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쓰림, 장내 생태계부터 다스려라” 유산균이 바꾸는 치료 패러다임
위산 역류, 장내 미생물총 변화 의해 유발 가능…‘장-식도 면역 축’ 개념 주목
유산균, 위식도역류질환 증상 완화 효과로 PPI와 병용요법도 제시
권혁진 기자 hjkwon@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25-06-04 06:00   수정 2025.06.04 06:01
위식도역류질환이 위만의 문제가 아니라, 장과 면역적 연결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DALL-E

장내 미생물이 위식도역류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장내 미생물총 변화가 식도와 위장의 염증과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장-식도 면역 축’이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부상하면서, 미생물 불균형을 조절해 위식도역류질환을 치료하려는 접근이 본격화되고 있다.

장-식도 면역 축(Gut-Esophagus Immune Axis)은 장내 미생물총(Gut Microbiota)이 식도(Esophagus)의 면역 반응과 염증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결 고리를 의미한다.

위식도역류질환은 단순한 ‘속 쓰림’을 넘어서는 문제다. 전 세계 수억명이 이 질환을 앓고 있으며, 만성적인 위장관 질환은 삶의 질을 크게 저하한다. 심한 경우 식도염, 식도 협착, 바렛식도, 식도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존에는 하부식도괄약근 기능 저하나 위산 과다 분비 등 물리적인 요인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치료 역시 프로톤펌프억제제(proton pump inhibitor, PPI)를 중심으로 한 위산 억제 요법이 주를 이뤘다.

지난 2월 Frontiers in Immunology에 발표된 논문 ‘위식도역류질환에서 식도 및 장내 미생물의 역할(The role of the esophageal and intestinal microbiome in gastroesophageal reflux disease)’에 따르면, 위식도역류질환 환자의 식도 및 장내 미생물 환경은 건강한 사람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프로테오박테리아(Proteobacteria), 퓨소박테리아(Fusobacteria) 증가는 염증 반응을 유도하고,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 등 유익균 감소는 식도 점막의 방어 기전 약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도 점막에서 톨유사수용체(TLR), NLRP3 인플라마좀, 사이클로옥시게나제-2(COX-2) 경로가 동시에 활성화돼 염증성 사이토카인 분비가 증가할 수 있다는 기전을 제시했다.

이는 위식도역류질환이 단순한 위산 역류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라, 면역계와 장내 미생물 간의 상호작용으로 유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존 위장 질환 치료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돼 온 ‘면역 경로(Immune pathway)’ 중요성을 부각하는 대목이다.

보조제에서 치료제로…유산균, 위장질환 정조준

위식도역류질환 치료 전략도 변화하고 있다. 2020년 ‘Nutrients’에 게재된 ‘위식도역류질환과 프로바이오틱스: 체계적 문헌고찰(Gastroesophageal Reflux Disease and Probiotics: A Systematic Review) 논문에서는 위식도역류질환자에게 프로바이오틱스를 투여한 13건 임상시험 중 11건에서 유의미한 증상 완화가 관찰됐다고 밝혔다.

특히 락토바실러스 루테리(Lactobacillus reuteri), 비피도박테리움 락티스(Bifidobacterium lactis) 균주가 위산 분비 조절, 식도 점막 보호, 장운동 촉진 등 다양한 작용을 통해 속 쓰림, 트림, 위장 불편감 등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

주로 장 질환에서 주목받아 온 프로바이오틱스가 이제는 상부 위장관에도 영향을 미치며, 위식도역류질환에서도 치료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프로바이오틱스는 건강기능식품을 넘어,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인체에 유익한 효과를 내는 살아있는 미생물을 가리킨다.

PPI의 한계, 유산균 병용으로 돌파구 찾는다

위식도역류질환 주요 치료제인 프로톤펌프억제제(PPI)는 위산 분비 억제에 효과적이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는 위산 억제를 중심으로 한 PPI 요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PPI의 장기 복용 시 골다공증, 비타민 B12 결핍 등 다양한 부작용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감소시켜, 오히려 위식도역류질환 재발이나 기타 소화기 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접근법으로 PPI와 프로바이오틱스를 병용하는 치료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가 대표적인 대안이다. 이 치료는 부작용 없이 장내 환경을 개선하고 염증 및 면역 반응까지 통합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평가되고 있다.

2022년 BMC Gastroenterology에 발표된 임상연구 ‘위식도역류질환 치료를 위한 PPI와 프로바이오틱스 병용 임상시험 프로토콜(Protocol of a randomized,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study of probiotics combined with a proton pump inhibitor for the treatment of gastro-oesophageal reflux disease)’에 따르면, PPI 제제 라베프라졸(Rabeprazole)과 락토바실러스 애시도필루스(Lactobacillus acidophilus)를 병용한 그룹은 PPI 단독 투여군에 비해 장내 미생물 균형을 더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또 증상 개선율과 재발 예방 효과도 더 우수했다.

이 결과는 병용 요법이 위산 억제뿐만 아니라,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와 장내 미생물 균형 유지라는 목표를 동시에 실현할 가능성을 제시한 중요한 근거로 평가된다.

속 쓰림 시대 가고, 정밀 치료 시대 온다

유산균으로 위식도역류질환을 본격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선 개인별 미생물총 차이를 고려한 ‘정밀 치료’ 전략이 필수다.

개인의 장내 미생물 구성과 유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프로바이오틱스를 설계하고, 이를 디지털 기반 솔루션과 연계하는 방향이 부상하고 있다. 실제 AI 분석, 메타게놈 시퀀싱, 머신러닝 기반 개인 맞춤 처방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미국 펜듈럼 테라퓨틱스(Pendulum Therapeutics)는 당 대사 질환뿐 아니라 위장관 면역 질환을 타깃으로,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Akkermansia muciniphila) 기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국내에서는 CJ바이오사이언스와 비피도 등이 위식도역류질환 및 기능성 소화불량 치료제로 확장 가능한 프로바이오틱스 조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FMT(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분변이식)과 같은 고위험군 대상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치료는 이미 일부 상용화됐다.

여러 종류의 포스트바이오틱스(Postbiotics) 제품도 건강기능식품 형태로 시판되고 있다. 포스트바이오틱스는 유익균 대사산물을 기반으로 한 치료제를 지향하는 균을 말한다. 규제 장벽이 높은 생균치료제(LBP)보다 안전성과 표준화 가능성이 높아 산업화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 전략이 단일 균주 중심 프로바이오틱스에서 벗어나, 다균주 맞춤 조합, AI 기반 처방, 정밀 진단 기술과 결합한 통합형 솔루션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치료 중심축도 기존 ‘증상 억제’에서 ‘장내 생태계 회복’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베이징 중의약대학교 보이 지아(Boyi Jia) 박사는 “위식도역류질환은 단순한 위산 억제제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면서 “면역, 미생물, 신경조절까지 아우르는 다학제적 치료 전략이 필요하며, 그 중심에는 장내 미생물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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