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크의 아이러니 "항암제가 없다"
세계 3위 제약사 위상 불구 '이례적'
이덕규 기자 abcd@yakup.com 뉴스 뷰 페이지 검색 버튼
입력 2003-12-15 18:32   수정 2003.12.16 09:18
오늘날 세계 최대의 의약품 소비시장인 미국에서 암은 사망원인 2위에 올라 있는 다빈도 질환이다.

매년 암을 새로 진단받는 환자수만 130만명에 달할 정도다. 게다가 전반적인 인구의 노령화 추세와 진단기술의 진보로 인해 그 수치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메이저 제약기업들이 앞다퉈 항암제 개발에 주력해 온 것은 불문가지에 해당하는 이치이다.

가령 노바티스社의 '글리벡'과 제넨테크社의 '리툭산'(또는 '맙테라') 등은 가장 최근에 눈에 띄는 항암제 신약들이다. 이 항암제들은 한해 투약에 소요되는 약제비만 5,000~2만5,000달러가 소요되어 앞으로도 수 십년 동안 상당한 이익을 해당 메이커측에 안겨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밖에도 200여종에 달하는 다양한 항암제 후보신약들의 임상이 진행 중이어서 오늘날 항암제는 제약업계에서 R&D가 가장 활발한 분야로 첫손가락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세계적인 메이저 제약기업들 가운데 지난 수 십년 동안 이렇다 하게 내세울만한 항암제를 찾기 어려었던 빅 메이커가 한곳 있다. 더욱이 이 회사는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항암제 조차 눈에 띄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바로 세계 3위의 거대 제약기업인 머크&컴퍼니社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로 머크는 지난 1965년 선보였던 희귀암 치료제 '코스메겐'(Cosmegen)과 1970년 발매한 백혈병 치료제 '엘스파'(Elspar), 그리고 올해 3월말 암환자들이 항암제를 투여받을 때 뒤따르는 급성·후발성(delayed) 구역·구토 부작용을 예방하는 용도의 항구토제로 허가된 '이멘드'(emend; 아프레피탄트) 정도가 보유 중인 항암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라이벌 메이저 제약기업들이 저마다 웬만한 항암제 하나씩은 내세우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의외의 사실로 비쳐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 SG 코웬 증권社가 "지난해 320억 달러 규모를 형성한 데 이어 오는 2007년에는 610억 달러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세계 항암제 시장의 볼륨과 미래의 성장전망을 장밋빛으로 추정하고 있고 보면 더욱 의아함이 앞서는 현실인 셈이다.

컨설팅업체 캠브리지 파마 컨설턴시社의 고든 캐리 부회장은 "항암제 부문이 제약업계에서도 매우 비중이 큰 시장임에 틀림이 없지만, 머크는 이 분야에서 경쟁업체들에 비해 뚜렷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아이러니'(ironic)라는 표현을 인용했다.

이와 관련, 머크의 R&D 최고책임자인 피터 킴 박사는 지난 9일 가졌던 연례 애널리스트 미팅에서 "우리도 언젠가 항암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는 세균배양용 페트리접시나 실험동물을 사용한 단계의 초기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뿐임을 그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킴 박사는 또 머크가 구체적으로 언제쯤 블록버스터급 항암제를 보유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자체적인 항암제 신약을 내놓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파트너십 구축을 통한 유망제품 확보 노력도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들어 제휴계약을 체결했던 젠패스 파마슈티컬스社(GenPath)와 앨나이램 홀딩스社(Alnylam) 등을 한 예로 꼽아볼 수 있으리라는 것.

투자회사 오비메드 어드바이저스社(OrbiMed)의 샘 아이즐리 파트너는 "머크가 자체적으로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수 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또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 초기단계의 후보신약을 확보하는 데도 줄잡아 평균 1억2,500만 달러 정도가 소요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머크측이 상당한 부담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래가 유망한 항암제 후보신약들의 경우 이미 라이벌 업체들이 대부분 입도선매한 상태임은 차치하더라도 평균 1억2,500만 달러라면 3년 전에 비해서도 3배 가까이 부담액이 늘어난 수준이라는 것이 아이즐리 파트너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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