후 이전 발행된 흩어진 CRL들도 수집해 중앙화된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규제당국이 기업보다 먼저 정보 비대칭 해소에 나서겠다는 선언이자, 규제 혁신의 상징적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그동안 업계는 CRL 내용을 의도적으로 애매하게 표현하거나, FDA와 논의 끝에 일부 보완사항에 대해 협의 중이라는 모호한 설명으로 위기를 모면해 왔다. 그러나 이번 CRL 공개로 인해 FDA 문서에 실제 어떤 표현이 쓰이는지, 어떤 사안이 반복적으로 지적되는지, 제조 공정상의 어떤 문제가 승인 지연에 영향을 주는지가 명확히 드러났다.
실제 한 CRL에는 '임상시험 설계가 질병의 자연경과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직접적인 지적이 담겼고, 또 다른 문서에서는 '제조 공정 간 일관성이 결여됐다'는 품질관리(CMC) 상의 문제가 명확히 명시돼 있다. 이처럼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표현들은 투자자나 경쟁 기업이 허가 실패 본질을 분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
CRL 공개 이후 일부 미국 신약개발 기업들의 주가는 단기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이전에는 무심코 넘어갔던 기업 발표가, 알고 보니 심각한 결함을 감춘 것이었음을 시사한다는 시장 의심이 반영된 결과다.
국내 기업도 긴장… 한국거래소 공시·IR 방식 혁신 필요
국내 신약개발 기업들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는 CRL과 관련된 정보를 사업보고서나 투자설명회 자료에 형식적으로 기재하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교묘하게 축소 은폐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국내외 투자자들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투명한 공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 항암 신약개발로 큰 주목을 받았던 한 기업은 FDA로부터 CRL을 받았음에도 이를 명확히 공개하지 않았다. 해당 기업은 기자간담회나 주주총회에서 수차례 CRL에 대해 해명했지만, 보완 요청은 통상적인 절차라며 핵심 쟁점을 피해가는 껍데기 해명만 반복했다는 비판이 시장에 지배적이었다.
그 결과, 해당 기업 주가는 급락과 급등을 반복했고, 투자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CRL이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을 숨긴 기업 태도가 문제라는 비판이 잇따르며, 국내 신약개발 기업 전체에 대한 신뢰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내 코스닥 상장 ADC 신약개발 기업 고위 관계자는 "이제는 단순히 FDA로부터 보완 요청을 받았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정확히 무엇을 보완하라는 것이며, 기업이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FDA가 주도하는 정보 투명화 흐름은 식약처를 포함한 다른 글로벌 규제기관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앞으로는 신약개발 성공 가능성뿐 아니라, 실패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까지 평가받는 시대"라고 덧붙였다.
국내 한 제약바이오 정책 전문가는 “현재 한국거래소의 공시 제도는 기업들이 어떤 CRL을 받았는지, 임상시험에서 주요 평가변수를 왜 충족하지 못했는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투자자를 현혹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면서 "이런 구조에서는 말장난이 정보 공개를 대체하게 되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FDA가 승인 거절 사유를 직접 공개하고, 글로벌 빅파마들이 부정적인 임상 결과까지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흐름과 비교할 때, 한국 공시는 지나치게 기업 편파적"이라며 "CRL은 물론 임상 실패, 핵심 특허 분쟁, 기술이전 해지 등 주요 이슈에 대해서는 선택적 해석이 아닌, 의무적이고 구체적인 공시 체계가 마련돼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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